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추억이 주인공인 즐거운 자리이길
절친들이 묘비명 지어주면 더 특별할 듯

나의 장례식을 생각할 때가 있다. 남의 장례식에 다녀올 때 나의 장례식을 종종 기획하곤 한다. 고인의 삶이 보이지 않는 장례식. 고인과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장례식. 마음보다 조의금을 더 나누는 장례식. 짜인 매뉴얼에 따라 형식적으로 치러지는 장례식. 뻔한 레퍼토리로 흘러가는 남의 장례식을 보면서 나만의 특별한 장례식을 상상한다.

이미 죽은 마당에 장례식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부질없다는 생각도 들 때가 있지만 그래도 다짐한다. 죽어서도 나의 장례식은 내가 책임진다고.

먼저, 나는 내가 주인공인 장례식을 원한다. 내가 없는 장례식은 싫다. 내가 어디에서 태어났고, 누구와 사랑을 하고, 어떤 친구를 사귀었으며, 어떤 가치를 지향하면서 살았는지, 나의 삶이 닮긴 콘텐츠가 있는 장례식이면 좋겠다. 영상이든 사진이든 책이든 그 종류는 상관없다. 중요한 건 재미와 감동이다.

나와의 추억을 떠올리며 울다가 웃는 스펙터클한 스토리가 있는 장례식. 살았을 때 심심한 걸 못 참았던 나의 성격처럼 하품 나지 않는 장례식이길 바란다. 살아남은 자들의 가슴에 나와의 추억이 봄날 아지랑이처럼 뭉글뭉글 피어난다면 죽어서도 기쁘겠다.

나의 마지막을 친한 사람들만 배웅하길 바란다. 한두 번 인사한 사이, 오직 일로만 만난 사이, 속으로 욕하는 사이,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조의금 품앗이를 위해 찾아오는 조문객은 반갑지 않다. 내가 죽은 뒤 적어도 나를 다섯 번 이상은 그리워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 그런 친구들만 나의 장례식에 참석했으면 좋겠다. 삶과 죽음이란 무엇인가? 한평생 까칠하게 살다 죽은 김봉임 인생을 논하며 자기 인생을 겸허히 돌아보는 자리가 된다면 죽어서도 얼마나 보람이 되겠는가.

나의 장례식은 음식도 중요하다. 평소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먹는 것에 집착한 나의 인생이기에 조문객들을 맞이하는 음식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흔히 나오는 요즘 장례식장 음식들, 특히 마른 멸치볶음보다 더 마른 무말랭이보다 더 마른안주는 사양한다. 나의 장례식 음식은 절친들과 자주 가는 단골집 음식이면 좋겠다. 창원 '우정아구찜'도 좋고, '제일식당' 된장찌개도 좋겠다. 내 친구들이자 나의 조문객들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인간들의 특징상 음식의 퀄리티는 나의 장례식을 평가하는 데 가장 큰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맛있는 김봉임 장례식이라는 평가를 받고 싶다.

장례식장의 장소도 그늘진 지하가 아닌 햇볕이 잘 드는 야외면 좋겠다. 만약 내가 주택에서 살다 죽는다면 집 앞마당을 추천하고, 아파트에서 죽는다면 시신은 영안실에 두고, 장례식은 정원이 있는 커피숍 같은 곳에서 하길 바란다. 이미 내가 없는 세상에 나에게 절을 하는 조문 절차가 무슨 소용이 있는가? 그런 하나 마나 한 형식은 생략하고, 분위기 밝은 곳에서 우중충하지 않은 장례식이면 만족하겠다.

김봉임 묘비명 공모전. 내 장례식의 가장 특별한 이벤트다. 묘비명이야말로 나의 생을 압축해서 표현해주는 말이 아니겠는가.

화려한 미사여구보다 심플하지만 진솔한 묘비명이면 좋겠다. 우물쭈물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다, 조지 버나드 쇼의 묘비명을 선망해 온 나이기에 익살스러운 묘비명에 점수를 높이 쳐줄 가능성이 높다.

친구들이 말하는 김봉임 묘비명 공모전! 일등으로 뽑힌 자에게 조의금의 절반을 떼어줄 용의가 있다. 그러니, 친구들이여! 기대하고 나의 장례식에 참석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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