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티가 커 보이는 자들…맞는 쪽-때리는 쪽, 누가 더 옳은지 살펴야

최근 통합진보당에 대한 보도나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당권파는 천하에 몹쓸 악의 화신이다. 그들은 선거부정을 저지른 자이며 태극기에 인사도 하지 않는 종북주의자이며 부정한 방법으로 당선된 비례대표 자리를 절대 내놓지 않는 부끄럽고 이기적인 존재들이다. 그 불의와 부정함을 알리려는 정도는 매일 온갖 매체의 보도방향만 봐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통합진보당은 가장 부패하고 불의한 보수여당에 대해 윤리적인 질책과 상대적인 도덕성으로 젊은이들의 신뢰를 얻어 지난 선거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얻은 정당이며 당권파는 그런 정당의 책임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들은 하루아침에 어느 누구보다 비윤리적인 사람들이 되고 말았다.

현재 이들에 대한 비판은 마치 전 국민적 공적을 처단하는 것 같이 모든 언론이 총궐기 복무하는 상태다. 이들은 언론에 죽도록 두들겨 맞는 중이며 이런 일방적 매질은 당권파의 몰락이 확실하게 매듭지어질 때까지 지속될 것 같다. 또 이와 비슷한 상황은 잇단 폭로로 망신살이 뻗친 조계종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이들의 문제가 새삼스럽거나 어제오늘이냐는 것이다. 그동안 종교계든 진보정당이든 그런 일들은 그들의 조직과 일상 속에서 어느 정도 존재했을 것이고 조직인들의 묵인 혹은 동조로 그런 사람들이 집행부가 되고 당권파가 되었을 터이다. 또 그런 문제들은 지금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조차 과거 묵인과 동조의 과정을 거치며 조직 속에서 문제를 덮고 공존했던 사람들이다. 왜 그동안은 그런 문제를 모르고 그런 사람들에게 당권과 조직을 맡겼다는 것인지 정말 이해가 안긴다. 그래서 새삼스런 폭로나 입에 거품을 문 비판자들도 도통 믿음이 가지 않는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제가 하면 지고지순한 사랑인가? 폭로자가 더 정직하고 더 옳으려면 평상시 치열한 문제제기와 해결 노력을 더 많이 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처럼 불의와 부정을 눈감고 용인하며 살아온 사람들이 밥그릇 싸움이 시작되면서 하루아침에 갑자기 도덕과 명분의 순결한 흰옷을 입고 처단의 칼을 휘두르기 시작하는 것은 우습지 않은가? 또 가관인 것은 무심하던 방관자들도 하루아침에 개혁가(?)의 대열에 서서 한목소리로 기득권 타도를 외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권력투쟁을 시작할 때만, 밥그릇을 위해 너 죽고 나 죽자고 달려들 때만 조직의 감추어지고 가려졌던 온갖 문제들이 들춰지고 폭로되는 것은 진정 옳은 일이 아니다. 건강한 조직이라면 지금의 문제도 항시 조직 내에서 논의되고 해결되어야 할 것들이다. 올바른 조직이어야만 다른 정당이나 조직의 문제를 따질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제 눈의 들보보다 남의 티가 더 커 보이는 정당이나 사람들에겐 정의의 기준이란 나에게 불리하면 불의고 내게 유리하면 정의인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야 너 죽고 나 죽자는 권력투쟁보다 조직 내에서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므로 양자 갈등 시 한쪽만 죽도록 패는 일은 부도덕하다. 언론의 변덕에 힘입어 흔들리는 것을 여론이라 한다면 여론처럼 변덕스런 것도 없다. 사람들은 대다수 약자가 되어버린 자에 대해 당당하고 잔인하다.

   
 

현재 두드려 맞는 쪽도 때리는 쪽도 누가 옳은지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알 수 있다. 역사는 늘 살아남는 자의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 늘 옳고 누가 늘 틀렸다는 것 또한 흑백논리라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진보하려면 매 순간 끊임없이 일상의 실천 속에서 더욱 올바르게 살려는 성찰과 노력이 필요하다. 야합자 혹은 동조자에서 갑자기 심판자로 돌변하는 사람들 또한 그리 아름다운 모습이 아니지 않은가? 일방적인 한쪽 때리기 또한 어쩌면 너무 단순하거나 비겁한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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