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도 사람도 모두 긴밀하게 연결
교류·공감 통해 함께 성장하는 관계

비가 촉촉이 내린다. 텃밭에 있는 꽃들과 여러 작물이 대환영하는 듯하다. 고개를 내밀며 그들 나름의 세계를 즐기고 있다. 키가 낮으면 낮은 대로 키가 크면 큰 대로, 몸집이 작으면 작은 대로 몸집이 크면 큰 대로 만족한다. 땅속에 숨어 있던 풀씨들이 가끔 경계를 흩트리는 일이 있어도 묵묵하다. 대립하기보다 그대로를 인정하는 모양새다. 자연의 이치가 놀라울 따름이다.

작은 텃밭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모습들을 보면서 나 자신을 되돌아본다. 나 혼자 고고히 빛나는 별로 살려고 하지 않았는지 되짚어도 본다. 명상하다 보면 그 해답이 나온다.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 밝은 광명으로 다가오는 순간이다. 내 별과 다른 별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보이지 않지만 긴밀하게 서로 교류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따로 떨어져 있는 것 같아도 같은 공간 안에서는 서로의 영향을 받고 영향을 주게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앉아 있는 나무 의자 역시 자연과 함께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덩그렇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 아닌 자연의 축소판이라 할 수 있다. 이 속에는 무한한 공감과 교류가 있다. 오랜 시간 산과 대화, 물과 대화, 햇빛과 대화, 바람과 대화를 통해 성장했으리라. 그러므로 의자에 앉을 때 한 번쯤은 그 대화를 경청해 보았으면 한다. "의자네! 앉아야지"가 아니라 산의 느낌, 햇빛의 느낌, 바람의 느낌을 통해 자연과 대화를 해 보라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말, 행동, 마음 씀에 있어서 '누구를 위한다' '배려하고 있다'는 주관자의 입장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에고를 떠받치는 기준과 잣대를 내려놓게 된다. '내가 너를 어떻게 생각했는데' 하는 섭섭함을 극복하게 해 준다. 미워하고 원망하는 마음을 관조하게 한다. 에이 씨가 아니라 아이 씨(I see)가 된다. 알았다는 뜻이다. 그래야 보고 느낀다.

이 순간들을 통찰하면 자연스러움이 일어난다. 언어가 더 진솔해지고 바라봄의 관점이 단순해진다. 너와 나의 관계성도 더 명확해진다.

'너는 받는 사람이고 나는 주는 사람'이 아닌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같은 은혜로움을 알게 되면 보는 것이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듣는 것이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말하는 것이 그냥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치게 된다.

이렇게 순간순간 다가오는 깨침들을 그냥 자연으로 돌려보낼 것이 아니라 내면 의식을 확장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처음에는 작고 미약한 느낌일지라도 에너지의 영역이 넓어지면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그림자들은 점차 사라진다. 의식의 확충을 가져온다. 더 높은 차원을 경험하게 해 준다.

그러므로 나를 중심으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연결고리를 소중하고 고맙게 느껴야 한다. 비록 텃밭의 일상에서 느꼈던 일이지만 이 깨침을 일상에 적용해 보면 '아하'를 체험한다. 나의 하루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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