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불신 탓에 외면·혐오 대상으로
품격·염치 아는 사람 잘 보고 뽑아야

동료로 보이는 사람들끼리 음식점에서 말다툼하는 광경을 봤다. 선거철이라 그런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정치권의 행태와 관련해 푸념을 시작했다. 한쪽 편은 사회적인 명분보다는 실리와 실체적 사실 부분을 중요시하는 듯했고, 다른 한편은 공동체 의식과 사회정의를 주장하는 듯했다. 논리적으로 따지거나 비판하지 않고 서로 자기들 주장에 감정을 싣고, 자기 말에 공감하거나 동조하지 않으면 아닥치듯 싸우는 것이었다. 그들의 흥분에 질려버릴 것만 같았다.

이렇듯 어제부터인가 사회 전체의 담론에 의해 형성되는 선악의 구분은 '누구 편이냐'에 따라 구분하는 듯하다.

그리고 나와 '다른 생각, 사고'를 가지고 있으면 그것을 '틀리다'고 인식하고 상대를 향한 공격의 명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정치 이야기는 가족끼리도 하는 게 아니란다. 친구들과 수많은 얘기를 나눠도 정치적 이슈나 사회적 현안에 관한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않는다. 그만큼 정치로 인해 우리 사회가 험악해졌다. '왕년 타령'은 침방울 튀기며 잘도 얘기하는데 왜 정치·사회 이야기는 듣기만 해도 불편해지는 걸까? 이렇게 무시하거나 외면해도 괜찮은 건가?

"지금 정치는 상대가 죽어야 내가 사는 정치"라는 한 국회의원의 탄식에서도 드러났듯이 '정치=싸움질'이라는 인식이 깊이 박혔으니 정치에 대해 혐오감이 드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쓸데없이 심각해지기도 한다.

정치가 국민으로부터 외면당하고 냉소를 넘어 혐오의 대상이 된 건 아무래도 '막말 정치', '상호불신'과 '정치적 포용력 부족', 그리고 국민에게 각인될 만한 '감동이 있는 정치'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삶과 변화의 비전을 제시하고 합리적 논의를 통해 정책을 관철하려는 민주적 정당정치는 고사하고 마주 앉는 것조차 거부한다. 기득권 세력 보호를 위한 정쟁만 일삼음으로써 정치·이념적 갈등과 분쟁을 심화하였고, 이러한 정치인의 행태는 정치 불신과 민심 이반으로 이어진 것이리라.

바야흐로 총선의 해가 밝았다. 서로 내 주장이 옳다고 우겨댈 것이 아니라 상호 의견을 내세워 그것의 정당함을 논하는 과정을 통해 민의를 제대로 표출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영화 <스윙 보트>에서 주인공(몰리 존슨)은 이렇게 말한다. "속박에서 자유로, 자유에서 번영으로, 번영에서 만족으로, 만족에서 무관심으로, 그리고 무관심에서 다시 속박으로 향하는 이런 역사에서 벗어나려면 순환 고리를 깨야 합니다."

영화의 일침은 이렇다. 정치에 무관심하면, 그리고 유권자의 권리를 방관하거나 묵과하면 우린 다시 속박을 당한다고, 우리 스스로 유권자 중심의 정치문화를 만들어나가기 위해선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세심하게 따져봐야 한다고. 정치에 대해서, 우리의 삶에 대해서.

그렇다. 정치는 곧 생활이다. 정책의 방향과 질에 따라 우리의 삶과 미래가 좌우된다. 그러니 정치·사회 문제들을 암묵적으로 승인해서도, 외면해서도 안 된다. 무엇이 국민통합과 국익을 위한 길이냐는 기준을 두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품격 있는 사람, 잘못한 일에 부끄러워할 줄 알고 염치를 목숨만큼 소중히 여기는 사람을 선량으로 뽑기 위해 귀를 열고 두 눈을 부릅떠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영논리에 속박되거나 예속됨이 없이 모름지기 국민을 무서워하고 섬길 줄 아는, 그야말로 제대로 된 '헌법기관'이 선출되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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