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에 대한 모든 반역을 제압하기 위해 1792년에 만든 단두대도, 푸세가 1799년 만들어낸 ‘세련되고 용의주도한’ 경찰기관과 비교하면 한갓 둔한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

프랑스 혁명기 경무대신(警務大臣) 조제프 푸세(Joseph Fouche)를 이야기할 때 등장하는 찬사(?)다. 정보정치, 공작정치 효시로 불리는 그는 끝없는 변신을 통해 권력만을 쫓았던 냉혈한으로 일컬어진다. 전기(傳記)를 쓴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래서 “나폴레옹은 세인트헬레나에서, 로베스피에르는 당원들 앞에서, 카르노· 바라스· 탈레랑은 그들의 회고록에서, 그리고 프랑스 역사가들은 그 입장이 왕당파이건 공화파이건 혹은 보나파르트파이건 간에 모두 이 남자 이름을 쓰자마자 몹시 화를 내며 펜을 누르곤 했다”고 썼다.

흔히 정치적 변신에 능한 이를 카멜레온, 혹은 철새에 비유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정도 단어로는 정치적 대척점을 수시로 오가며 오로지 ‘자신과 권력’에만 봉사한 이 사람을 다 설명하기란 어렵다.

푸세는 젊을 때 수도원 교사로 일하다 프랑스 혁명 후 고향 낭트에서 국민공회 의원으로 선출된다. 그는 처음 온건파로 시작했다가 강경파로 변신, 국왕 처형 대열에 합류한다. 지방장관으로 나간 리용에서는 반혁명 세력을 도살해 명성을 얻는다. 이때 그가 내건 기치는 <공산주의 선언>보다 더 극렬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다 이런 도살행위가 문제가 되자 자신을 징계하려는 로베스피에르에 맞서 음모를 꾸민다. 결국 푸세는 승자가 되고 로베스피에르는 단두대로 향한다. 이후 들어선 5인 집정내각에서 그는 처음으로 경찰정보를 운용하는 경무대신이 된다.

나폴레옹이 등장하자 집정내각을 배신하고 그를 지지해 다시 경무대신직을 맡는가 하면, 이후 나폴레옹과 부르봉 왕가를 오가며 배신에 배신을 거듭한다.

푸셰

사가(史家)들은 현란했던 변신을 이렇게 표현한다. “같은 피부와 같은 머리카락을 가진 인간이 1790년에는 수도원 교사였고, 1792년에는 교회 겁탈자가 되었다가 1798년에는 공산주의자가 되고, 5년후에는 백만장자가 되며 10년 후에는 오트란토 공작이 됐다”

변신을 뒷받침한 건 오로지 권력만을 쫓는 심성,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냉정과 대담함이다. 로베스피에르와 맞섰을 땐 그를 두려워하는 모든 국민공회 의원들을 한 그물로 묶어내는 놀라운 실력을 발휘했다. 경무대신이 되어서는 정보원, 밀고자, 비밀경찰을 촘촘히 배치해 프랑스 전역을 감시했다. 심지어 나폴레옹 부인 조세핀도 그에게 정보를 제공했다.

이렇게 획득한 정보로 푸세는 집정내각을, 나폴레옹을, 부르봉 왕가를 때론 어르고 때론 협박했다. 권력자들은 난국이 닥칠 때마다 수완 좋은 푸세를 필요로 했으나, 결국에는 막강한 정보력을 지닌 그를 통제하지 못하고 배신당했다. 푸세는 이처럼 수십 년 동안 곡예에 가까운 줄타기를 통해 권력을 탐닉한다.

정보공작에 관한 한 진정한 달인이었던 그는 후세들에게 신처럼 추앙받는다. 20세기 중반 불법으로 취득한 정보로 미국 대통령들을 쥐락펴락했던 FBI 국장 에드가 후버는 ‘푸세 노선’을 따랐던 전형적인 인물이다.

배덕자(背德者)로 손가락질 받는 푸세이지만 프랑스 문인 발작은 그를 높게 평가한다. “나폴레옹이 소유했던 유일한 명 대신, 내가 아는 한 가장 강한 두뇌, 정치무대의 인간과 사물과 술책을 진정으로 꿰뚫어본 천재”라고 말했다. 기술만으로 본다면 그는 분명 그런 사람이었다.  

기사제보
저작권자 © 경남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