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칭사용 자유 인정…남용은 경계
4·11 재조명 논의 함께 이어가길

3·15의거 중 제2차 의거를 둘러싼 지상 토론을 (김영만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상임고문과) 벌써 네 차례씩 주고받았습니다. (4월 6·10·16·24일, 5월 7·15·18일 자 8면 발언대)

이는 우리 지역에서 처음 있는 일입니다. 우리 지역사회의 '건전하고 생산적인' 토론문화에 일조했다고 자평합니다. 지면을 할애해준 <경남도민일보>에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이번 토론을 계기로 우리 시민이 3·15의거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되고, 또 더 자세히 알게 되었기를 기대합니다.

그렇지만 혹시 민주화운동 단체들끼리 소모적인 논쟁이라는 인식이 있을까 우려되어 이번 논쟁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첫째, 4·11~4·13의거의 명칭과 관련해 그 의의를 훼손하지 않는 한 개인이나 단체의 역사관에 따라 자유롭게 사용할 권리가 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본회는 굳이 그동안 공식적으로 사용되어온 '제2차 마산의거'라는 명칭을 바꾸어야 할 이유가 없다는 입장에는 변함없습니다.

역사 독점주의나 패권주의는 민주화운동 기념단체와 어울리지 않으니 전혀 염려하시지 않아도 됩니다.

단 한 가지 명확하게 짚어두고 싶은 것은 학술적 검토와 사회적 공론화를 거치지 않은 채 특정 단체가 희망하는 명칭(4·11항쟁)과 규정(4·11항쟁은 4·19혁명의 '첫날'이다)을 자체 행사장 및 홍보물에만 사용하지 않고 현수막, 광고탑, 가로등 배너 등을 이용해 전 시민을 상대로 홍보한 것은 부적절했다는 것, 그리고 용어 사용의 자유가 이런 식으로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만은 짚어두고자 합니다.

둘째, 4·19혁명의 '첫날'이라는 규정은 무용할뿐더러 자칫 오해만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첫날'이라는 단어는 물론 '최초의' 도화선이라든지 '유일한' 진원지라는 표현도 사용된 적이 없는 이유는 3·15의거 이전에 이승만 독재에 반대하는 민주화 운동이 전혀 없었다거나, 있었다 해도 그로부터 받은 영향이 전혀 없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역사는 기억되고 다른 형태로 되살아납니다. 굳이 '첫', '최초', '유일'을 붙이지 않는다고 해서 한국 민주화 역사에서 3·15의거가 갖는 위상이나 의의가 감소하는 것도 아닙니다.

셋째, 4·11~4·13의거에 관한 명칭 문제와는 무관하게 본회는 당연히 2차 의거를 포함한 '3·15의거'의 이름으로 전반적이고 객관적으로 기리는 기념사업을 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이번 지상 토론에서 2차 의거가 3·15의거 전체, 나아가 4·19혁명 전체에서 차지하는 연결고리로서 그 역사적 중요성이 부각되었기에 이와 관련한 좀 더 깊은 연구를 거쳐 올해 가을로 예정된 6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와 토론을 하고자 합니다.

김영만 상임고문님 측에서도 토론자로 참가해 달라는 부탁을 미리 드립니다. 이 역시 건전하고 생산적인 논의의 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 지상 토론은 이 글로써 끝내고 더 이상 반론하지 않을 것임을 밝힙니다.

끝으로, 본 사업회는 제2차 마산의거 기념 관련 사업도 향후 관련 단체들과 함께 준비하겠다는 각오도 밝혀둡니다. 관련 단체들의 협력이 있기를 기대합니다. 아울러 이번 지상 토론에 많은 관심을 두신 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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