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탓 농가 시름
딸, 아버지 사연 SNS 올려
'우리가 돕자' 구매 잇따라

겨울이 아닌 듯 따스한 데다 햇살마저 눈부신 주말. 9일 오후 창원시 의창구 동읍에 있는 장기태(60) 씨의 화훼 비닐하우스에는 프리지어가 가득했다. 노란 꽃망울을 터트린 프리지어 사이사이 사람꽃도 피었고 웃음꽃도 만발했다. 이곳에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장 씨의 딸 지현(30) 씨가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페이스북에 사연을 올린 건 지난 8일 오후 10시께. 그는 페이스북 페이지 '창원 사람 오이소'에 화훼농가가 죽어가고 있다고 알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사태로 초·중·고교, 대학 졸업식이 취소되거나 졸업식 당일 학부모 출입이 통제되면서 꽃 소비가 급감해 화훼업계가 타격을 입은 상황이었다.

장기태 씨 역시 1년간 애지중지 키워온 프리지어를 폐기해야 할 판이다. 장 씨는 지난해 6월 암 판정을 받고 그해 9월 수술까지 했다. 13년간 프리지어 농사를 해온 그는 암 수술 과정에서 더 이상 키우기 힘든 프리지어 농사를 짓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몇 개 비닐하우스가 버려진 끝에 남은 마지막 비닐하우스에서 자식처럼 키워낸 프리지어. 그런 프리지어를 신종 코로나 사태로 폐기처분해야 한다니 믿고 싶지 않았다. 보다 못한 딸 지현 씨는 가만히 앉아 손 놓고 있을 수 없다며 SNS에 사연을 올렸다.

노랫말처럼,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울까. 지현 씨가 사연을 올린 후 생긴 일을 보면 고개를 끄덕일 듯하다. "조금이라도 팔아보자는 취지에서 글을 올렸는데 반응이 좋은 거예요. 8일 밤에 올렸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호응을 보이면서 다음날 새벽 1시까지 연락이 오더라고요. 일요일인데 와도 되느냐고요." 지현 씨 이야기다.

▲ 9일 오후 창원시 의창구 동읍에 있는 장기태(맨 왼쪽) 씨의 화훼 비닐하우스에서 어려운 농가의 사연을 접하고 방문한 사람들이 프리지어를 구매한 후 장 씨와 딸 지현(왼쪽 둘째) 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류민기 기자
▲ 9일 오후 창원시 의창구 동읍에 있는 장기태(맨 왼쪽) 씨의 화훼 비닐하우스에서 어려운 농가의 사연을 접하고 방문한 사람들이 프리지어를 구매한 후 장 씨와 딸 지현(왼쪽 둘째) 씨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류민기 기자

9일 아침부터 화훼 비닐하우스로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지인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이 대다수다. SNS로 사연을 접하고 온 것인데 가족, 친구, 커뮤니티 회원 등 가지각색이었다. 원하는 만큼 프리지어를 따면 되는데 누군가는 따는 방법과 관련해 설명을 듣고, 누군가는 직접 따고, 누군가는 사진을 찍었다. 사람꽃이 피고 웃음꽃이 만발하니 화훼 비닐하우스에 활기가 도는 건 당연했다.

경남연구원 서은정(47) 매니저도 '사람꽃' 중 한 명이다. 창원시 성산구 반림동에 거주하는 서 씨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밴드에 알려 주민들로부터 100단 넘게 주문받았다. 커뮤니티 회원들과 함께 꽃을 사러 온 그녀는 "사람들이 SNS를 통해 계속해서 사연을 전파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순재(55) 창원시 의창구 국회의원 예비후보도 지역 농협 관계자들과 동읍 주민들에게 사연을 알렸다. 동읍농협 봉강지점에서 근무하는 허성득(46) 씨는 부인과 함께 와 10단을 구매했으며, 판신마을 이영란(58) 부녀회장은 30단을 사 주민들에게 나눠준다고 말했다.

커뮤니티 '창원촛불방'에 올라온 글을 보고 방문했다는 이춘(57) 씨는 "요즘 불안과 공포를 조장하는 글이 많은데 실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불안과 공포에 떠는 것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돕는 게 지혜롭게 (사태를) 해결하는 길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장기태 씨는 "밤새도록 잠도 못 자고 있었는데 사람들이 찾아줘 다행이다. 사람 사는 맛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지현 씨 역시 "사람들이 작게나마 힘을 보태주는 게 정말 고맙다. 관심을 가져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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