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 마을 교통문제 민원 풀리지 않더니
폭염에 21㎞ 달려간 자전거, 군청 움직여

그날은 참 무더웠다.

장마가 끝나고 뒤늦은 무더위가 찾아와서 행정안전부와 도청, 이장으로부터 폭염 특보가 발령되었다는 문자가 빗발쳤다. 물을 자주 마셔라, 오후에는 작업장에 나가지 말아라, 야외활동을 자제하라는 내용이었다.

이날 나는 뜻하지 않게도 소원 하나가 해결되었다. 작년 말부터 오매불망 간절했던 소원이. 소원 수리의 가장 큰 공로자는 군의회 의장도, 군청 담당 과장도 아닌 자전거였다.

몇 차례의 요청에도 해결되지 않던 민원이라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날 군청과 의회에서 번갈아 전화가 걸려오더니 주민 간담회를 열겠다면서 날짜를 잡자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간담회를 말하는지 어리둥절했다. 그럴 정도로 포기하고 있었던 민원이었다.

대담하게도 무더위 속에 자전거를 타고 21㎞를 달려 1시간 10분여 만에 군청 옆 행사장에 갔던 것이 발단이었다.

한여름임에도 코로나19 탓에 다들 마스크를 쓴 채 행사를 치르다 보니 너도나도 부채 하나씩을 들고는 주최 측에서 준비한 냉차를 마시며 더위를 쫓고 있었는데 자전거를 타고 온 나를 외계인처럼 바라보았다. 놀라움과 함께 무모하다는 표정들이었다.

그중에는 군의회 의장이 있었다. <녹색평론>을 같이 구독하던 후배인데 두 번이나 내 곁에 와서 괜찮냐고 안부를 물었다. 어떻게 자전거로 여기까지 올 생각을 했냐면서 철학이 없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느니, 부럽다느니 하면서.

인사치레려니 하고 넘겼는데 그게 아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군의회와 군청으로부터 전화를 번갈아 가며 받아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분이 연락을 취한 모양이다. 전희식의 민원을 해결해 보라고.

전화와 문자, 그리고 군청 홈페이지에 정식으로 제안한 민원은 교통문제였다. 교통 불편 오지 마을에 운행하는 1000원 '행복택시'의 운영과 관련해 몇 가지 불합리한 점을 제기하면서 주민 간담회를 하자는 것이었다.

군청 홈페이지에서 받은 대답이 3월 초였는데 관청에서 흔히 하는 맹물 같은 답변이었다. 경청하고 검토하고 논의하여 조만간 해결해 보겠다는. 앞서 전화로 나눴던 미흡한 답변의 반복이었다. 그래서 나는 별로 행복하지 않은 '행복택시' 문제는 아예 포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일사천리였다. 전화를 몇 차례 걸어오더니 두루 가능한 날짜를 잡았다면서 바로 간담회가 열렸다. 5개월이 지나도록 함흥차사였던 주민 간담회가 딱 4일 만에 열린 것이다. 내가 사는 면 소재지로 다들 오셨다. 음식점도 나더러 고르라고 하고 메뉴도 정하라고 했다. 주권자 대접을 거나하게 받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11명이 모였다. 군청과 군의회 담당 직원이 세 명씩 나왔고 간담회를 성사시킨 의회 의장을 비롯해 이해 당사자인 택시기사 등. 이야기도 술술 풀렸다. 원래 합의를 목적으로 한 자리가 아니었으니 만남 자체로 충분했다.

자전거의 힘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그렇다. 계산을 해보면 자전거가 얼마나 힘이 센 물건인지 알 수 있다.

사람 하나를 옮기려면 농가에서 타는 트럭일 경우 1800㎏이 동원된다. 사람 40명을 옮기는 버스는 1만 5000㎏이다. 1인당 약 400㎏이 동원되는 셈이다. 내 자전거는 17㎏이다. 17㎏으로 한 사람을 옮기니 얼마나 힘이 센가? 건강도 좋아진다.

논리 정연한 청원서나 거듭된 전화도 해결 못 했던 주민 간담회를 자전거가 했으니 설득력도 자전거가 최고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