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차하지 않은 아름다운 이별 꽃 보시려거든…

백설(白雪)이 눈부신

하늘 한 모서리

다홍으로

불이 붙는다.

차가울사록

사모치는 정화(情火)

그뉘를 사모하기에

이 깊은 겨울에 애태워 피는가.

-<동백>, 정훈

동백나무 꽃말은 '당신은 내 마음의 불꽃' '불타는 사랑' '고결한 사랑' 같이 사랑을 노래하는 의미가 듬뿍 담겨 있다. 선홍빛 동백꽃을 보면서 꽃말을 생각해 보면 '사모치는 정화(情火)'가 가슴을 흔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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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꽃은 두 번 핀다는 말이 있다. 나뭇가지에서 한 번 그리고 땅으로 뚝 떨어져 또 한 번. 합쳐서 두 번 핀다. 절정의 순간에 한 줌 미련 없이 꽃잎을 간직한 채 통째로 뚝 떨어지는 동백꽃은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을 연상케 한다. 이루지 못한 사랑, 아름다운 이별을 노래할 때 동백꽃이 등장하는 이유다.

동백나무는 품종에 따라 11월부터 4월에 이르기까지 제법 긴 기간 꽃을 피운다. 조금이라도 따뜻한 기온이 이어지면 꽃을 피웠다가 다시 추워지면 꽃망울을 움츠리고 때를 기다린다. 동백이란 이름은 겨울에 피는 꽃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따뜻한 기후를 좋아해서 주로 남쪽 해안가에서 볼 수 있고, 북쪽으로는 옹진군 대청도, 울릉도까지 자생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동백나무는 그냥 동백나무와 애기동백나무가 있다. 둘은 겉으로 보면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로 매우 닮았다. 둘 다 겨울에도 떨어지지 않는 늘 푸른 잎을 볼 수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그냥 동백나무는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나무인 반면에 애기동백나무는 관상용으로 도입되어 널리 심어 가꾸고 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나무 전체에 연분홍 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다가 꽃이 질 때 벚꽃처럼 꽃잎이 한 장씩 떨어져 나가면 애기동백. 새빨간 꽃잎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통째로 뚝 떨어지면 그냥 동백나무 꽃이다. 요즘엔 지나치게 화려한 동백나무 꽃도 종종 볼 수 있다. 원예 품종을 하도 많이 만들어서 보는 이의 눈이 현란할 정도다. 꽃을 오래 보기 위해서인지 씨앗도 맺지 못하는 꽃을 수도 없이 피게 한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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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백나무는 쓰임새가 아주 다양하다. 동백나무 열매로 기름을 짠 것이 동백기름이다. 칼에 칠하면 녹이 슬지 않고 칠기를 닦으면 반들반들 윤을 낼 수 있다. 머리에 칠해도 윤이 나는데 머리카락에 손상을 주지 않아 옛날엔 많이 애용됐던 것이 동백기름이다. 식용으로 쓰이기도 한다.

동백나무는 목재로도 아주 유용하게 쓰인다. 예전에는 주판이나 장기의 알, 악기, 자, 얼레빗, 다식판, 절에서 사용하는 목어, 견고한 농기구와 목공구를 제작하는데 흔히 사용했다. 동백나무로 숯을 만들면 재질이 단단하고 그을음이 없어 화력이 오래가는 최고급 숯이 된다. 서해안 섬에서는 동짓날 저녁에 동백나무 꽃을 띄운 물로 목욕을 하면 1년 내내 부스럼이 생기지 않는다고 하여 목욕하는 풍습도 있었다.

사람은 연애를 하거나 중매쟁이가 있어 결혼 적령기 남녀를 결혼에 골인하게 하는데 동백꽃도 중매쟁이가 따로 있다. 동백꽃을 중매해주는 주인공은 동박새다. 새가 꿀을 빨기 좋도록 꽃 구조가 잘 발달되어 있어 동박새나 직박구리가 꿀을 빨아 먹으면서 자연스럽게 중매를 해 주는 것이다. 동백꽃 안쪽을 살짝 벌려보면 꽤 많은 꿀이 저장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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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그리움에 지쳐서 울다 지쳐서

꽃잎은 빨갛게 멍이 들었소.

동백 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할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 아가씨.

가신 님은 그 언제 그 어느 날에

외로운 동백꽃 찾아오려나.'

-<동백 아가씨>, 이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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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이미자가 부른 '동백 아가씨'를 흥얼거리며 동백꽃을 찾아가는 길. '동백 아가씨' 노래 가사처럼 빨갛게 멍든 꽃잎이 수줍게 맞아준다. 경남에서는 거제 지심도, 내도, 서이말 등대, 바람의 언덕, 학동 몽돌 밭 근처에 있는 동백나무 숲이 일품이다. 통영시 산양면 일주 도로와 거제 해변 도로를 달리다 보면 동백나무 가로수에 핀 동백꽃을 원 없이 볼 수 있다. 겨울에 붉은 꽃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읍디다.'

-<선운사 동구>, 서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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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멀리까지 가볼 요량이면 서정주 시인의 시 '선운사 동구'로 유명한 고창 선운사를 추천한다. 그곳에 가면 천연기념물 동백 숲을 만날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의 유배지였던 전남 강진의 다산초당 근처 백련사, 해남 대흥사, 여수 오동도, 광양 옥룡사 터 동백 숲도 아주 유명한 곳이다. 사찰 주변에 동백나무 숲이 많은 이유는 주변 산에서 발생한 산불이 번지는 것을 막아주기 때문이라고 한다. 동백나무는 불길에 강해서 집 주변에 심거나 마을 어귀에 숲을 조성해 불이 번지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했다. 전남 완도군 보길도에 있는 윤선도 유적지 주변의 동백나무도 이런 이유로 조성한 것으로 보인다.

구차하지 않은 이별의 상징, '아름다운 이별 꽃'을 보시려거든 시원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통영이나 거제로 주말 나들이를 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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