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서 발병했지만 스페인에서 집중보도
전쟁 중에도 제 역할한 언론의 힘 보여줘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나갈 무렵인 1918년, 전 세계에 퍼진 독감으로 최소 2500만 명, 최대 5000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14세기 유럽에 창궐해 전체 유럽 인구 3분의 1을 앗아간 페스트와 함께 인류 역사에 기록된 최악의 범유행전염병(팬데믹) 중 하나인 스페인 독감이다.

당시 전 세계 인구가 약 16억 명이었는데 감염자는 자그마치 전 인류의 3분의 1인 5억 명에 육박했다.

우리 한반도는 일제강점기 시절이었는데 연보에 따르면 한반도의 조선인은 약 1680만 명이었고, 그 절반에 가까운 약 742만 명이 감염되었다고 한다. 상상을 초월하는 감염률이었다. 이 독감의 치사율은 3~9% 안팎이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도 약 14만 명이 사망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스페인 독감이 페스트를 비롯한 과거의 다른 범유행전염병보다도 더 심각했던 것은 이유가 있었다.

고대나 중세시대에는 위생이나 방역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거나 미미해서 감염률과 사망률이 매우 높았는데, 스페인 독감은 의학의 발달로 세균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있었고 공중보건 체계도 어느 정도 잡혀있었던 시절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설명하기 어려운 감염률과 치사율을 보였다. 당시 제1차 세계 대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가 약 1000만 명이었는데 전쟁으로 인한 사망자 수를 훨씬 초월하였다. 마땅한 치료제나 백신이 없는 전염병이 전 세계적으로 대유행을 하게 되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현재 코로나19가 발생지인 중국 우한시를 시작으로 우리나라, 이란, 그리고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유럽 등에서 대유행하고 있다. 중국은 약 8만 명의 감염자에 3200명 넘는 사망자라는 큰 피해를 뒤로하고 다소 진정세로 돌아선 국면이나 아시아·유럽·아메리카 등 전 세계적으로 확산세를 보이고 있다. 이런 추세라면 코로나19가 스페인 독감만큼은 아니더라도 팬데믹이 될 가능성이 매우 커 보인다.

현재 우리나라도 감염 공포로 인해 마스크가 일상화되고 있고, 갑작스레 수요가 폭증하다 보니 국민이 마스크 구매에 많은 고충을 겪고 있다.

많은 이가 스페인 독감이라는 명칭 때문에 이 독감이 스페인에서 발생한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스페인 독감은 대체로 미국 시카고에서 확산세가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전쟁이 끝난 후 병사들이 귀향하기 위해 모여든 캠프에서 발병하여 확산하였다는 것이다.

왜 최초 발원지나 확산지와 상관없는 스페인이라는 이름이 붙었는지 의아한데, 당시 전쟁으로 인해 전쟁 당사국들은 보도 검열로 이를 다루지 않았고,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지 않았던 나라인 스페인 언론에서 이 유행병에 대해서 깊이 다루었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스페인 독감'이라고 명명되었다고 한다.

이번 코로나19도 최초 발생지가 중국 우한이었기 때문에 초기에 '우한 바이러스', '우한 폐렴'으로 불렸다가 WHO에서 '신종 코로나', '코로나19'로 정식 명칭을 붙였다. 과거 유행병들의 명칭을 보면 대체로 발생 지역이나 그곳을 다스린 왕의 이름을 따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스페인 독감이라는 명칭은 전쟁의 와중에도 전염병 위험을 알리고 경고한 당시 스페인 언론의 위대함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내외적으로 어지러운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이 과연 무엇일지 다시금 떠올려본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