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로 글·그림 그리는 불가 참선 수행 중 하나
대담한 생략과 암시 속 강한 상징성 내포 특징
무형문화재 성각 스님 "밥 꼭꼭 씹듯 음미해야"

전통문화는 백성들 사이에서 자연스레 전승되는 것도 있겠지만 기능과 예능을 보유한 스승에서 제자로 전수되어 뚜렷한 맥을 형성해 이어지는 것이 많다. 단청이나 판소리, 1편에서 다뤘던 가곡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전통 중에 선화(禪畵)도 들어간다는 사실은 의외다.

대개 불교에서 참선 수행의 하나로 행해지는 선서화(禪書畵)는 수묵으로 표현된다. 먹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차원에서야 조선시대 사대부 그림인 수묵산수화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느냐에 기준을 둔다면 두 그림의 차이는 크다.

선화라고 해서 꼭 불가 승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어찌 보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 역시 선화의 영역으로 두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불교 미술평론가들은 추사의 세한도를 두고 '선(禪)적인 사유가 작동하고 있고 이는 격식을 떠나 궁극적인 깨달음을 추구하는 선화와 다르지 않다'고 해석하고 있다.

'선화' 하면 먼저 떠오르는 그림이 있다. 달마도다. 달마는 중국 남북조시대 선종(禪宗)을 창시한 인물이다. 그는 좌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자 했다. 그런 달마를 선화로 일필휘지 그려내 유명해진 조선 때 인물이 있다. 김명국. 그의 '달마도'는 대담하고 힘찬 필치로 달마의 내면적 정신세계까지 표출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선화는 우리나라에서 고려 때부터 그려졌다는 기록이 있다. 다만 선가에선 기록을 남기는 것을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의 선화가 남아있지는 않다.

고려 중기 문신 이규보가 지은 <동국이상국집>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달마의 풍도를 높이 사 주야로 그의 도를 사모하고 그의 상을 생각하여 남을 시켜 존상을 그린 족자에 나에게 글을 간략하게 지어서 써주기를 청한다." 달마도가 유행했음을 알 수 있는 장면이다.

▲ 성각 스님 선화 작품 '참 좋은 인연'. /성각 스님 선화집
▲ 성각 스님 선화 작품 '참 좋은 인연'. /성각 스님 선화집

◇선화와 불화의 차이 = 달마도를 두고 보면, 선화인지 불화(佛畵)인지 헷갈릴 수도 있겠다. 선화와 불화를 구분하는 명백한 기준이 있다. 작품을 그려 감상용으로 쓰이면 선화요, 예배용으로 쓰이면 불화다. 불교 그림 중에 탱화는 엄연한 불화다. 그리고 선화와 불화의 큰 차이점은 수묵화인가 채색화인가도 구별하는 기준점이 된다.

선화를 좀 더 설명하면, '대담한 생략과 암시, 상징성이 강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이런 차원에서 현대미술의 추상화와도 통한다 할 수 있겠다.

선 미술로 불교 수행의 면면을 대중에게 알리는 작업을 하는 남해 망운사 주지 성각 스님은 선화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선화는 마음 닦는 절차를 담아 간결하고 여백의 미로 창출될 때 비로소 살아서 꿈틀거리는 그림이 됩니다."

▲ 선화 작품전이 열리고 있는 부산 복천박물관으로 향하는 성각 스님. /정현수 기자
▲ 선화 작품전이 열리고 있는 부산 복천박물관으로 향하는 성각 스님. /정현수 기자

◇무형문화재 성각 스님 선화 세계 = 경남도민일보 캄럼니스트이기도 한 성각(스님은 국내 선화 분야에서 독보적 경지에 이른 승려 중 한 사람이다. 스님은 1988년 출가해 쌍계사 총림방장인 고산 대종사의 법제자로 선맥을 이어오고 있다. 김해 동림사에서 선화를 익혀 고향인 남해로 돌아와 망운사에 거처하며 본격적인 선화의 길을 걸었다. 이렇듯 스님의 선화는 선맥이 분명해 2013년 부산시가 시 무형문화재 19호로 지정했다.

스님의 선화는 부산전통예술관(수영로521번길 63)에 가면 항상 볼 수 있다. 그리고 지난달 27일부터 오는 15일까지 부산 복천박물관에 스님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다. '혼맥', 부산시 지정 무형문화재 보유자 작품전이다.

▲ 성각 스님 선화 작품 '억겁의 미소'. /성각 스님 선화집
▲ 성각 스님 선화 작품 '억겁의 미소'. /성각 스님 선화집

전시작품은 '분타리카 피었네' '원각' '생명의 탄생' '어부바' '산은 달을 품고' 등이다. 모두 스님이 화두로 삼은 소재다.

예술의 전당 이동국 큐레이터는 스님의 선화에 대해 "사람 사는 이야기, 즉 '생명사랑'과 같은 우리 인류가 직면한 문제로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자연 환경에 대한 작가의 문제의식과 고민, 그리고 치유가 간결하지만 강한 메시지로 드러나 있다"고 평가했다.(<성각스님의 선서화를 읽다>, 집옥재, 2014)

▲ 성각 스님이 병풍에 그린 작품 일부. /성각 스님 선화집
▲ 성각 스님이 병풍에 그린 작품 일부. /성각 스님 선화집

◇선화 감상법 = 지난달 29일 성각 스님을 찾았다. 선화를 어떻게 감상하면 좋을지 작가에게서 직접 듣는 것이 좋겠다 싶어서였다.

스님은 부산전통예술관 상주 문화재여서 주중엔 이곳에서 지낸다고 했다. 주말과 불교 특정일엔 남해 망운사에서 신도들과 만난다.

"우리가 밥을 먹을 때 입안에서 꼭꼭 씹어서 넘김으로써 장도 편하고 배설도 편하게 되듯이 선화를 감상할 때 밥 먹는 과정처럼 유심히 보면서 선화가 말하고자 하는 화두를 생각하면서 차분하고 은근한 마음으로 깊이 감상하면 자기완성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물론 선화를 보는 순간 갑자기 깨닫는 '돈오돈수'를 겪는 수도 있을 것이다. 스님이 말하는 선화 감상법엔 그것도 배제하지 않는다.

지난달 초 스님은 진주교도소에 선화를 기증해 전시회를 열었다. 스님의 선화가 지닌 전반적인 특징이 밝고 맑은 정신이 투영된 작품이어서 그런지 왠지 화려한 전시장이 아닌 곳의 전시가 더 어울리지 않나 싶은 생각도 든다. 스님에게 전시와 관련해 특별한 계획이 있는지 물었다.

"과거에는 거의 밝은 곳에서 주로 전시를 했는데, 내년부터는 좀 더 어둡고 척박한 곳을 찾아가 그들과 어울리고 같은 마음으로 담아내는 그런 선 예술의 세계를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스님은 작품의 형식 면에서도 변화를 예고했다. "전통적이면서 현대 감각에 맞는, 같이 어우러져 살아 숨 쉬는 작품을 구상하고 있습니다."

선화가 전통이면서도 시대를 반영하며 변화하고 있음을 스님의 동자 작품에서 발견할 수 있다. 밝게 웃는 동자 선화의 화제를 보면 단박에 그것을 느낄 수 있다.

'행복이란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는 것' '오늘은 참 좋은 날이네' '당신이 최고야' 등. 동자는 불교에서 중요한 존재로 여겨진다. 동자 선화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마음이 순수해지고 편안해지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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