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과 먼 친척인 주민 많아
침울한 분위기 속 마지막 함께

13일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고향 창녕군 장마면 장가1리 동장가마을 주민은 침울한 분위기 속에서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주민은 "마을이 낳은 큰 별이 졌다"며 허망하게 삶을 등진 고인을 안타까워했다.

고인의 고향 장가1리에는 현재 50여 가구가 살고 있다. 마을은 밀양 박씨 집성촌이어서, 주민 대부분은 고인과 먼 친척이었다.

주민은 저마다 방법으로 고인을 기억했다. 고인의 초등학교(장가초등학교)·중학교(영산중학교) 동창이자 '박원순 팬클럽 창녕지부' 상임대표인 진영출(66) 씨는 고인이 바쁜 일정에도 늘 고향을 품고 있었다고 말했다.

진 씨는 "올해 6월에도 고향에 한 번 오겠다고 연락을 주곤 했었다. 그러다 코로나19 등으로 당장 내려가기가 어려워졌다며 오히려 미안해하기도 했다"며 "돌이켜 보면 학창시절부터 참 순한 친구였다. 늘 아름답게 지내며 인간관계도 잘 쌓았는데, 갑작스러운 비보에 억장이 무너진다"고 말했다.

▲ 13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이 열렸다.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 박 시장 생가에 추모 펼침막이 걸려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 13일 고 박원순 서울시장 영결식이 열렸다. 창녕군 장마면 장가리 박 시장 생가에 추모 펼침막이 걸려 있다. /김구연 기자 sajin@idomin.com

진 씨는 고인에게 마지막으로 보낸 문자가 계속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진 씨는 "7월 4일 고인과 마지막 문자를 나눴다. 우리나라가 더 잘 살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다. 고인은 '고맙습니다.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고 답했다"며 "부담만 줬다. 왜 고인을 좀 더 편하게 해 주지 않았나 싶다"고 회상했다.

고인의 아버지와 10촌 관계인 박상효(78) 씨는 살아생전 고인이 자신에게 반갑게 인사하던 순간을 잊지 못했다.

박 씨는 "3~4년 전 명절 전후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 즈음이면 고인은 항상 부모 산소에 들렀었다. 어느 날은 차를 타고 가던 고인이 차에서 내려서 인사를 하더라"며 "마을 사람들은 고인을 못 보고 지나쳤을 수도 있었지만, 고인은 늘 먼 친척 어르신들에게도 그렇게 먼저 인사했다"고 말했다. 박 씨는 이어 "고인의 비보를 접한 날, 믿어지지가 않더라. 마을 사람 모두가 그랬다"고 말했다.

고인의 생가 바로 옆 마을회관에는 박원순 시장의 고향 방문을 기념하는 사진이 붙어 있었다. 2012년 4월 15일 찍은 이 사진 속에서 고인은 마을 어르신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었다.

경로당에서 조용히 고인을 기다린 주민은 "한마디로 참 착한 사람이었다"며 고인을 떠올렸다.

고인 유골함은 이날 오후 5시 30분께 생가에 도착했다. 고인 생가를 둘러싼 주민·지지자 등 400여 명은 고인 마지막 가는 길을 조용히 지켜봤다. 유족은 박 시장 부모 무덤 아래에 유골함을 봉분 없이 평장묘로 표지석만 설치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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