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엔 낮 짧아 몸속 세로토닌 감소…폭식·과식 유발
하루 30분 일광욕·미간 두드리기 하면 분비량 늘어나

천고마비. 하늘은 높고 말은 살이 찐다. 말(言)의 유래야 중국 고사에서 온 것으로 가을에 먹을 게 풍성하니 흉노족의 침입을 두려워한 데서 비롯됐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저 가을이라서 먹을 게 많고 많이 먹다 보니 몸집이 넉넉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는 의미로 쓰고 있다.

먹을 게 많다고 해서 살이 찐다는 막연한 인과 관계를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겠다. 요즘 세상에 봄, 여름, 겨울엔 먹을 게 없나? 가을에 특히 먹고 싶은 욕망이 이는 이유가 있을 터이다. 그리고 그 왕성한 식욕을 억제할 방법도 있을 터이다. 성균관대 삼성창원병원 가정의학과 고현민(사진) 교수에게 물었다. 고 교수에게서 얻은 답을 딸과 함께 대화로 풀어보았다.

▲ 고현민 성균관대 삼성창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 고현민 성균관대 삼성창원병원 가정의학과 교수.

날씨가 하루가 다르게 쌀쌀해지고 있다. 아침저녁으로는 긴팔에 긴바지를 입어야 할 정도다. 오랜만에 가족이 저녁 식탁에 둘러앉았다. 아빠는 여느 때와 달리 식사량이 확 늘었다. 한 그릇을 비운 아빠는 밥그릇을 들고 밥솥으로 가서 한 주걱 떠 넣고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한 주걱 더 떠넣는다.

딸 : 아빠, 너무 많이 드시는 거 아녜요?

아빠 : 이 정도로 뭘. 아빠 한창때는….

딸 : 한창때야 아무리 드셔도 소화할 만큼 움직이시니까 상관없지만, 지금은 운동할 시간이 많은 것도 아니고, 드시는 게 모두 살로 가니까 음식 조절하셔야 해요.

아빠 : 운동 많이 한다니까.

딸 : 무슨 운동요?

아빠 : 숨쉬기운동!

딸 : 크~. (아빠가 자리에 앉자 아빠의 밥그릇에서 밥 한 술 들어낸다) 아빠, 지난여름보다 몸무게 많이 늘었죠? 코로나19 확진자만 문제가 아니라니까요. 살이 '확찐자'도 문제라고요.

아빠 : 확찐자? 어허. 아직 확찐자 아냐. 이제 겨우 3㎏밖에 안 늘었는걸.

딸 : 못 말려. 그게 적은 양 아니거든요. 이대로 계속 드시다간 겨울 들어가기도 전에 10㎏도 더 늘어날걸요.

아빠 : 그렇게 말하니 정신이 확 드네. 그런데 가을 들어서 왜 이렇게 자꾸 먹고 싶은 거지?

딸 : 아빠, 세로토닌이라고 들어보셨어요?

아빠 : 야~, 우리 딸 똑똑한데. 세로토닌을 다 알고. (가족 모두 아빠를 쳐다본다)

딸 : 아, 아빠도 아세요?

아빠 : (단호하게) 아니! 아빠가 알 리가 있나. 세로톱질이면 몰라도. (가족들 ㅋㅋ 웃는다)

딸 : 썰렁. 가을에 식욕이 증가하는 이유 중 하나가 세로토닌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어요.

아빠 : 세로토닌이 뭐지?

딸 : 뇌에서 분비되는 신경전달물질인데, 이게 나오면 기분을 좋게 한대요. 이 물질은 수면, 기억력, 인지 기능, 충동 조절, 불안, 초조감, 식욕 등에도 관여하는데, 특히 탄수화물 섭취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해요. 세로토닌이 증가하면 식욕이 떨어지고, 반대로 감소하면 식욕이 왕성해지는 거죠.

아빠 : (갑자기 눈을 감고 기합을 넣는다) 흐읍, 얍!

딸 : 왜 그러세요?

아빠 : 뇌에서 세로토닌이 많이 분비되게 뇌를 짜는 중이야. (또 가족들 ㅋㅋㅋ)

딸 : 세로토닌 분비는 햇볕 영향을 많이 받아요. 눈을 통해 들어온 빛이 뇌 속 신경전달을 활성화하는 거죠. 그런데 가을이 되면 낮이 짧아지고 밤이 길어져서 몸속 세로토닌이 줄어들면서 식욕이 왕성해지는 거죠.

아빠 : 오호. 일리 있는데. 내일부터 일광욕해야겠네. 면역력 키우는 비타민D도 보충하고. 그런데 얼마나 햇볕을 쬐면 좋을까.

딸 : 하루 30분 이상만 하면 된대요. 그러면 음식 유혹이 강한 추석을 무사히 넘길 수 있겠죠.

아빠 : 그런데 아빤 자신 없다. 햇볕을 종일 쬔다 해도 먹고 싶은 걸 참지 못할 것 같은데.

딸 : 그래요. 세로토닌보단 아빠 의지가 더 중요하죠. 살이 찌면 인체에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지 말해드려요?

아빠 : 아니. 별로 알고 싶지 않은데. (옆에서 가족들이 "우린 듣고 싶은데" 한다)

딸 : 살이 찌면요, 당뇨병 고지혈증 고혈압 위험도가 올라가요. (점점 빠르게 그러다 랩으로 읊는다) 폐활량은 줄어들죠, 수면 무호흡증도 생겨요. 성호르몬 균형도 깨지고요, 여자에겐 월경불순 불임증 다낭성 난소증후군이 나타나요. 그것뿐인가요, 유방암 자궁암 난소암, 남자에겐 대장암 직장암 전립선암 악성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죠. 담낭염 들어보셨나요, 담도결석도 증가하고요, 통풍에 골관절염 위험도 올라가죠. 후덜덜.

아빠 : 그만! 갑자기 그 모든 질환에 다 걸린 것 같네.

딸 : 그러니까요. 먹는 거 좀 참고 이제부터라도 운동하세요.

아빠 : 눈앞에 음식이 먹음직스럽게 딱 버티고 있는데 어떻게 외면할 수가 있겠냐.

딸 : 할 수 없네. 아빠 퇴근 때를 맞춰서 집에 있는 음식 다 치워놔야겠네. (옆에서 엄마가 "그러면 바로 해먹을걸" 한다)

아빠 : 엄마 말이 맞을걸.

딸 : 방법이 있어요. 일단 소식을 하고요, 식사 끝나면 바로 부엌에서 나오세요. TV는 한 시간 정도만 보는 게 좋고요, TV 보면서 음식을 드시면 절대 안 돼요. 만화를 본다거나 소설 등을 읽는 독서도 좋고요, 운동한 뒤 따뜻한 물로 목욕하면 훨씬 도움이 되겠죠. 먹고 싶은 것이 눈앞에 있어도 잠깐, 10분 정도라도 먹는 걸 미뤄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에요. 먹는 게 있다는 걸 까먹을 수도 있으니까요.

아빠 : 그게 어찌 까먹어지겠냐.

딸 : 그래도 한 번 해보세요. 아빠 건망증 심하시잖아요.

아빠 : (빠직) 10분 미뤄야 한다는 걸 까먹을 가능성이 더 크지 않을까.

딸 : 아빠에겐 가장 중요한 수칙이 있어요. 술친구를 멀리하는 거요.

아빠 : 넌 아빠에게 불가능한 것만 이야기하는구나.

딸 :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인데요. 과식 과음하는 사람 옆에 있으면 자연히 따라 하게 된대요.

아빠 : 알았다, 알았어. 아빠에게 좀 더 확실한 방법 없겠냐?

딸 : 꼭 아빠에게라기보다는 우리 가족에 해당하는 수칙 몇 가지가 있긴 하죠.

아빠 : 뭔데? (가족들도 귀를 쫑긋 세운다)

딸 : 음식은 식당에만 둘 것, 모든 음식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둘 것, 문제가 되는 음식은 집에 두지 말 것, 냉장고엔 쉽게 먹을 수 있도록 채소를 넣을 것, 항상 신선한 과일을 놓아둘 것, 식사 후엔 음식을 보이지 않는 곳에 둘 것, 그리고 식사 때엔 음식을 항상 남길 것.

아빠 : 뭐라고? 음식을 왜 남겨? 남길 것 같으면 적게 떠서 먹어야지. 난 그건 반대!

딸 : 좀 모자란 듯 먹는 습관을 길러보라는 얘기예요. (옆에서 엄마가 "당신 남긴 건 내가 먹을게" 한다)

아빠 : (엄마에게 돌아보며) 칫. 항상 자기가 음식 남겨서 내가 먹게 해 놓고선. 그게 되겠어?

딸 : 하여튼 아빠는 지금 몸무게 많이 줄이셔야 해요. 아이스크림, 콜라 이런 거 좀 드시지 말고요.

아빠 : 야, 당 보충하는 데 그만한 게 어딨냐?

딸 : 그러니까 자꾸 먹고 싶어지고 살이 찌는 거죠. 탄수화물 중에서도 정제 탄수화물은 열량이 높고 혈당을 빠르게 올려서 비만의 주원인이래요. 이것들은 소화가 빨라서 포도당으로 빠르게 전환되는데 이를 처리하려고 췌장에서 인슐린이 과도하게 분비되어 혈중 인슐린 농도를 높여요. 또 탄수화물에 중독되면 세로토닌 농도가 떨어지는데, 이때 인체가 보상으로 다시 단것을 섭취해 세로토닌 농도를 높이려 하죠. 이러면서 더 많은 탄수화물을 먹게 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거예요.

아빠 : 뭐가 그렇게 복잡하냐? 어쨌든 아빠 보고 아이스크림, 콜라 먹지 말라는 얘기 아냐?

딸 : 딩동댕! 최근 연구에 탄수화물이 아무리 많아도 정제되거나 가공되지 않은 완전식품이라면 문제 될 게 없다는 사실이 밝혀졌대요.

아빠 : 세로토닌이 관건이네. 세로토닌이 많이 든 음식엔 어떤 것들이 있지?

딸 : 세로토닌이 되는 물질이 트립토판이라는 건데, 이게 풍부한 음식은 바나나, 치즈, 연어, 호두, 우유, 칠면조, 낫토(일본식 청국장) 등이에요.

아빠 : 듣던 중 반가운 정보구나. 낫토 빼고는 다 아빠가 좋아하는 것들이네. ㅋㅋ.

딸 : 아빠, 미간을 톡톡 두드려보세요.

아빠 : 왜? 이러면 살이 빠진대?

딸 : 네, 미국의 한 대학에서 연구한 건데요, 30초간 두드리면 식욕이 억제된대요. 신경계 이완을 도와 세로토닌을 분비하게 되어 그렇다네요.

아빠 : 이야, 우리 딸 모르는 게 없네.

딸 : 한 가지 더. 아침에 땀나게 운동하면 음식 먹고 싶다는 생각이 줄어들어요. 또 7시간 이상 잠을 충분히 자도 식욕 억제에 도움이 되고요. 이건 자는 동안에 식욕을 억제하는 랩틴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되기 때문이래요.

아빠 : (숟가락을 든 채로) 우리 딸 이야기 듣느라 한 숟가락도 더 못 먹었네. 음식 남기는 습관을 들이라 그랬지. (숟가락 놓고 일어선다) 아빤 랩틴 생산을 위해 침대로 간다.

딸 : 밥 먹고 바로 주무시면 소화불량으로 오히려 살이 찔 텐데요.

안방으로 들어가려던 아빠의 걸음이 멈칫한다. 뒤통수에 땀이 삐질삐질 흐르는 듯. 아빠의 표정은 안 보여도 당황스러워하는 동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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