지하철서 본 장애인 도우려다 머뭇
도움 앞서 이해가 중요함을 되새겨

지난 주말 동네 뒷산. 이 산은 그리 높지도 험하지도 않아 산책하기 좋다. 그래서 연세가 드신 분들도 드물지 않고 어린아이들과 애완견을 데리고 오는 사람도 많다. 숨이 차고 땀을 흘려야 등산하는 기분이 드는 나는 좀 긴 코스를 택해 빨리 걷는 편이다.

가을 산의 묘미는 낙엽 밟는 소리다. 미끄러워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발걸음마다 소리가 따라오니, 마치 걸음마 훈련생용 뿅뿅 신발을 신은 듯하다. 3시간 코스를 30분 정도 남겨 둔 지점. 앞서 혼자 걷는 분의 걸음걸이가 조금 다르다. 약간 저는데 여느 사람과는 속도 차가 있을 정도다. 낙엽이 쌓인 내리막이니 더 조심스럽다. 그를 본 순간 곧 속도를 줄이고 나는 얼마나 행복한가 하면서 고개를 숙였는데 낙엽 밟는 소리가 확실히 약해져 고개를 드니 한쪽으로 비켜서 있다. 등을 보인 채. 딴에는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걸으려 애썼지만 실패했나 보다. 머뭇거리면 더 불편해하지 싶어 잰걸음으로 앞질렀다. 보통 좁은 등산로에서 앞지르고 싶으면 '실례합니다' 하면서 기척을 하고 꼭 '고맙습니다'라고 인사를 하는데 이번에는 그 말도 건네지 못했다. 미안하기도 하고 조심스러워 돌아보지도 않았다.

두어 주 전 휴일 오후 지하철. 열차에 오르니 맞은편 출입문 옆에 덩치 큰 흰 개와 검은 개 한 마리가 얌전히 앉아 있다. 개를 무서워하는 편은 아니지만, 애완견치고는 상당히 큰 놈이라 멈칫하면서 고개를 드니 젊은 부부가 돌배기와 세 살배기쯤으로 보이는 딸아이를 한 명씩 안고 앉아 있었다. 엄마와 돌배기는 잠에 빠졌고 아빠와 세 살배기는 말똥말똥한데 부부는 모두 스카프를 매단 개의 목줄을 꼭 쥐고 있었다. 맹인안내견!

아빠는 두 발로 검은 안내견을 계속 좌석 아래로 끌어들이는데 휴일이라 붐비지는 않았지만 누가 저 개의 발이라도 밟으면 어쩌나 걱정스레 바라보았다. 맞은편에 앉았는데 옆자리 아가씨 둘은 무표정한 검은 안내견에게 눈을 맞추고 손짓을 해가며 추파를 던지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다.

내릴 때가 되었는지 부산하게 소지품들을 챙기더니 부부는 한 손으로 아기를 안고 한 손으로는 개 목줄을 잡고 일어선다. 승객들이 길을 터 줘 부부가 먼저 열차에서 내렸다. 나도 열차를 갈아타기 위해 내렸는데 환승역이라 상당히 복잡했다. 열차에서 내린 부부는 한동안 머뭇거리면서 방향을 잡지 못하는 듯했다.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다가가 길이라도 잡아줘야 하나 망설이고 있던 차에 개가 이끄는 건지 아니면 그들이 이끄는 건지 종종걸음으로 사라진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그들이 제대로 길을 잡았는지 걱정스럽기도 하고 선뜻 나서서 도와주지 못한 자책감도 들었다.

비장애인들과만 접촉하며 산 사람은 장애인들의 심리상태나 상황인식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그래서 때로는 도우려는 행동이 오히려 마음의 상처가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맹인 안내견을 함부로 쓰다듬거나 만지지 말라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다. 개가 혼란에 빠져 임무 수행에 지장을 줄 수 있단다.

사회가 발달한다는 것은 사회적 약자 배려를 강화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불어 사는 세상, 모두가 행복한 세상을 위해 계단 없는 경사로나 생활 보조금 지원 못지않게 장애인들의 특성을 잘 이해하고 그에 맞추어 상대하고 대우하는 일도 중요하다.

지금 사는 아파트에 법정 비율보다 많은 장애인 주차장이 설치되어 있으니 이를 줄여 일반 주차장을 늘리겠다는 주민투표가 진행되고 있어 더 이런 마음이 드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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