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각오하고 출진 청하는 이순신
묵직한 말 한마디에 담긴 그의 거대함

충무공 이순신은 우리나라 민족, 국민에게는 감히 범접하기 어려운 역사 속 신화가 된 인물이다. 그분 삶의 궤적을 하나둘씩 추적해보면 과연 감정이 있고 자기 욕심이 있는 인간의 영역에 머무는 인물인지 의아한 경우가 많다. 민족의 영웅, 성웅, 살신성인의 위인 등 인간이기를 포기한 그분에게는 그 어떤 미사여구도 부족하다.

그래서 이 위대한 인물은 그 어마어마한 유명세 때문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도 후세들에게, 특히 정치인들에게 이런저런 이유로 소환이 된다. 웬만한 정치인 치고 그분의 너무도 유명한 '상유십이(尙有十二·아직 열두 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 '필사즉생(必死則生·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게 될 것이다)'이라는 어록을 리바이벌하지 않은 이가 없다. 현 대통령도 그랬고, 전 대통령도 그랬다. 특히 상유십이는 실제로 충무공이 명량대첩에서 열 배가 넘는 왜선과 부딪혀 대승을 거둠으로써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도 절대 포기하지 말라는 강력한 언어의 힘을 보여주었기에 자주 회자한다.

충무공이 파직된 이후 원균이 삼도수군통제사 자리를 이어받았지만, 원래 능력에 비해 과분한 자리를 받은 자들이 항상 그러하듯 책임지지 못할 말만 해대다가 칠천량 해전에서 다 털어먹었다. 충무공이 임진왜란 전후 엄청난 공을 들여 만들어놓은 조선 수군의 방대한 물자와 인력이 단 한 명의 무능한 최고지휘관 탓에 단 한 번 싸움으로 물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칠천량 해전 이후 조선 수군은 더 이상 군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수준이 돼, 도원수 권율을 비롯한 당시 조정에서는 차라리 수군을 해체해 육군에 편입하려 했다. 하지만 이는 장기적 관점에서 봤을 때는 곡창지인 호남을 버리고, 한양으로 직행할 왜군에게 서남해안 바닷길을 통한 보급선을 열어주는 전략이라고도 할 수 없는 미봉책이었다.

그대로 내버려 두면 나라가 망할 중차대한 결정을 앞둔 시점에 충무공은 다시 한 번 파직을 각오하고 감히 선조에게 장계를 올린다.

"지금 만약 수군을 모두 폐한다면 이는 적들이 다행으로 여기는 바로서, 호서를 거쳐 한강에 다다를 것이니 소신이 두려워하는 바입니다. 전선이 비록 적으나, 미천한 신은 아직 죽지 아니하였으니, 적들이 감히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상유십이는 허투루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왜군에 비해 유일한 비교우위에 있던 수군이 처참하게 박살난 상황에서 당시 조선이라는 나라는 아닌 말로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고, 그대로 시간만 흐른다면 충분히 현실이 되었을 것이다. 충무공이 당시 어떤 심정으로 그런 말을 했을지 조금이라도 복기해 본다면 그 말의 짓누르는 무게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충무공은 명랑해전에 출진하기 전에 감히 왜군에 대항할 생각을 못하고 벌벌 떨기에 바쁜 군졸들에게 일갈한다.

"병법에 이르기를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한 사람이 길목을 지키면 천 명도 두렵게 할 수 있다. 그대들 뭇 장수들은 살려는 마음을 버려라."

필자는 이 대목에서는 비장하다 못해 처연한 마음만 들었다. 울돌목에서 물길이 바뀔 때까지 단 한 척의 대장선으로 수십 척 왜군과 싸워야 했던 그 절망감은 어떠했을까. 충무공은 이겨냈고 명량이라는 전설을 만들었다. 하지만 소박하게도 실로 천행이었다고 담담히 소회를 밝힌다. 그저 필자 같은 범부는 상유십이라는 말에서, 천행을 바랄 수밖에 없는 도박적인 승부를 걸어야 했던 절박한 상황과 결국 그것을 극복한 충무공의 거대함만 느낄 수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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