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이 화 부르기도 하고 복 부르기도 해
내 한마디, 남에게 희망일까 절망일까

코로나19로 인하여 원불교 법회를 휴회했다. 하루빨리 이 상황이 종식되어 주변의 모든 사람이 일상으로 돌아가고 어려워진 경제가 조금씩 풀려가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산책길에 나섰다.

교당 옆 하천을 따라 장유계곡으로 올라가면 노오란 산수유가 화사하게 반기고, 계곡 바위틈으로 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정겹다.

세상에는 수많은 소리가 있다. 오케스트라의 아름다운 화음의 소리도 있고 건설 현장의 우렁찬 기계 소리도 있다. 멀리 떠나는 기차의 기적소리와 이별의 뱃고동 소리도 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 속담에 말하고 다니는 것을 나팔 불고 다닌다고도 하는데, 사람 사람이 다 나팔이 있어 그 나팔을 불되 어떤 곡조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고, 어떤 곡조는 듣는 사람의 마음을 불안하게 하며, 어떤 곡조는 슬프게 하고, 어떤 곡조는 즐겁게 하며, 어떤 곡조는 화합하게 하고, 어떤 곡조는 다투게 하여, 그에 따라 죄와 복의 길이 나누이게 된다. 그런즉, 그대들은 모든 일을 당하여 나팔을 불 때, 항상 좋은 곡조로 천만 사람이 다 화하게 하며, 세상의 모든 일이 흥하게는 할지언정 서로 다투게 하고 망하게는 하지 않도록 하라. 그러하면, 그 나팔이 한량없는 복을 장만하는 좋은 악기가 되려니와 그렇지 못하면 그 나팔이 한량없는 죄를 불러들이는 장본이 된다."

오늘도 우리는 눈을 뜨면서 나팔을 불기 시작한다.

남의 아픔을 달래주고 희망과 용기를 주는 곡조를 불기도 하고 남을 이간시키고 다툼을 조장하고 가슴에 못을 박는 죄업의 곡조를 불기도 한다.

'구시화복지문'이라는 말이 있다. 입이 곧 화를 부르는 문이 되기도 하고 복을 장만하는 문이 되기도 한다는 의미다.

한 사병이 중상을 입고 야전병원에 실려 왔다. 소생 가능성이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군의관이 이 환자를 두고 무심코 한마디를 던졌다.

"이 친구 내일 새벽까지 죽지 않으면 희망이 있어요."

죽음 앞에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던 병사가 군의관이 하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그 말을 계속 되뇌었다.

'희망이 있어요. 내일 새벽까지 죽지 않으면.'

군의관이 던진 한마디 말에 희망을 걸고 그는 새벽까지 안 죽겠다고 몸부림을 쳤다. 죽음이 다가올 때 죽음에 저항하며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붙들고 사투를 벌였다.

드디어 밤 12시가 지나고 새벽이 다가오자 그에게 새로운 생명이 넘쳐흐르기 시작했다.

'새벽이 되었다. 이제 나는 살았다!'

그 군의관이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죽어가던 그 사병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었다.

내가 던지는 순간의 한마디가 남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는 말인지, 절망과 좌절을 주는 말인지, 조용히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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