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의 강 살리기라더니 생명 죽이기만
주민에게 문화·역사·생태 물어나 보라

'고향에 가고 싶다. 고향에 가서 살고 싶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누구나 한 번쯤 또는 불쑥불쑥 가슴속에 품고 사는 생각이다. '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휘돌아나가던' 그 고향 말이다. 여름이면 물장구치고 물고기 잡으며 놀던 강, 겨울이면 온종일 얼음 지치며 자치기하던 강과 논이 있던 그 고향 말이다.

어린 시절 추억 떠올려 보면 고향은 참으로 따뜻하고 정겨운 모습이었다. '꼬랑·또랑'에는 송사리랑 미꾸라지가 살았고, 강으로 나가면 잉어랑 붕장어도 살고 있었다. 큰맘 먹으면(?) 아버지 안주 핑계로 밥상 위에 모셔올 수도 있었다. 도랑이 조금 넓어지는 곳에는 여울도 있었고, 햇빛 받아 반짝반짝 빛나는 윤슬도 보였다.

모두 먼 옛날얘기다. 이제 추억으로만 간직해야 하는 유물들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어릴 적 아름다운 추억 되돌려 주는 사업이 진행된다는 희소식이 들려왔다. 이름을 살펴보니 오매불망 꿈에도 그리던 '고향의 강' 사업이다. '아! 우리가 어릴 때 놀았던 그 고향의 강을 되살리는 모양이네. 그럼 옛날 모습으로 복원하는 사업이겠지?'

늘 그랬던 것처럼 우리네 생각은 마냥 순진하기만 했다. 착각에서 벗어나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신을 차리고 살펴본 '고향의 강' 사업은 바로 이런 것이었다. '통수단면 확보 통한 하천의 홍수 방어 능력 증대, 자전거 도로, 산책로 등 체육 시설 설치, 자연 학습장, 휴게 쉼터 등 문화 시설 설치 추진.' 이렇게 2010년 시작된 '고향의 강', '생태하천복원' 사업은 지금도 전국 방방곡곡에서 계속 진행되고 있다. 한 사업당 어림잡아 수십억에서 수백억 원이 드는 사업이다. 전국적으로는 국가 세금 수조 원이 현재 진행형으로 투입되고 있다.

지금까지 진행된 사업 결과는 이렇다. 물론 눈으로 보이는 풍경 중심으로 내린 결론이다. 아름다운 계곡과 여울이 있던 하천은 일직선으로 파헤쳐졌다. 콘크리트를 처발랐다. 사람 몸통만 한 바위들을 줄지어 세웠다. 모난 돌덩이 사이로 시멘트를 발라 생명이 숨쉬기 힘든 바닥을 만들어 놓았다. 강에는 중장비가 줄줄이 늘어서 자갈과 모래를 수없이 채취해 나갔다. 어떤 강은 뛰어 들어가 공을 차도 될 만큼 넓은 평지가 만들어져 있다.

아직도 이런 준설 작업은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 날이 가면 갈수록 강은 점점 더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간다. 이곳저곳 아무리 살펴봐도 이건 '고향의 강'이 아닌 '타향의 강', '망향(亡鄕)의 강'이다.

정말로 제대로 된 고향의 강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은 할머니·할아버지·아들·딸·손녀·손자 모두가 하는 생각일 터이다. 동네 이장에서부터 국회의장·대통령까지 한마음 한뜻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다면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물어나 보면 된다. 동네 사람들 붙잡고 옛날에 '또랑 모습은 어땠능교?', '홍수가 나모 우찌 피했으까예?' 마을 주민들에게는 그 지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물어보면 되고, 환경단체와 야생동물 전문가들에게는 하천과 강의 생태가 어땠는지를 물어보면 되는 것이다.

제발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생명을 살리는 강, 추억 떠올릴 수 있는 강 사업이 진행되길 빌고 또 빌어본다. 졸졸졸 흐르는 시냇물 사이로 물고기들이 유유히 헤엄쳐 다니는 강, 버드나무 자라는 작은 섬 위에 이름 모를 물새 한 마리 외로이 서 있는 강, 강기슭엔 윤슬 사이로 억새와 갈대가 하늘하늘 흔들리는 강 풍경이 무척이나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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