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의 시간이자 쉼·여유의 시간
밥알 단단해지듯 삶도 여물어가는

어린 시절 여름방학이나 겨울방학이면 시골에 있는 큰아버지 댁에 놀러갔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고향을 지키고 있는 친척들이 사는 곳이 경북 청송이었다. 부산이 고향이었던 나는 방학이면 설렘을 가득 안고 먼 거리의 청송으로 가서 방학을 보내고 오는 것을 좋아했다. 여름이면 냇가에서 사촌들과 피라미 낚시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물놀이를 즐겼다. 겨울 새벽 큰어머니는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서 장작불을 때며 밥을 짓고 계셨다. 무쇠로 된 큰 가마솥에 김이 날 때까지 장작불로 불 조절을 하고 있는 큰어머니 곁에 살그머니 앉아 눈을 비비며 밥 짓는 모습을 지켜보곤 했다.

"밥은 뜸을 잘 들여야 한단다"라고 큰어머니는 말씀하시며 아궁이에 불타고 있는 나무가 사그라질 때까지 잔불을 살폈다. 솥뚜껑이 혹시 삐뚤어져서 김이 새어 나갈까봐 솥뚜껑을 행주로 닦으며 바로잡는 큰어머니의 손길도 지켜보았다. 그 당시는 뜸을 잘 들여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가마솥이 뜨거우니까 아궁이 불이 잦아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뜸을 들이는 것이라고 어렴풋이 이해한 것 같다. 큰어머니는 고구마를 아궁이에 남은 잔불에 구워서 내게 건네주셨다. 도시에 살던 나는 구수한 시골의 새벽냄새를 무척 좋아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뜸을 들인다는 것은 가마솥 안의 밥알 하나하나가 잘 어우러져서 충분히 무르익도록 하는 기다림의 여유였다. 또한 뜨거운 불길 속에서 쌀알들이 바글바글 끓다가 불길이 잦아들면서 맛있는 밥알로 되어가는 쉼의 시간이었다. 뜸을 들인다는 사전적 의미는 음식을 찌거나 삶을 때 불을 끄고 난 후에도 뚜껑을 열지 않고 한동안 내버려두어 속속들이 익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 뜸 들인다는 말은 애가 탈 정도로 지체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도 있지만 나는 우리 삶에서의 뜸 들인다는 말은 '기다림' 또는 '쉼' 또는 '여유'라는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고 싶다.

내가 아는 지인은 결혼하고 40여 년간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하고 있었다. 그녀의 친구들은 대부분 퇴직을 하거나 취미 생활을 하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자신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계속 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녀에게 잠시 쉴 수 있는 얼마간의 시간이 주어졌다. 그동안 하지 못했던 여행도 가고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던 가족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도서관에서 보고 싶은 책들도 보면서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녀는 비로소 자신만의 삶에서의 뜸을 들이고 있는 것이다. 뜨거운 불꽃에서 벗어나 잠시 불이 잦아들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뜸을 들이면서 자신의 삶에서 윤기 있고 향긋한 향을 지닌 가마솥 안의 맛있는 밥을 짓고 있는 것이다.

주변을 보면 열심히 앞만 보고 살아온 사람들이 많다. 잠시 멈추어 서서 삶의 퍼즐 조각 하나 하나에 뜸 들이며 은은한 향기를 안으로 품으면 좋을 것 같다. 무쇠가마솥 안의 압력과 여열처럼 삶에서도 쉼과 기다림으로 뜸을 들이는 것이 필요한 것 같다. 그러한 여유는 솥 안의 밥알마다 은근한 김이 스며들어 치밀하고 단단해지듯이 우리의 삶도 더 여무는 시간일 것이다.

몇 발 떨어져 있으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가까이 있으면 보이지 않는 것들이 조금 먼 거리에서 바라보면 객관화되어 보이는 것이다. 여행에서도 행복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정인 것처럼 우리의 삶에서도 뜸을 들이며 사는 지혜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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