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사라져갔지만 나무는 기억하고 있더라

진주 시내 한가운데 오래된 숲이 있다. 하늘을 덮을 듯이 기세 좋게 뻗어 가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길이 있고 100년이 넘은 아름드리 버즘나무가 수십 그루 있다. 멀구슬나무, 들메나무, 팽나무 등 평소 보지 못한 나무들과 벚나무, 느티나무 등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들까지 숲을 이루고 있다. 길을 따라 이리저리 방향 없이 발길을 옮겨도 온통 푸르고 서늘한 그늘이다. 2만 그루의 나무들이다.

남강 가에 일곱 개의 바위가 있어 '치리미' 또는 '치암이'라 했던 진주시 칠암동(동진로)에는 경남과학기술대학교(이하 경남과기대)가 있다. 40대 중반 이후의 사람들에게는 경남과기대보다는 전신인 '진주농전'으로 더욱 알려져 있는 곳이다. 경남과기대는 일제강점기인 1910년 진주실업학교로 문을 열어 진주공립농업학교, 진주농림중학교, 진주농림고등학교, 진주농림전문학교, 진주산업대 등으로 교명이 바뀌었고 기능이나 역할도 조금씩 바뀌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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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넘은 버즘나무들. 굵은 둥치는 청년 두세 명이 같이 껴안아야 한다. /권영란 기자

따져보면 100년이 넘은 학교이다. 그동안 자리를 옮긴 것도 아니고 여전히 그 자리이다. 임진란 진주대첩으로 널리 알려진 진주성이 있는 도심과 당시에는 '배건네'라 했던 이곳 칠암동 사이에는 넓고 푸른 남강이 흐르고 있었다. 1927년 이 두 곳을 잇는 진주교가 생기기 전에는 배를 타고 왕래했다. 학교 가는 길은 멀지는 않았지만 배를 타고 건너야 했다. 큰물이 나면 학교에 가지 못했고 사공이 없을 때면 배를 타는 누구든 사공이 되어야 했다.

"일제강점기 이곳에 농업학교가 들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때 진주가 도청소재지에다 물자도 풍부하고 교통이 원활했기 때문이지요. 이후에 진주역이 들어섰고, 진주교가 놓이고…."

경남과기대는 진주 사람들의 오랜 기억이 깃든 곳이다. 이름이 바뀌어 낯설어하지만 100년이 넘게 한 곳에서 버텨온 교정으로 들어서면 자연스레 기억을 더듬고 어디선가 귀동냥했던 한 두어 이야기는 주억거리게 된다.

순전히 나무들 때문이다. 교정을 오가는 사람들은 쉴 새 없이 바뀌었지만 멀구슬나무며, 들메나무며, 계수나무며, 버즘나무며… 미처 이름을 확인하지 못하는(나무마다 이름표가 달려있음에도) 나무들에 이르기까지 옛 시간 속으로 들어가는 길잡이처럼 가지를 늘어뜨리고 그늘을 만들어 준다.

이렇게 옛 시간 속으로 가는 학교 숲길 여행은 '쥐라기 공원'에서 걸음을 멈추게 한다. '쥐라기 공원'은 언제 어떻게 붙여진 이름인지 알 수는 없으나 학생들이 붙여준 숲의 애칭인 듯하다. 마치 쥐라기 시대를 떠올리듯 원시림에 가까운 나무들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거대한 공룡 등처럼 옆으로 누운 듯이 굽어 자란 버즘나무 때문인가 싶기도 하다. 더러는 쥐라기 공원이라 하지 않고 학교 역사나 나무의 수령을 강조하듯 '100년 정원'이라 부르는 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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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뒷문에서 이어지는 메타세쿼이아길.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더운 여름날이면 청량감이 더하다./권영란 기자

세월이 갈수록 진주 사람들에게서 '농업학교' '진주농전' 시절에 대한 이야기는 잊혀가지만 교정에 있는 나무들은 지나온 시절을 새기듯 가지를 뻗고 잎을 드리우고 그늘을 치고 있다. 어느 누구는 '나무는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휴식처'라고 했던가. 나무가 숲을 이룬 이곳에 어찌 나무만이 있겠는가. 땅속 벌레에서 나무에 붙은 곤충이며 잎 뒤에 숨은 새며. 그리고 사람들까지….

더운 한나절 이곳에 잠시 앉아서, 나무가 모여 숲을 이루고 나무의 역사가 어느새 사람의 역사가 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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