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

가수들이 그저 가만히 서서 가벼운 몸동작과 손짓으로 노래를 부르던 시절, 혜성같이 나타나 춤사위와 폭발적인 가창력으로 대중가요계의 판도를 뒤흔든 여가수가 있었다. 몸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의상과 엉덩이를 현란하게 돌려대며 춤을 추는 모습은 대중들에게 가히 충격 그 자체였다. 요즘에야 흔하디흔한 모습으로 볼 수 있지만, 그 시절엔 너무나 파격적이어서 전국을 떠들썩하기엔 충분했다. 대중들은 요정과도 같은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환호했다. '댄스 퀸'으로 불리는 김추자라는 새로운 스타의 탄생이었다.

1951년 1월 2일 강원도 춘천에서 딸부잣집 5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추자는 춘천여중·고를 거쳐 1969년 동국대 연극영화과에 입학했다. 그녀는 어릴 적부터 합창단과 무용학원에 다니며 노래와 춤에 재능을 보였으며, 여고 재학시절엔 응원단장을 할 정도로 끼 많은 소녀였다.

그녀의 형부는 절친한 사이였던 신중현의 매니저 맹승호에게 한국 락의 대부인 신중현에게 그녀를 소개해달라고 부탁했다.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던 신중현은, 대형 가수의 음반 작업을 하느라 바빴기에 그녀를 둘러볼 짬이 없었다. 매일 사무실을 출근하다시피 한 김추자는, 몇 시간을 사무실 한쪽에 앉아있다 집에 돌아오기 일쑤였다. 그러던 어느 날, 신중현도 미안했는지 테스트 삼아 그녀에게 노래를 불러보라고 했다. 며칠 후 사무실에 나온 그녀에게 신중현은 '늦기 전에'라는 악보를 던져주었다. 결국 '늦기 전에'는 김추자의 데뷔곡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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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중현.

신중현은 곧바로 그녀의 첫 앨범 작업에 들어간다. 1969년 10월 20일에 출시된 음반은 신중현이 1967년에 결성한 '덩키스'의 반주로 제작되었으며, '늦기 전에', '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 등 김추자가 부른 6곡을 앞면에 녹음하고, 아마추어 레슬러 국가대표 출신의 소윤석이 3곡, 7분이 넘는 연주곡인 김선의 '떠나야 할 그 사람'이란 곡이 뒷면에 수록되어 있다.

첫 앨범을 발매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에게 행운이 찾아왔다. 여행 중이던 그녀에게 스튜디오에서 급히 오라는 연락이 왔다. 내일이 첫방영인 일일연속극의 주제곡을 바로 녹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악보를 건네받은 그녀는 1~2시간 연습하고 그냥 녹음을 마쳤다. 이렇게 만들어진 노래가 김추자를 일약 최고의 인기가수로 거듭나게 한 명곡 '님은 먼 곳에' 였다. 원래 이 곡은 1969년 11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 3개월 동안 동양방송(TBC)의 연속극 주제곡으로 발표된 후, 신중현의 컴필레이션 음반을 통해 정식으로 선보였다. 그녀의 출세작인 '님은 먼 곳에'는 가사를 만든 작사가와 노래 부를 가수가 바뀌는 기막힌 사연을 담고 있다.

이 노래를 처음 제안받았던 가수는 스탠더드 팝의 여왕 패티김이었다. 하지만 주제가 취입제의를 받은 패티김은 "그런 리듬의 곡은 부르지 않겠다"며 녹음 날 자신의 리사이틀 무대에 출연했다. 첫 방영을 앞둔 방송국은 이와 같은 돌발 상황이 발생하자, 급한 김에 대타 가수의 투입을 신중현에게 요청한다. 모든 일은 임자가 따로 있는 법, 이때 내세운 가수가 바로 김추자였다. 14년 후인 1984년, 패티김은 뒤늦게 이 노래를 취입함으로써 당시의 아쉬움을 대신했다.

이처럼 정상에 올라설 수 있었던 김추자에겐 다른 가수가 따라올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어느 누구보다도 김추자 음반을 많이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대중음악 평론가 최규성은 잿밥에만 눈독 들이는 사람들이 관중을 압도하는 김추자의 춤사위와 섹시한 의상을 먼저 논하겠지만, 사실 그녀의 음악 세계는 창법부터 30년 이상을 앞서가고 있다고 말한다. 애절하고 구성지면서도 시원스레 탁 트인 그녀의 창법을, 당시 전위음악의 장르였던 사이키델릭 음악에 흑인의 한이 배어나는 소울을 합친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음반제작 때 김추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곡을 오랜 시간 동안 연습해 녹음하기보다, 짧은 몇 시간 내에 곡을 해석하여 단숨에 취입하는 것을 선호했는데 무려 20여 곡 이상이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모든 가수는 목소리가 허락하는 대로, 드는 느낌대로 노래를 부른다"며 다소 겸양 적게 말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녀 스스로 천부적 재능을 지닌 가수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를 인정하듯 1975년 8월 광복30주년기념 예술제에 참가한 그녀에게 언론은 '담배는 청자, 노래는 추자'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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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자의 대표곡 '님은 먼 곳에' 앨범.

전성기를 누리던 김추자는 그녀의 춤동작 때문에 난데없는 간첩설에 휘말리는 에피소드도 있다. 히트 치던 '님은 먼 곳에' 이후, 연이어 나온 후속타 '거짓말이야'가 1971년에 발표되자마자 대중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런데 이 노래를 부를 때 선보인 특유의 손짓이 북한과 내통하는 수신호라며, 그녀가 간첩이라는 소문으로 불거진 것이다. '거짓말이야'라는 제목 자체가 유신정권에 대한 은유적 비판을 담고 있는 차에, 이런 저런 스케줄이 줄줄이 펑크가 나면서 간첩처럼 이사를 자주 다닌다는 헛소문까지 퍼졌다. 심지어 그녀의 집에서 간첩들이 사용하는 난수표가 발견됐다는 루머도 돌았다. 그런데 이런 상황들이 간단한 문제로 여겨지지 않으면서, 당국의 조사를 받아야만 하는 어처구니없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 무렵 청와대 비서실에서 김추자를 청와대에 들어오라고 했지만, 불복하자 한참 인기를 누리고 있던 그녀를 꺾어 한마디로 매장시키려 한 것이다. 이른바 청와대 제의를 거절한 보복성 처사였다.

최고의 인기를 누리면서 무수한 소문을 몰고 다녔던 김추자의 파란만장한 가수생활은 1980년 정규앨범 5집을 끝으로, 1981년 동아대 정치학과 박경수 교수와 결혼하면서 가수활동을 중단했다. 1986년 리사이틀을 위해 잠시 바깥나들이 한 것을 제외하면, 언론과의 접촉을 일절 거부한 채 전업주부로 살아갔다. 언젠가 모 언론사 기자와 어렵사리 진행된 전화인터뷰에서, 가수활동 재기에 대한 질문에 "난 은퇴하지 않았어요, 공백기가 길어졌을 뿐"이라고 당당히 표현했다. 그녀는 결코 허언을 하지 않았다. 2014년 6월 2일, 오랜 공백을 깨고 정규 6집 '잇츠 낫 투 레이트(It's Not Too Late)'를 발표하면서 33년 만에 컴백했다.

오디오를 취급하는 전문가들이 꼭 선택하는 한국가요명반에는 김추자의 음반이 빠지지 않는다. 그만큼 그녀의 노래는 매나아들에게 최고의 소리로 울려지고 있는 것이다.

사랑한다고 말 할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 산다 할 것을

사랑한다고 말 할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

마음 주고 눈물 주고 꿈도 주고 멀어져 갔네.

님은 먼 곳에 영원히 먼 곳에 망설이다가 님은 먼 곳에.

사랑한다고 말 할걸 그랬지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

마음 주고 눈물 주고 꿈도 주고 멀어져 갔네.

님은 먼 곳에 영원히 먼 곳에 망설이다가 님은 먼 곳에.

- '님은 먼 곳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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