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이야기 담는 여행 그림책 만들어요"

'어떻게 하면 대중과 더 원활하게 소통할 수 있을까.' 예술가들의 이런 고민은 사회적협동조합 설립으로 이어졌다.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들머리에 있는 문화예술 사회적협동조합 '구름마' 이야기다. 하동에서 '구름마' 이승현(45)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하동으로 귀촌한 지 올해로 5년째다. '구름마'를 통해 그는 지역사회에서 어떤 활동을 꿈꾸고 있을까.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어요"

이 이사장의 고향은 광주다. 어릴 적 그의 친구가 하동군 옆에 있는 전남 구례군에 살았기에 하동이 그리 낯선 지역은 아니었다. 또 평소 알고 지내던 보리출판사의 편집자가 먼저 귀촌해 하동에 살고 있었고, 그 인연이 닿아 하동에 눌러앉게 됐다.

이전에는 경기 용인시와 수원시 등에서 활동했다. 그림을 전공하면서 그림책 작가가 되고 싶었다고 한다. 1999년 그는 꿈을 이뤘다. 그때부터 그림책을 하나둘 만들다 보니 모두 세기 어려울 만큼 많은 책이 세상에 나왔다. 보리, 창비, 사계절 등 출판사를 통해 나온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삼천갑자 동방삭 : 세상에서 가장 긴 이름>, <씨름>, <삼국지> 등 다양한 그림책이 독자와 만났다. 하동으로 귀촌한 이후에는 전남 광양 중마도서관, 구례도서관 등에서 지역민을 대상으로 그림책 수업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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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현 문화예술협동조합 ‘구름마’ 이사장. / 김구연 기자

그림책 작업과는 별개로 이 이사장은 주로 사람 얼굴을 그린다. 그가 그린 '얼굴 그림'은 왠지 따뜻해 보인다. 20년 가까이 작업해온 '얼굴 그림'이다.

"얼굴 그림을 많이 그리게 된 계기는 대중과 쉽게 소통할 수 있어서였던 것 같아요. 무엇보다 사람들이 좋아해 줘요. 인물 공부로 나름 학습이 됩니다."

사람의 느낌을 그려보자는 취지로 '얼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사진을 보고 그리지는 않고, 꼭 실물을 보고 그린다. 잉크가 아니라 수채화 물감을 써서 오랜 세월이 흘러도 색깔이 변하지가 않는다. 타일 1개 크기인 '얼굴 그림'은 2만 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다.

그림에 관한 자기만의 철학도 뚜렷하다.

"사람들이 보통 재능이 있어야만 그림을 그린다고 하는데, 제 철학은 그렇지 않고요. 기자님도 지금 글을 쓰고 계시지만, 누구나 글을 쓰거든요. 그림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거든요. 물론 재능이 있어서 잘 그린다는 얘기를 들을 수 있지만, 누구나 취미로 그림을 그릴 수 있죠. 오히려 그런 그림이 더 좋은 예도 있습니다. 미대를 나오면 틀에 갇힌 기법만 배우는데, 나중에는 그런 기법을 다 버려야 할 때가 있거든요."

그림책 교육에도 이런 원칙이 적용된다.

"누구나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취지에서 교육하고, 사람들이 그림에 관한 부담을 떨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어요."

그의 아내도 그림책 작가다. 서울에 있는 작가공동체 '힐스'에서 두 사람은 만났다. 서로 생각이 비슷했고, 각자 작업에 관해 조언도 하면서 공감대가 형성됐다. 현재 부부는 하동 악양면에서 함께 살고 있다. 이 이사장은 주말에는 관광객이 많이 오가는 최참판댁 들머리 작업실에서 '얼굴 그림' 등을 작업한다. 특히 '얼굴 그림'을 꽤 오랫동안 그려오면서 수익 구조를 만들 수 있고, 창업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다고 판단했다.

지역 예술인 누구에게나 열린 '구름마'

'구름마'는 문화예술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지난 2015년 6월 문화체육관광부 정식 인가를 받았다. 지난해 9월에는 예비사회적기업으로도 지정됐다.

애초 이 이사장을 포함한 그림책 작가 6명을 중심으로 사회적협동조합 창립을 추진했다. 대중과 소통하는 방법을 고민하다가 사회적협동조합을 꾸려 활동하기로 한 것이다. 협동조합과 사회적협동조합은 기본적으로 '지역사회에 어떻게 이바지할 것인가'를 고민하는데, 일반 협동조합과 달리 사회적협동조합은 비영리법인이다.

"협동조합을 만든 지 2년이 다 되어가네요. 원래 그림책 작가 6명 정도가 모여 책도 출간하고, 얼굴 그림 그려주기 등 행사를 함께했었어요. 더 나아가 우리가 '얼굴 그림'으로 소외계층 아이들을 위한 문화 행사를 하거나 수익을 얻어 좀 더 다양한 형태의 행사를 해보고 싶었죠. 그런 취지에서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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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최참판댁 들머리에 있는 ‘구름마’ 사무실. 이승현 이사장의 작업실로도 쓰인다.

그림책뿐만 아니라 목공예, 민화, 설치미술, 순수회화 분야에서 활동하는 하동을 비롯한 서울 또는 경기지역 작가, 문화예술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이 조합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현재 26명인데,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이 있는 일반인이나 협동에 뜻이 있는 지역 예술인이면 누구나 함께할 수 있다.

"작품 활동이나 생계가 어려운 작가가 있다면, 우리와 함께하면 서로 좋은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작가라고 혼자만 있지 말고, 여러 작가가 함께 활동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림책 작가로 꾸려졌던 '그림똥'이라는 작가 공동체가 '구름마'로 이어지기도 했다. 똥이 땅을 거름지게 해서 좋은 곡식이 나오듯이 그림으로 좋은 사회를 만들어보자는 뜻이 담겼다. '구름마'는 구름처럼 천천히 떠다니면서 여행하듯이 재미있게 살아보자는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사회적협동조합은 드문 현실인데, '구름마'는 경남에서 거의 처음으로 꾸려진 문화예술 사회적협동조합이다.

지역 이야기 담는 '여행 그림책' 만들고파

그동안 하동 야생차문화축제, 경기 파주 북소리축제, 사회적기업 박람회 등 지역 축제에 참여하며 '구름마'의 존재를 알려왔다.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또 다른 활동으로는 하동과 인근 지역 사람들을 위한 그림책 등 문화예술 교육을 준비 중이다. 지난해 8월에는 작은 도서관이 설치된 악양천변 취간림에서 지역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을 대상으로 여름 방학 미술체험 프로그램을 열기도 했다.

공중전화 부스 크기인 목재 구조물 3개로 설치된 이곳 취간림 작은 도서관은 '구름마'가 제작한 것이다. 이처럼 앞으로 '구름마'는 소외된 지역에 '희망이 있는 작은 도서관'을 만들어 기부하고, 문화예술 프로그램도 운영할 구상을 하고 있다.

"취간림 작은 도서관은 숲이 도서관이 되는 곳이에요. 책꽂이에 여러 책이 있고, 아이들이 봄여름 새소리도 듣고, 바람도 느끼면서 책을 읽을 수 있죠. 아이들에게는 아지트와 같은 공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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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름마’ 이승현 이사장이 그린 다양한 ‘얼굴 그림’. 그는 사진을 보고 그리지 않고 실물을 보고 그린다. 아울러 인물의 특징이나 느낌을 살리고자 한다.

아울러 소외계층 사람들에게 '얼굴 그림' 그리는 것을 가르쳐주고, 창업으로 이어져 자립할 수 있도록 도울 계획이다. 이번 겨울 사람들을 모집해 올봄부터 '얼굴 그림'을 함께 그리고, 지역 행사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사회적협동조합 창립, 예비사회적기업 지정을 거쳐 '구름마'가 정한 첫 번째 주력 사업은 '여행 그림책'이다. 이를 위해 지난해 6월에는 하동군과 협약을 맺었다. 숨은 지역 이야기와 여행 정보를 발굴해 그림책과 같은 여행 상품으로 만들고, 지역 홍보에도 이를 사용하기로 했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인다.

"사실 하동만 해도 다양한 문화·관광 자원이 있지만, 기념품이나 문화 관련 상품이 마땅히 없는 상황입니다. 사람들이 흥미로워할 수 있음에도 숨어 있는 지역 이야기를 잘 찾아내 그림책으로 만든다면, 그걸 본 사람들이 해당 지역을 여행하고 싶어 하면서 새롭게 지역을 바라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최참판댁이나 화개장터에도 문화예술 상품이 드문 현실이죠. 여행 그림책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었으면 해요. 하동에서 출발하겠지만, 진주와 창원으로 가서 여행 그림책을 만들 수도 있겠습니다. '구름마'라는 이름에 맞게 여행을 하면서 정보를 모으고 지역에 숨은 이야기를 찾아내 그림책에 담는 거죠. 일이 여행이 되었으면 하고, 여행이 일이 되면 좋겠어요. 너무 일만 생각하면 스트레스를 받잖아요. 돈이 안 되어도 일 자체가 재미있으면 좋겠어요."

영호남 문화교류 등 다양한 시도 꿈꿔

'구름마'는 영호남 화합을 위해 경남과 전남 시·군 지역 이야기를 각각 여행 그림책으로도 만들어볼 계획이다. 또한 해당 시·군을 돌며 그림책을 전시하는 영호남 문화교류 사업을 기획하고 있다.

"영호남 문화교류 프로젝트로 경남 창원이나 진주에서 지역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들면, 전남 광양이나 순천에서도 그림책을 만들어 동시에 지역 그림책을 전시하는 거죠."

그는 하동만 해도 지리산과 섬진강 등으로 다양한 지역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섬진강에 섬(蟾)이 두꺼비 섬을 쓰거든요. 옛날 여기에 두꺼비가 많이 있었다고 합니다. 왜군이 쳐들어왔을 때 그 많던 두꺼비가 왜군을 몰아냈다는 전설도 그림책에 담을 수 있겠고요. 섬진강을 따라 여행하면서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그림책을 상상해볼 수 있죠. 단순히 관광지와 맛집을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람들의 정서, 재미난 시골집이나 돌담, 오래된 나무와 같은 숨은 명소 등을 그림으로 보여주면서 이야기하면 좋을 것 같아요."

지역 이야기를 발굴하는 것이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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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승현 문화예술협동조합 ‘구름마’ 이사장. / 김구연 기자

"사실 지역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만든다는 게 어려운 작업일 수도 있는데요. 어렵게 생각하면 어렵게 나오는 것 같아요. 편안하게 작업하는 게 중요한 듯해요. 낙서가 들어가도 좋고, 채색이 꼭 다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그림책을 만드는 데 보통 반년이나 1년이라는 시간이 걸리죠. 편안히 스케치하듯이 작업해 책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뜻밖에 숨어있는 이야기가 많고, 지역 사람들이 선호하는 게 있어요. 그런 정보를 보여주는 게 중요하죠. 지역 사람들이 직접 책을 만든다는 데 의미를 두고, 지역 정서도 잘 묻어나는 책이 되는 것이 목표입니다."

여행 그림책을 내려고 독립출판사를 차려볼 계획도 세우고 있다. 다양한 문화 콘텐츠를 상품으로 만들 수 있고, 홍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캠핑용 카라반을 활용해 '움직이는 그림책 학교'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시골이나 작은 학교를 찾아가 그림책 교육을 하고, 주변 풍경도 스케치해보는 거죠. 학교 졸업앨범을 사진으로만 남기는 것이 아니라 '얼굴 그림'으로 만드는 것도 생각해보고 있어요. 참 시도해볼 게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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