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여성의전화 기자회견 "서울시 피해자 도움 요청 묵살"

고 박원순 서울시장을 성추행 등 혐의로 고소한 전직 비서 ㄱ씨는 13일 기자회견에서 4년이 넘도록 피해를 당해왔다며 그간의 고통을 호소했다.

ㄱ씨 측은 박 시장의 성추행 의혹을 '전형적인 권력·위력에 의한 성추행'으로 규정하면서 박 시장의 사망으로 수사가 종결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박 시장의 극단적 선택 이후 벌어진 유언비어 유포와 피해 호소인 ㄱ씨에 대한 2차 가해에 대해서는 적극 대응해나가겠다고 밝혔다.

◇고소인 "바뀌지 않는 현실에 숨막힌다" = ㄱ씨는 이달 8일 박 시장을 성폭력특례법 위반(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강제추행 혐의로 서울지방경찰청에 고소했다.

당일 시작한 고소인 조사는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졌다. 박 시장은 ㄱ씨 조사가 끝난 그날 오후 실종됐고 결국 숨진 채 발견됐다. 4년여에 걸친 성추행을 '긴 침묵의 시간'이라 표현한 ㄱ씨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박 시장을 원망했지만, 그의 극단적 선택으로 자책도 했다고 밝혔다.

ㄱ씨는 "용기를 내 고소장을 제출하고 밤새 조사를 받은 날, 저의 존엄성을 해쳤던 분께서 스스로 인간의 존엄을 내려놓았다"며 "죽음, 두 글자는 제가 그토록 괴로웠던 시간에도 입에 담지 못한 단어"라고 했다.

ㄱ씨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 힘없고 약한 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공정하고 평등한 법의 보호를 받고 싶었다. 안전한 법정에서 그분을 향해 이러지 말라고 소리 지르고 싶었다"며 "법치국가 대한민국에서 법의 심판을 받고 인간적인 사과를 받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피해 호소인에 대한 2차 가해 우려 등으로 '서울특별시장(葬)'에 반대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전날까지 5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음에도 5일장이 그대로 진행된 것에는 "그때 느꼈던 위력의 크기를 다시 한번 느끼고 숨이 막히게 한다"고도 했다.

ㄱ씨는 박 시장의 명복을 빌면서도 "저는 살아있는 사람"이라면서 "저와 제 가족의 고통의 일상과 안전을 온전히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 김재련(가운데)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김재련(가운데) 법무법인 온·세상 대표 변호사가 13일 서울 은평구 한국여성의전화에서 열린 서울시장에 의한 위력 성추행 사건 기자회견에서 경과보고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망과 별개로 진상 규명해야" = ㄱ씨를 지원하는 한국성폭력상담소와 한국여성의전화는 이번 사건을 "전형적인 권력과 위력에 의한 성추행"으로 규정했다.

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장은 "비서가 시장에 대해 절대적으로 거부나 저항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며 "업무시간뿐만 아니라 퇴근 후에도 사생활을 언급하고 신체 접촉을 하며 사진을 전송했다"고 밝혔다.

이 소장은 "피해자는 서울시 내부에 도움을 요청했으나 '시장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시장의 단순한 실수로 받아들이라고 하거나, '비서 업무는 시장 심기 보좌하는 역할이자 노동'이라며 피해를 사소하게 만들어 더이상 말할 수조차 없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이 소장은 "이 사건은 고소와 동시에 피고소인에게 수사 상황이 전달됐다"고 주장하며 "이런 상황에서 누가 국가 시스템을 믿고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소할 수 있겠나"라고 물었다.

고미경 한국여성의전화 상임대표는 "피고소인이 부재하는 상황이라고 해서 사건의 실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한 진상을 제대로 규명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밝혔다.

고 상임대표는 "피해자 비난이 만연한 현 상황에서 사건의 실체를 정확히 밝히는 것은 피해자의 인권 회복의 첫걸음"이라며 "경찰은 고소인 조사와 일부 참고인 조사를 통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한 것으로 알고 있다. 사건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고 했다.

이들은 피해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며 서울시와 정부·국회·정당을 향해서도 진상 규명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연대 단체들은 다음주 중 기자회견을 열기로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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