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주로 거름 퍼준 시아비 천벌·마을 홍수
착한 며느리는 스님 당부 잊어 돌부처로
관음사에 6·25 때 동강 난 부처바위 실존

우연히 들른 곳에서 예부터 전해오는 이야기를 만나는 것만큼 즐거운 일이 있을까 싶다. 시인이나 소설가, 수필가들의 글감이 어쩌면 이런 우연에서 비롯되기도 하겠고. 특히 옛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전설이 깃든 현장을 보게 된다는 건 모종의 흥분마저 일게 하는 자극일 것이다.

창녕군 도천면에 일이 있어 갔다가 송진삼거리 근처에 있는 관음사에 들렀을 때 일이다. 사찰 입구에 '마애불, 3층석탑, 석등 대한불교조계종 관음사'라는 안내판이 어쩌면 발걸음을 이끌었는지 모른다. 사찰이라면 당연히 있을 법한 것들을 무슨 이유로 간판에다 새겼을까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기역 자로 꺾인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경내에 닿는다. 작은 연못을 가로지른 돌다리를 먼저 만난다. 맞은편에 오층석탑이 있고 바로 뒤에 대웅전에 해당하는 설법보전이 위용을 자랑하며 서 있다.

▲ ① 창녕군 영산면 신제리에 있는 장척호 전경  /정현수 기자
▲ 창녕군 영산면 신제리에 있는 장척호 전경. /정현수 기자

잔디밭으로 잘 가꾸어진 경내로 들어서면 왼쪽에 천불전이 있고 그 바로 옆에 법당인 듯 비각인 듯 현판도 없는 건물이 나란히 서 있다.

문은 닫혔으나 잠겨있지 않다. 누구든 열어보라는 암시이기도 하겠다. 동그란 문고리를 풀고 문을 열면 시선과 함께 안으로 들어간 빛으로 내부가 확 밝아지면서 부처바위가 모습을 드러낸다. 갇혀있던 향 내음이 빠져나오면서 온몸을 감싼다. 부처바위 정령이 몸속으로 스며드나 싶은 느낌이다. 바위는 두 동강 난 것을 붙인 흔적이 역력하다. 이 부처바위의 이름은 '미륵존불상'이다.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호. 설명문에 이렇게 적혀 있다. "원래 도천면 덕곡 부근에 있던 것을 일제강점기에 영산∼덕곡 간 도로를 개설하면서 이곳으로 옮긴 것이라 전해진다. 불상 중간에 옆으로 금이 가 있는 것은 한국전쟁으로 관음사가 불탔을 때 터진 것이라 하며, 밤에 빛을 낸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미륵존불상이 덕곡 고개 도로공사 때 발견된 것이라는 단서는 영산면 장척호를 배경으로 한 장자늪 전설로 연결되었다. 장자늪 전설처럼 비슷한 유형의 전설이 전국 곳곳에 퍼져 있는 것을 광포설화(廣布說話)라고 한다. 장척호 전설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전설의 마지막 구성이 실제로 돌부처가 발견된 역사적 사실과 맞닿으면서 신비성과 함께 현실성을 갖췄다는 점에서 더 재미를 느끼게 해준다. 1984년에 만든 <창녕군지>에 실린 이 전설의 내용은 대략 이렇다.

▲ ② 창녕군 도천면 송진리 관음사 전경 /정현수 기자
▲ 창녕군 도천면 송진리 관음사 전경. /정현수 기자

옛날에 욕심이 많고 남에게 베풀기 인색한 부자가 장척에 살고 있었다. 곡식이 광에서 썩어날 정도임에도 비싼 장리를 놓아 재산을 늘렸다. 어느 여름날 한 스님이 찾아와 시주를 청했다. 그러자 장재(장자) 양반이 머슴에게 "야, 저 중놈에게 이 거름 한 쇠스랑을 주어라"고 했다. 이때 그 집 며느리가 물 길으러 가다가 이 광경을 보고 하도 기가 막혀서 시아버지 몰래 물동이에 쌀을 담아 나와 스님을 뒤따라 시주했다. 그러자 스님은 "부처님의 자비가 아씨께 내렸으니 지체 말고 날 따르시오" 하고는 무조건 따라오기를 재촉하자 물동이를 머리에 인 채 스님을 따라나섰다. 동구 밖을 벗어나는데 검은 구름이 모여들더니 소나기가 퍼붓기 시작했다. "절대로 뒤돌아보지 마시오. 만약 뒤돌아보면 끝이오"라고 하는 스님의 당부에 정신없이 따라갔다. 삽시간에 소나기는 뇌성벽력을 동반한 폭우로 변하고 온 산천이 물바다가 되었다. 고갯길을 오르고 있을 때 비가 그쳤다. 그때 천지가 진동하는 물소리를 듣고 집 걱정이 난 여인은 스님의 당부를 잊고 뒤돌아보고 말았다. 자기가 사는 동네는 바닷물이 넘친 듯 땅이 꺼진 듯 물로 뒤덮여 사라져버린 것이 아닌가. 그 순간 여인은 놀라움으로 그 자리에서 돌로 굳어져 돌부처가 되어버렸다. 장자가 살았던 마을은 큰물로 말미암아 넓은 늪으로 변하고 장자는 죽어 구렁이가 되어 지금도 늪 속 깊은 곳에 살고 있다고 한다. 영산에서 부곡으로 가는 고개를 부처고개라고 하는데 일제강점기때에 도로개설을 하면서 이 돌부처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부처가 있던 자리에서 멀리 서쪽으로 산 너머 장척호가 한눈에 보인다.

▲ ③ 관음사 천불전 옆에 있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호 미륵존불상 /정현수 기자
▲ 관음사 천불전 옆에 있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21호 미륵존불상. /정현수 기자
▲ ④ 온천로를 따라 영산면에서 부곡면으로 넘어가는 덕곡리 고갯길(전설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도로공사 중 이 근방에서 돌부처가 발견되었다고 추측된다)  /정현수 기자
▲ 온천로를 따라 영산면에서 부곡면으로 넘어가는 덕곡리 고갯길(전설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도로공사 중 이 근방에서 돌부처가 발견되었다고 추측된다). /정현수 기자

전설을 읽다 보니 구약성서에 나오는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가 떠오른다. 악과 타락의 도시 소돔과 고모라가 불바다로 변할 때 탈출하던 롯의 처가 뒤돌아보는 바람에 소금기둥이 되었다는. 금기를 어겨 불행을 자초하는 이야기는 인류 공통의 관심사인 듯하다. '판도라' 역시 마찬가지고.

이런 전설을 읽고 장척호로 떠나본다. 장척호는 꽤 넓은 늪이다. 한자로 '丈尺湖'라고 쓴다. 장척이 열 자 길이가 되는 자를 뜻하므로 큰 호수라는 의미겠다. 이 단어는 또 부자를 뜻하는 '장자(長子)'라는 단어와 상통한다.

장척호는 중부내륙고속도로 영산휴게소 마산방면 북쪽에 있다. 행정적으로는 신제리와 봉암리 경계다. 넓이는 0.5㎢로 약 15만 평에 이른다. 옆에는 번개늪이라 불리는 봉산지가 있다. 장척호는 기러기가 날아가는 모습이고 봉산지는 타원형이다. 주민 중에는 이 봉산지를 전설의 장자늪으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다.

▲ ⑤ 장척호 남쪽 제방 전경.  /정현수 기자
▲ 장척호 남쪽 제방 전경. /정현수 기자

장척호를 둘러본 뒤 장자의 며느리가 스님을 따라 고개를 오르다가 뒤돌아보는 바람에 부처바위가 되었다는 덕곡리로 향한다. 온천로를 따라 부곡으로 가다 보면 고갯길이 나온다. 인근에 덕곡지가 있다.

부처바위, 즉 관음사의 미륵존불상이 발견되었다는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다. 다만 전설에 따라 '멀리 장척호가 잘 보이는' 위치인 고개 부근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하지만 기록과는 달리 차량이 오가는 고갯길에서 멀리 장척호를 볼 수는 없다. 전설에 얽힌 지역을 둘러보면서 이야기를 한 번 더 돌이켜본다. 장자라는 욕심 많고 인색한 부자의 전형, 마음씨 착한 며느리, 그리고 해결사 스님이라는 존재. 이러한 등장인물은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나 싶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