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상류사회 애창곡
남창 26곡 여창 15곡 전승
지난 2010년 유네스코 등재
창원 가곡전수관 매월 공연
국가무형문화재 즐길 기회

끊임없이 변화하는 게 문화다. 때론 급격히 확산하기도 하고 때론 사람들의 기억에서 어느 순간 사라지기도 한다. 자의든 타의든 역사의 물줄기에서 벗어난 지 오래된 문화를 지금 기억하는 사람은 없다. 어쩌다 기록에라도 남아 복원되기도 하지만 그 문화가 아무리 소중한 우리의 자산이라 하여도 현재의 사람들이 그것을 아끼고 가꾸지 않으면 문화로서의 가치를 다시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세상의 모든 일이 알면 재미가 있고 모르면 재미가 없다. 어렵게 이어지고 있는 우리 지역의 전통문화를 되돌아봄으로써 작으나마 관심을 돋우고자 월 1회 이 지면을 마련한다.

▲ 가곡전수관에서 월 1회 공연하는 목요풍류. /가곡전수관
▲ 가곡전수관에서 월 1회 공연하는 목요풍류. /가곡전수관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 마라/ 일도 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간들 (어떠하리)"

조선 중기에 활동한 황진이의 시조 '청산리 벽계수야'다. 학창시절 배웠듯 시조(時調)는 시(詩)와 다르다. 지금에야 정형시라는 분류에 들어가 노래로 불리지 않지만, 조선 시대엔 모두 노래였다. 그러니까 국어책에 실린 시조는 노래의 가사라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껏 우리는 시조를 문학의 한 장르로 배우고 읊기만 했지 원형대로 창을 하지 않았으니 얼마나 잘못 배웠느냐는 얘기다.

'청산리 벽계수야'는 평시조다. 평시조는 초·중·종장으로 구성된 평탄한 가락으로 만들어졌다.

무슨 말인가 하면, '청산리 벽계수야'든 '동창이'든 '태산이'든 다 같은 곡조라는 얘기다. 따라서 시조는 곡조에 따라 평시조, 엇시조, 사설시조 등으로 나뉘고 이러한 곡들은 모두 가곡에 속한다.

가곡은 판소리, 범패와 함께 3대 성악곡 중 하나다. 조선 시대 상류사회에서 애창된 곡으로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이라고도 한다. 정가(正歌)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며 이는 일반 백성들이 불렀던 속가(俗歌)와 구분된다. 우리가 흔히 아는 민요나 판소리가 속가에 해당한다.

가곡이 국가무형문화재 제30호로 지정된 것은 잘 알려진 일. 1969년 11월 지정됐으니 50년이 다 되어 간다. 그리고 이 가곡은 2010년 11월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등재됐다. 자랑스러운 우리 고유의 문화유산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가곡은 우조와 계면조를 포함해 남창 26곡, 여창 15곡으로 모두 41곡이다. 여창은 특유의 섬세함이 돋보이는 선율과 높은 음역의 소리를 내는 점이 남창과 다르다 하겠다.

가곡은 본디 서울을 중심으로 발전했지만, 현재 인간문화재인 김경배와 조순자, 김영기가 가곡보유자로 맥을 잇고 있으며 마산의 가곡전수관(관장 조순자)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 조순자 가곡전수관 관장. /정현수 기자
▲ 조순자 가곡전수관 관장. /정현수 기자

◇창원 마산회원구에 있는 가곡전수관 = 가곡전수관은 5일 오후 7시 30분 전수관 영송헌에서 목요풍류 '달은 반만 오동에 거러 있고'를 공연한다. '달은 반만 오동에'는 사설시조다.

"달은 반만 오동에 거러 있고 은하는 서으로 기우렀다/ 공정배회(空庭徘徊)는 회포(懷抱)에 이끌렸고 잔등불멸(殘燈不滅)은 생각에 계웠세라/ 아이오 악악계성에 잠 못 이뤄"

시조 마무리가 잘못된 건가 싶겠지만 정상이다. '하노라'가 생략됐다. 글머리 '청산리 벽계수야'에서 괄호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창에서는 마지막 서술어를 노래하지 않는다.

이날 프로그램은 기악합주 '천년만세', 사설시조 '달은 반만 오동에', 피리 독주 '경풍년', 그리고 '거문고 산조', 가곡 계면조 두거 '임술지', 계면조 중거 '내 고향(가고파)', 계면조 대받침 '오날이' 순으로 짜였다.

가곡이라는 단어 뒤에 '계면조'라는 게 눈에 들어온다. 계면(界面), 경계 계에 얼굴 면. 조선 때 이익이라는 사람이 쓴 <성호사설>에 이렇게 표현되어 있다.

"계면이라는 것은 듣는 자가 눈물을 흘려 그 눈물이 얼굴에 금을 긋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얼마나 슬픈 곡조이면 이런 이름이 붙었을까.

그리고 또 눈에 들어오는 단어, 두거와 중거, 대받침. 두거 '임술지'는 곡의 첫머리를 높이 들어 내어 소리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수대엽의 파생곡으로 여창가곡이다.

중거는 곡의 초장 중간을 높이 든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대받침 '오날이'는 가곡 공연에서 '태평가'처럼 마지막을 장식하는 곡이다. 그리고 대받침은 남녀가 함께 부른다.

"오날이 오날이소셔/ 매일의 오날이소셔/ 져므려지도 새지도 마르시고/ 새라난/ 주야장상에 오날이소셔(오늘이 오늘이소서/ 매일이 오늘이소서/ 저물지도 새지도 마시고/ 새려거든/ 주야장상에 오늘이소서)" 이 곡은 일본에서도 구전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임란 때 일본으로 끌려간 도공들이 정착한 지역에서 '학구무가(鶴龜舞歌)'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는 얘기.

공연 날 조순자 관장의 자세한 설명이 덧붙여진다. 일전에 창원시립마산박물관에 갔을 때 이야기다. 7월 22일 시작해 오는 29일까지 '조선의 풍류, 세상을 노래하다'라는 제목으로 '가곡'이 전시되고 있는데 어떤 관람객이 말하기를 "가고파 같은 가곡을 전시하는 거 아녜요?" 잘 접하지 않았던 분야, 몰랐던 것을 새롭게 발견하는 즐거움을 맛보길 기대한다.

관람료 1만 원. 공연 전날까지 예매하면 2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청소년이나 경로우대자 등은 50% 할인 혜택이 있다. 문의 055-221-0109.

◇가곡의 역사 = 가곡에 관해 좀 더 깊이 있게 알고자 한다면 창원시립마산박물관을 찾으면 좋겠다. 가곡의 역사와 가곡을 수록한 책자, 그리고 가곡 명인들의 전승 흐름도 등을 잘 파악할 수 있다.

가곡은 18~19세기 서울과 여러 지역에 일반화되었다. 가곡의 노랫말을 정리 기록한 가집 여러 권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데 그중에 <청구영언> <해동가요> <가곡원류>가 대표적이며 3대 가집이라고 한다.

▲ 가곡을 주제로 한 창원시립마산박물관의 기획 전시./정현수 기자
▲ 가곡을 주제로 한 창원시립마산박물관의 기획 전시./정현수 기자

가곡의 전신은 만대엽·중대엽·삭대엽 등 대엽조(大葉調)의 악곡이었다. 이런 곡들은 고려 말의 노래다. 1572년의 악보인 <금합자보> 만대엽에 수록되어 있다.

만대엽은 아마도 전 세계에서 가장 느리게 불렀을 곡조일 터. 그러나 만대엽은 18세기 초 더는 연주되지 않았고 중대엽 역시 19세기 초 인기를 다했다. 지금은 그나마 속도감이 있는 삭대엽이 다양한 악곡으로 분화되어 오늘날 가곡의 틀을 갖췄다. 삭대엽은 우리말로 자진한잎이라고 한다.

오늘날 가곡 전승에는 하규일의 공이 크다 하겠다. 그는 국립국악원 전신인 이왕직아악부에 소속되어 아악부 제자들에게 정가를 교육했다. 이 중에 이병성, 이주환, 이난향에게 가곡을 전승했다. 이 중 이주환은 홍원기·전효준·김월하에게, 김월하는 김경배와 김영기에게 전승했다. 마산가곡전수관의 조순자는 이주환과 이난향, 홍원기로부터 가곡을 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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