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열한 밥줄 끊기에도 버티고 싸웠습니다"

아줌마의 힘 마지막 편은 하동군이다. 하동군은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홍준표 도지사 주민소환뿐 아니라 윤상기 하동군수 주민소환도 함께했기 때문이다. 사실 하동군 내에서 멀리 있는 홍준표 지사와 직접적인 이해관계를 가진 이는 없다. 반면 하동군수와는 수많은 사람이 이해관계를 공유하고 있다. 이런 큰일을 벌인 사람을 꼭 만나 보고 싶었다. 마침 5월 10일 하동군 하동읍에서 하동학부모연대 회의가 열린다고 했다. 회의 시작 전에 학부모들과 어렵사리 인터뷰할 수 있었다.

하동 학부모연대 회원 가운데 이춘선 씨(자녀: 초등학교 3학년, 미취학 아동), 장혜영 씨(자녀: 초등학교 3학년), 문혜아 씨(자녀: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강정숙 씨(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가 인터뷰에 응했다. 같은 자리에 송혜영(자녀: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2학년) 씨도 있었으나 "저는 운전만 했어요"라며 슬그머니 자리를 피했다. 다른 지역에서는 기자가 온다고 하면 환대하는 분위기였으나 하동 학부모들은 경계하는 분위기였다. 그만큼 심하게 싸웠고 상처도 많이 받은 것으로 짐작됐다.

"3·1운동 이후 이런 일 처음"

-무상급식 중단 얘기를 들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나요?

문혜아: 한마디로 어이가 없었습니다. 저희 하동군에서는 이미 무상급식을 '군 자체 지원'으로 했었습니다. 그걸 도지사 지가 뭔데 지 맘대로 중단하겠다고 하는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춘선: 처음엔 '이거 장난이지?'라고 했었습니다. 제 귀를 의심했습니다. 또 한편으로는 '중단하더라도 한두 달 정도 지나면 지원해 주겠지'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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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 어머니들. 왼쪽 위 부터 시계방향으로 강정숙, 장혜영, 문혜아, 이춘선 씨./임종금 기자

장혜영: 저는 인천에서 살다가 왔습니다. 인천에서는 무상급식 받다가 경남에 오니까 이미 엄마들이 들고 일어나 있는 겁니다. 홍준표 도지사가 임의대로 했다는 겁니다. 황당했습니다.

이춘선: 진교에 성남에서 오신 분이 있는데 이재명 성남시장을 뽑아놓고 경남에 오니 무상급식이 없어졌다고 황당해 하시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럼 언제부터 어떻게 움직이셨나요?

문혜아: 저희는 2014년 11월부터 움직였습니다.

-다른 곳은 보통 무상급식 중단 전후(2015년 2~4월)부터 움직였는데, 엄청나게 빨리 움직이셨네요.

문혜아: 왜냐하면 그 전부터 '낌새'가 있었습니다. 2014년에도 사실 준다 안 준다 하다가 결국 줬거든요. 저희들은 2014년 10월쯤에 감을 잡았습니다. 그래서 10월에 학부모연대를 결성하고 11월부터 바로 움직였습니다. 일단 모을 수 있는 사람을 최대한 모은 뒤 겨울부터 1인 시위하고, 피켓 시위를 했습니다.

이춘선: 겨울내내 군청과 군청 로터리 앞에서 그렇게 했습니다. 다들 독감에 걸려서 엄청 고생했습니다.

문혜아: 겨울인데 해뜨기 전 아침 8시~9시에 걸쳐서 했습니다.

이춘선: 보통 피켓시위는 일주일에 화요일과 목요일 2번 했습니다. 긴급상황에서는 추가로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둘째가 배 속에 있을 때 그렇게 했습니다.

-긴급상황이라는 게 뭐죠?

이춘선: 도의회에서나 군의회, 혹은 군수님이 막말하거나 황당한 것이 결정되면 즉시 시위를 했었습니다.

기자가 하동군을 주의 깊게 보기 시작한 것은 2015년 3월 27일 있었던 쌍계초등학교 등교거부 운동부터다. 당시 전교생 가운데 2명 빼고 모두 등교를 하지 않았으며, 학생과 학부모 등 100여 명이 거리시위를 했다.

-제가 쌍계초등학교 등교거부 운동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그 전에 이런 시위가 있었나요?

문혜아: 제가 알기로 하동군 역사상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저는 예전부터 한나라당 지지자였습니다.

이춘선: 저도 어르신조차 인정하는 골수 새누리당 지지자였습니다. 이번 총선 때 처음으로 1번이 아닌 다른 당을 찍었습니다. 저도 하동군에서 그런 시위가 일어난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건설노조나 화물연대에서 몇 명 하는 건 봤어도. 소문에 '이런 시위는 3·1운동 이후 처음이다. 해방 이후 처음이다'고 할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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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학부모연대 회의에 참석한 학부모들./임종금 기자

-이런 결정을 쌍계초등학교에서 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문혜아: 제가 듣기로 그 학교 운영위원회에서 결정이 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사실 시골 분들이 의외로 세게 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춘선: 덕분에 교장 선생님들이 모두 쫄아버렸습니다. 자기 학교에 등교거부운동이 번질까봐. 급식비 미납운동은 해도 괜찮으니 등교거부만은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할 정도였습니다. 진교초등학교 같은 데서는 100일 릴레이 피켓 시위를 하고, 체육대회 때도 피켓을 들고 엄마들이 운동장을 뛰어 다녔습니다.

문혜아: 피켓 시위를 몇 명만 계속한 게 아니라 학년, 반마다 당번을 정해서 돌아가면서 했습니다.

하동군은 타 지역보다 학부모들이 전반적으로 더 보수적인 성향이었다. 그렇지만 행동은 훨씬 더 '터프'했다.

주민소환 학부모 '밥줄 끊기'도 시도

-어쨌든 피켓 시위하고, 주민소환 서명받는 동안 분위기는 어땠습니까?

이춘선: 괜찮은 곳도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더니 나중에는 환호하고 커피를 사주거나 뭔가 먹을거리를 나눠주는 분이 많았습니다. 또 타지에서 온 학부모가 수고한다고 하기도 하고. 참, 한화손해보험 진교지점 아주머니 전원이 수임인이 됐습니다. 그러면 다른 데서 투서 같은 것이 들어갈 텐데, 그걸 지역단장이 다 커버해주고 지점장도 다 커버해줬습니다.

그러나 학부모들에게 '좋았던 기억'은 이게 다였다.

문혜아: 농촌 엄마들 중에 서명하고 나서 나중에 빼 달라는 분도 계십니다. 이름 한번 올렸다가 계약직으로 일하는 사람은 계약파기되게 생겼다고. 담당 공무원들이 많이 협박했다고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는 군수 주민소환까지 같이 했기 때문에 반대편에서도 필사적이었습니다.

이춘선: 피켓 들고 있으면 할아버지 같은 분은 바로 와서 욕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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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 학부모 연대 활동 모습./하동 학부모 연대 제공

장혜영: 저도 참가하니까 바로 동네에서 빨갱이라고 소문이 났습니다. 밥 문제 때문에 군청 시위 참가한 것 가지고 말입니다.

문혜아: 악양면에는 이런 소문도 돌았습니다. 빨갱이들이 데모하려고 조직적으로 이사를 왔다고 말입니다. 하하.

이춘선: 우리 학부모연대 부회장 이름이 이정희입니다. 이걸 가지고 이런 식으로 소문내는 겁니다. '통합진보당 이정희 지령을 받고 학부모들이 이사 왔다'고 말입니다. 그러니 서명받으러 가면 무조건 나가라고 하는 겁니다. 농협 앞에서도 가판대 열면 바로 지점장이 나와서 치워버리곤 합니다.

가장 비열한 방법인 생계를 가지고 협박하는 것도 예사였다.

강정숙: 어떤 사람이 내가 하동읍에 지령을 내렸다고 하는 겁니다. 아주버님께 전화가 와서 '니네가 빨갱이라면서' 하는 겁니다. 자영업하는 분들에게는 보통 이런 식으로 협박이 많이 옵니다. '너네 집 안 사주겠다', '너네 학원 끊겠다', '가게 문을 닫도록 하겠다' 이런 게 많습니다.

이춘선: 토박이들은 '너희들은 여기 안 살고 싶지'라고 협박하고 남편이 KT 다니니까 일일이 전화하면서 협박합니다.

문혜아: 저에게는 직접적인 연락은 안 왔습니다. 보통 남편이나 집안 어른을 통해서 협박이 들어옵니다. 어른들이 '너네 뭐 먹고 살래'라고 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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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 학부모 연대 활동 모습./하동 학부모 연대 제공

-그럼 직접적으로 경제적 타격이 있었습니까?

이춘선: 하동읍에 사는 박 모 씨라고 있는데 남편이 중장비 일을 합니다. 특히 하동군청 일을 많이 하는데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수입이 1/10로 줄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외지로 나가서 일을 하고, 수주나 입찰이나 이런 건 꿈도 못 꾸죠. 지역에 힘 있는 사람들이 자영업 하거나 사업하는 사장들한테 '마누라 간수 잘 해라' 이러고.

강정숙: 이장들이 공무원 대행 역할을 많이 했습니다. 공무원이 이장에게 전화해서 기초수급 빼 버린다고 협박하는 거죠.

밥줄 끊기, 헛소문 퍼트리기가 일 년 내내 이어졌다. 하동 학부모들이 강성이 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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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 학부모 연대 활동 모습./하동 학부모 연대 제공

"홍준표보다 군수가 더 괘씸"

-하동은 홍준표 지사 소환과 더불어 윤상기 군수 소환까지 같이 했지 않습니까? 왜 그랬나요?

문혜아: 사실 하동은 독자적으로 무상급식을 충분히 할 수 있는 곳입니다. 7년 전부터 하동군 예산으로 급식 지원을 했었습니다. 전국 최초로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이 됐던 곳입니다. 그런데 도지사가 못 주게 한다고 해서 군수가 할 일을 저버린 겁니다.

이춘선: 군수가 되자마자 현수막 철거를 해 버리고, 우리가 보기엔 괘씸했습니다.

강정숙: 학부모가 각종 비리와 선거법 위반으로 주민소환을 추진했습니다. 그러자 윤상기 군수는 학부모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문혜아: 군수 주민소환 들어가면서 우리는 소식지를 4호까지 발행했습니다. 우편으로 돌리고, 지역별로 남편과 함께 집집마다 돌렸습니다. 그러면 마을 이장은 그걸 걷으러 다녔습니다. 이후 하동군에서 우리 소식지에 대항해서 전단지를 뿌렸습니다.

-그런데 군수 주민소환이 중단된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떤 합의가 됐나요?

문혜아: 1차 합의는 6월에 주민소환 들어가는 당일 하동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학부모들이 원하는 대로 다 해주겠다. 그래서 합의를 했는데 경남도에서 '그 합의서에 서명하면 군수 목을 날리겠다'고 했답니다. 그래서 군수가 한 번 엎었습니다. 이후 군수 주민소환 서명률이 15%에 이르자 다시 군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래서 합의를 하고 협의 이행기구를 만들었습니다.

-그럼 지금 협의 이행기구에서 나온 결과가 있나요?

장혜영: 계속 협의는 하고 있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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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동 학부모 연대 활동 모습./하동 학부모 연대 제공

-하동은 시골이라 무상급식 혜택이 좀 있지 않나요?

문혜아: 100인 미만 학교는 작년과 올해 급식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는 중식비는 안 내고 석식비만 내고 있습니다.

강정숙: 고등학교 엄마들의 부담이 커졌습니다. 예를 들어 하동고등학교는 하루 3끼 먹고 기숙사를 다니기 때문에 한 달에 35만 원이 나갑니다. 일 년에 500만 원입니다. 무상급식 지원이 예전대로 됐으면 반 이상 줄일 수 있는 비용입니다. 저희는 이제 무상급식을 의무급식이 되도록 급식법 개정을 원하고 있습니다. 도지사나 군수가 아예 손을 못 대도록 말입니다.

이춘선: 군대도 의무인데, 군인들이 도시락을 싸 들고 다니지 않잖아요? 의무교육이면 급식도 의무급식으로 해줘야죠.

강정숙: 급식비 개정이 안 되면 하동은 조례로라도 만들어야 합니다. 하동군은 예전부터 무상급식을 하던 곳입니다.

문혜아: 자본주의 사회에서 급식만큼 돈이 적게 들면서 빈부격차를 줄일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소득의 재분배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인터뷰하는 속속 학부모연대 회원들이 회의를 위해 속속 모여들고 있었다. 시간이 없었다. 끝으로 학부모들에게 간단하게 하고 싶은 말을 요청했다.

이춘선: 사실 이 내용을 어르신들이 의외로 잘 알고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오히려 젊은 사람들이 더 모르더군요. 젊은 학부모들이 지금 와서 왜 급식비 환급이 안 되냐고 물을 때는 기가 찼습니다. 제집이 진교면인데 지금 이렇게 모인 학부모들과의 인연을 놓치기 싫어서 같이 어린이날 행사를 하니 300명이 모였습니다. 제 결론은 해보니 되더라는 겁니다. 어차피 찍힌 것 끝까지 열심히 해보려고 합니다.

강정숙: 아이들에게 투표권이 없으니 가장 만만한 아이들 예산부터 깎습니다. 어르신 예산은 절대 안 깎습니다. 어르신 중에서도 "경로당에 쓸데없는 지원 하느니 애들 밥 줘라"는 분이 많았습니다. 제 생각에 17세부터 투표권을 줘야 한다고 봅니다.

장혜영: 이재명 성남시장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이 없으면 눈 똑바로 뜨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하동이건 성남이건 모두 복지사회에서 제대로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문혜아: 우리가 관심을 거두는 순간 정치인들은 입맛대로 합니다. 귀찮아도 어쩌겠습니까? 감시만이 정답이라고 봅니다.

짧지만 강렬했던 하동 아줌마들과의 인터뷰가 끝났다. 하동군은 전국에서 가장 먼저 고등학교까지 무상급식이 제공되던 곳이었다. 따라서 무상급식 중단 반발도 그만큼 거셌다. 학부모들은 멀리 있는 홍준표 지사뿐 아니라 바로 옆에 있는 윤상기 하동군수 주민소환 운동이라는 초강수를 뒀다. 그로 인해 엄청난 고난을 겪어야만 했지만 더 단단해졌다. 과연 하동 아줌마들이 '전국 최초 전면 무상급식'을 일궈낸 하동의 명성을 지킬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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