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적 양심'에서 내가 택할 스토리는
권력자 다툼 속 소외되는 약자 이야기

'정우성'과 '조진웅' 배우가 투 톱으로 출연하는 영화가 있다고 치자. 영화 속에서 정우성은 법무부 장관이다. 조진웅은 검찰총장이다. 법무부 장관은 검찰을 개혁하겠다고 한다. 검찰총장은 법무부 장관 개인의 비리가 많다며 수사의 칼날을 휘두른다. 영화 초반부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앞으로 어떻게 시나리오가 전개될지 3가지 선택지가 있다.

먼저, '정우성이 주인공이고, 조진웅이 악당'이라는 설정이다. 검찰총장인 조진웅은 검찰 조직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법무부 장관 정우성을 치려고 한다. 검찰이 가진 막강한 수사력으로 법무부 장관을 탈탈 턴다. 범죄가 성립되지도 않을 사안을 언론에 흘려 여론을 호도한다. 야당 국회의원들이 삭발하며 법무부장관 탄핵을 주장한다. 광화문에서는 수천 명이 태극기를 들고나와 시위를 벌인다. 법무부 장관은 정치적 공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버텨낸다. 하지만, 검찰이 자택을 압수수색하고, 아내와 딸, 아들까지 소환조사를 하게 되자 흔들린다. 법무부 장관은 조국(나라)을 위해 가족의 고통을 감수할지, 조국보다는 가족을 선택할지 딜레마에 빠진다.

결국, 법무부 장관은 검찰이 주장했던 모든 혐의를 단숨에 해결하고, 검찰 내부의 적폐를 드러내 검찰 개혁을 시작한다. 검찰총장과 그 수하 검사들은 줄줄이 옷을 벗고, 법무부 감찰실에 끌려가 조사를 받는다. 법무부 장관은 국민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으며,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된다.

'히어로 법무부 장관이 빌런 검찰총장을 제거하고 정의를 구현한다'. <배트맨>이나 <어벤져스>처럼 화려한 볼거리도 없이, 이야기만 '히어로물' 형식을 띤다고 한다면, 이 영화 어떻겠는가? 정말 유치한 영화가 될 거다.

두 번째, '악당인 줄 알았던 검찰총장 조진웅이 착한 사람이고, 정의로운 줄 알았던 법무부 장관 정우성이 나쁜 사람'이라는 반전 스토리다. 이야기의 시작은 같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정우성이 정말 나쁜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바로 반전이 이어지면서 조진웅이 나쁜 사람처럼 여겨진다. 그러다가 또 역전이 되면서 이야기는 반전에 반전을 거듭한다. 이야기는 절정에 다다르고,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에서 법무부 장관이 승리한다. 검찰총장은 천하의 악당이 된다. 관객들은 반전에 반전이 이어지는 서스펜스를 즐기다가, 마침내 정의가 승리하는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그리고, 영화가 다 끝날 무렵, 정우성이 진짜 악당이었다는 사실이 관객들에게 알려진다. 정우성은 화면 정면을 주시하며 사악한 미소를 짓는다.

이런 스토리의 영화, 성공할 수 있을까? 일단 시나리오를 정말 치밀하게 잘 써야 한다. 게다가 아무리 시나리오를 잘 썼다 해도, 흥행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잘생긴 배우'의 대명사인 정우성을 악당으로 설정했다는 게 팬들에게 불쾌하게 다가올 수 있다. '우리 우성 오빠는 그렇지 않다능!' 이런 댓글이 빗발치며 영화가 '폭망'할 수 있다.

세 번째, '세상에 착한 사람은 있을까? 정의는 있을까?'라는 주제의 이야기다. 권력자들끼리 헤게모니 다툼을 벌일 때, 정작 우리 사회가 보듬어줘야 할 약자들은 소외당하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는 독립예술영화에나 어울린다. 정우성, 조진웅과 같은 스타 배우들을 섭외할 수도 없을 거다.

위의 세 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작가적 양심'상 마지막일 거다. 영화는 서초동 삼성전자 CCTV 철탑 위에서 고공농성 중인 김용희 씨가 대검찰청 앞 도로를 가득 메운 수십만 명의 시위대를 바라보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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