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한다는 것, 시간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이다. 몇백 년, 몇천 년 전의 일을 알 수 있는 근거도 당시에 남겨진 기록을 통해서다. 선사시대의 고인돌마저 넓은 의미에선 기록이라 할 수 있겠다.

최근 경상남도 기록연구사로 활동하고 있는 전가희 씨가 <네모의 기록이야기>라는 책을 냈다. 2018년부터 2년간 <경남도민일보>에 '기록의 힘'이라는 주제로 연재했던 것을 묶었다. 저자는 책에 관해 이렇게 자평했다. "연구해서 결론을 낸 이야기가 아니라, 기록관리 업무를 하면서의 현실과 생각, 그리고 느낌을 작성한 정도니 '기록연구사의 기록관리 이야기' 정도로 봐주시면 좋을 듯하다."

▲ 〈네모의 기록이야기〉 (전가희 지음)
▲ 〈네모의 기록이야기〉 (전가희 지음)

책장을 넘기다 보면 소설을 읽는 느낌이다. "왕은 사방에서 들려오는 비명을 애써 피하며 찾지 못한 마지막 문장에 집중하였다. 죽음이라는 결말보다 더 중요한 것이 하루의 결말이라는 것을 입증하듯, 먹을 가는 내관의 땀이 비 오듯 흘러 벼루의 물이 되고 그의 손떨림에 먹물이 튀어 왕의 침소를 더럽힐지라도 왕은 집중했고 신중했다." (102쪽)

조선 시대 정조 이야기다. 자객이 침입해 목숨이 경각에 달렸음에도 정조는 일기 쓰는 일에만 열중하는 모습이다. 저자는 이 문장에 대해 "정조 1년 암살사건을 사실과 상상으로 재구성해보았다"고 밝혔다.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표현일 것이다.

저자는 기록의 소중함을 물과 공기와 같다고 표현했다. "물과 공기와 같이 흔한 기록은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히 받아들이곤 한다. 그 때문에 일상성이 갖는 특수성을 외면하는지도 모른다." 당연한 것들에 대한 경각심 부족으로 기록되지 않은 역사에 관한 아쉬움이다.

누구보다 기록적인 삶을 살았지만, 기록이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독립유공자 이효정 선생, 마산 출신 김명시 장군, 의열단 단장 김원봉 선생에 관한 기록이 터무니없이 부족함에 저자는 프랑스 언론 르몽드 창간인 위베르 뵈브메리의 말을 인용하며 슬퍼했다. "바보 같은 진실은 바보같이 말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 진실은 마음에 들지 않게 말하고, 슬픈 진실은 슬프게 말하라." (125쪽)

그러면서 저자는 "기록적인 인생들이 기록 없이 생을 마치지 않도록 정성을 다하려고 한다"고 했다. 선인 펴냄. 261쪽. 1만 8000원.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