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성·통일성 벗어나면 일탈·반란 취급
같은 옷 입었다고 더 나은 정책이 나오나

정의당 류호정 의원이 붉은 원피스 차림으로 국회 본회의에 참석한 일을 두고 말이 많다. 81%가 남자이고 평균연령이 54.7세로 류 의원과 거의 더블 스코어로 차이가 나는 집단에서 그에게 불편한 것이 딱히 옷차림새뿐이며 이렇다 저렇다 입을 대는 이들 역시 거슬리는 것이 옷뿐일까만 불거진 일만 놓고도 많은 생각이 든다.

왜 옷이 문제일까? 왜 붉은색이 문제이며 왜 원피스가 문제일까?

이 논란의 뒤에는 이 땅 기성세대 내지 기득권 세력 사이에 공고히 뿌리 박고 있는 정신적, 문화적 기반이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군사독재 시절까지 이 땅을 지배한 군사문화와 그 문화의 핵심 요소 중 하나인 획일주의!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이후 국민에게 가장 익숙한 얼굴은 질병관리본부 정은경 본부장이다. 이 재앙 한가운데에서 그가 보여 준 모습과 숨은 이야기들에 대해 많은 찬사와 격려가 줄을 이었지만 늘 눈에 거슬리는 것은 그의 복장이다. 비단 그만이 아니라 단상의 모든 공무원이 입는 그 옷, 노란 민방위복!

북한 미사일 시험 발사 같은 국가안보 중요 이슈가 생기면 열리는 국가안보회의(NSC)에는 때에 따라 대통령을 포함해 안보 관련 최고위직들이 참석하는데 그들의 복장도 늘 다르지 않다. 노란 민방위복!

기록적인 비가 만들어 낸 지금 같은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하면 열리는 관계 장관 회의 참석자도, 재해 현장을 찾는 장차관 등 고위 관료, 지자체장과 지방 관료들이 입고 있는 옷도 마찬가지다. 노란 민방위복!

그런데 재해 현장을 찾아간 국회의원들 복장은 다르다. 정장이거나 적어도 민방위복은 아니다.

질병관리본부 직원도, NSC 참석자도, 관계 장관 회의 참석자도, 재해 현장을 찾는 장차관, 지자체장과 관료들까지 왜 하나같이 노란 민방위복을 입는가?

그리고 그 현장을 찾거나 그 일과 관련한 국회 상임위에 참석한 국회의원은 물론 장차관, 관료들은 왜 또 하나같이 그 옷을 벗어 던지고 짙은 색 정장 차림인가?

특별한 옷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죄수복과 교복은 통제 목적으로 다른 사람과 구분하기 쉽게 입히고, 전투복은 전투 상황에 맞게 만들어졌으며 운동복은 몸을 움직이기 편하게 만들어졌다. 장례식장의 검은 옷은 인류 공통 문화이기도 하고 화려함을 자제하는 의도가 있다. 노란 민방위복이나 국회의원들의 정장은 어떤 이유를 담고 있으며 적절한 수준인가?

군사독재 시절 수없이 외치고, 듣고, 쓰고, 본 구호에 단골로 등장하는 글자가 있었다. 일(一)! 일치단결, 일로매진, 일사불란, 통일 등. 이 문화에 세뇌된 이들에게 둘은 없다. 너와 나의 다름도 없다. 오로지 하나, 획일성과 통일성만이 덕목이고 가치일 뿐 이를 벗어나면 모두 혼란, 일탈, 반란이다.

21세기 문명국가 중 어느 나라가 민방위복 같은 유니폼을 입고 브리핑하는가? 대한민국 NSC 참석자나 재난안전대책본부 근무자가 민방위복을 입었기에 다른 나라들보다 더 빠르고 효율성 높은 대책을 내놓는가? 국회의원들이 남녀 할 것 없이 짙은 색 정장을 입고 논의를 하기에 다른 나라 국회들보다 더 나은 정책을 만들어 내며 품위를 지키는가?

일사불란(一絲不亂)은 가치가 아니다. 일사(一絲)는 다란(多亂)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작 중요한 것은 다사불란(多絲不亂)이다. 옷 바꾸어 입는 시간 아껴 하나라도 더 검토하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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