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성공이야기] 112안전시스템 이창익 대표

1990년 10월 13일,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범죄와 전쟁’을 선포한다. 헌법이 보장하는 대통령 권한을 총동원해 민생치안 문제 해결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이다. 눈에 띄는 성과는 상당했다. 시간이 흐른 뒤 경찰이 실적 위주 수사·검거에 쏠리지 않았느냐는 비판이 나올 정도였다. 범죄와 전쟁 선포 한 달 전, 창원에 ‘안전경비시스템’이라는 민간 경비업체가 생긴다. 현재 ‘19년 연속 무사고’를 자랑하는 경비업체 ㈜112안전시스템 전신이다. 당시 경찰 신고 체계와 민간 경비업체 감시 체계를 하나로 묶는 시도를 처음 한 이가 바로 이창익(55) 112안전시스템 대표다.

112안전시스템 이창익 대표./박일호 기자

창원시 성산구 사파동에 있는 ‘112안전시스템’ 사무실에 들어서자 쩌렁쩌렁한 지시가 울린다. 희끗희끗한 머리에 생활한복을 입은 중년이 사무실 가운데서 직원들을 채근한다.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불호령 같은 말투에도 직원들 표정은 담담하다. 이창익 대표 말투는 직원들에게 지시할 때도 인터뷰를 할 때도 다를 게 없었다. 사무실 한쪽에 앉아 긴 얘기를 주저 없이 쏟아냈다. 어느덧 20년을 넘긴 ‘토종 경비업체’(그는 유난히 이점을 강조한다) 112안전시스템. 대형 민간 경비업체를 제치고 경남지역 주요 기관 경비 시스템을 책임지는 업체다. 지역 경비업체가 주요 기관 경비를 책임지는 경우는 전국적으로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민관 경비·신고 시스템을 하나로 묶자

“1990년 창원 신월동 경남경찰청 앞에서 ‘안전경비시스템’이라는 상호로 시작했으니 벌써 20년이 넘었네요. ‘112안전시스템’이라는 상호는 1991년부터 썼고요.”

TV광고로 민간 경비업체가 익숙해진 것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하지만, 민간 경비업체는 이미 70년대 후반부터 들어와 있었다. 그러니까 90년대 정도면 세콤·캡스 같은 경비업체가 이미 업계에 자리 잡고 있을 시기다. 이창익 대표는 상당히 후발주자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후발업체가 지역 주요 기관 경비 시스템을 꿰찬 셈이다.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지요. 그때까지는 민간 경비 시스템과 경찰 신고 시스템이 이원화돼 있었어요. 그 시스템을 하나로 묶자는 게 제가 내놓은 제안이었지요.”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이전에는 업체가 경비 시스템을 설치한 곳에서 사고가 생기면 먼저 업체 쪽 관제 시스템으로 신고가 들어온다. 문제는 업체 경비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사고 발생 지역 근처에 순찰차가 있으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으면 현장까지 때 맞춰 도착하기 어려워진다. 그러면 업체 경비원은 부득이하게 112로 신고해 경찰에게 현장 출동을 부탁하곤 했다. 그리고 현장으로 뒤쫓아 가는 것인데, 대응이 그만큼 늦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구조를 파악한 이창익 대표는 경찰 쪽에 한 가지 제안을 하게 된다.

112안전시스템 이창익 대표./박일호 기자

“간단해요. 경비업체, 경찰서, 파출소까지 상황이 발생하면 동시에 경보가 울릴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자는 것이지요. 경비 시스템은 업체에서 설치하더라도 경보는 한꺼번에 울리도록 해 상황이 발생하면 가장 빠른 대처를 하자는 제안이었어요.”

경찰은 이창익 대표가 한 제안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동시 경보 시스템을 갖추게 된다. 성과는 실적으로 나타났다. ‘범죄와 전쟁’을 선포했던 시기와 맞물려 그해 경남지방경찰청은 의미 있는 실적을 남겼고, 112안전시스템을 수훈자로 꼽았다.

112안전시스템 이창익 대표./박일호 기자

“그때는 정말 잘나갔지요. 경찰이 홍보를 해줬다니까요. 범인 검거 실적이 눈에 띄게 차이가 나니 지역에 힘 좀 쓴다는 사람들에게 나서서 알려주더라고요. 우리는 가서 시스템을 설치만 하면 됐고….”
이창익 대표 말을 빌리면 ‘땅 짚고 헤엄치기’, ‘김 선달 물장사’ 같은 시기였다. 따로 분리된 경보 체계를 하나로 묶자는 간단한 아이디어 하나가 거둔 성과였다.

“전자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자회사를 11년 정도 다녔어요. 마산 수출자유무역지역에 있는 다국적 기업이었는데 컴퓨터 등 각종 전자제품을 만드는 회사였지요. 전자와 컴퓨터에 대한 지식이 어느 정도 있었지요. 그러니까 민간 경비 시스템과 경찰 신고 시스템을 보니 뭔가 통한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어요.”

현재 주류라고 할 수 있는 대형 경비 시스템도 고민하지 않았고, 경찰도 신경 쓰지 않았던 틈새를 파고든 셈이다. 어쨌든 이창익 대표가 고안한 시스템이 큰 성과를 내면서 전국적으로 비슷한 업체가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지역 주요 기관에 시설을 둔 업체는 매우 드물다. 오히려 대형 경비업체에 밀려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게 지역 ‘토종’ 경비업체 현실이다.

인명·재산 지키려면 그만한 투자 받아야

112안전시스템 이창익 대표./박일호 기자

“이 사업을 하면서 한 가지 확고한 생각이 있어요. 인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시스템을 취급하면서 돈에 좌지우지되면 안 된다. 받을 것은 정확하게 받아야지 어설프게 가격 경쟁을 하면 안 되지요. 대형 업체는 자본이 많으니 싸게 시스템을 설치하기도 해요. 하지만, 우리는 제대로 받아야 됩니다. 그래야 시공도 제대로 하고 생명과 재산도 제대로 지키지요.”

이창익 대표는 어설픈 가격 경쟁을 지역 경비업체 실패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대기업이 염가로 시스템을 설치한다 해서 무리하게 가격을 맞추고, 그러다 보니 부실시공이 됐다는 것이다. 그 결과 사고가 터지면서 지역 업체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졌다는 지적이다.

“저는 요즘도 견적 물어보는 사람들에게 말해요. 완벽한 경비 시스템을 원하는가, 상대적으로 싼 가격을 원하는가. 만약 가격을 먼저 따지면 미련 없이 다른 업체 알아보라고 해요.”

물론 위기도 있었다. 이창익 대표만 겪은 위기라기보다 업계 전반이 겪은 위기라고 할 수 있는데, 바로 IMF다. ‘지킬 게 없었던 때’라는 말이 맞을 듯하다. 당장 생존이 왔다 갔다 하던 때에 경비 시스템을 넣어 무엇인가를 지킨다는 것은 사치였다. 이미 경비 시스템을 설치한 곳에서조차 필요 없으니 떼어가라 했다. 마지못해 시스템을 설치해야 한다면 설치·유지비가 다만 1만 원이라도 싼 곳을 찾았다. 당시 대부분 경비업체가 큰 위기를 맞았지만, 또 염가로 덤비는 경비업체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길 때이기도 했다. 대형 경비업체조차도 염가 정책으로 버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창익 대표는 가격 경쟁이 답이 아니라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자 다시 기회가 온다.

“일단 싼 값으로 설치한 경비 시스템이 필요할 때 제대로 작동되지 않았지요. 상식적으로 그럴 수밖에 없잖아요. 결국, 어설픈 설비 때문에 사고가 자주 났지요. 남대문 방화 사건을 통해 어설픈 경비 시스템에 대한 불신이 더욱 커졌고요. 결과적으로 우리에게는 기회가 됐지요.”

똥개도 자기 동네에서는 50% 먹고 들어가

지킬 것도 못 지키는 경비 시스템에 싼 가격은 더는 경쟁력이 아니었다. 설치할 때는 완벽한 보상을 내세우던 업체들이 막상 사고가 나면 어디에 있는지 모를 약관을 들어 발뺌하기 일쑤였다. 외환위기를 넘기면서 소비자 눈이 높아지자 이런 업체들은 외면받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정리됐다. 일단 사고가 없었던 112안전시스템은 위기를 넘기며 다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 같은 것은 없어요. 돈 있으면 더 많이 들여서 더 좋은 치마를 입어야지요. 싸고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 경비 시스템은 더욱 그렇지요. 같은 회사에서 만든 자동차도 가격대에 따라 성능이 달라요. 그게 당연하지요.”

이창익 대표는 거침없이 자신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자신감은 20년 남짓 쌓은 실적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리고 앞으로 이루고자 하는 목표도 자연스럽게 자부심 연장으로 이어졌다.

“이 일을 하는 동안은 사고가 없는 게 최고지요. 19년 연속 무사고를 기록하고 있는데 계속 국내 최장기 무사고 경비업체로 끌고 나가고 싶어요. 앞으로 20년, 30년 그렇게….”

112안전시스템 이창익 대표./박일호 기자

이 같은 목표는 이창익 대표 개인, 또는 112안전시스템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112안전시스템이 거둔 성과가 곧 국내 토종 경비업체 성과라고 여겼다. 외국 지분이 끼어 있는 대형 경비업체에 맞서 토종 지역 경비업체가 밀리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 했다. 말 그대로 자존심이었다.

“전국까지는 모르겠어요. 최소한 지역에서는 지역 경비업체가 인정받아야지요. 똥개도 자기 동네에서는 50% 먹고 들어간다고 하잖아요. 큰 것은 큰 업체가 맡아라, 대신 지역은 지역 경비업체가 제대로 지키겠다. 당연한 거 아닙니까? 지역 개가 지역 잘 지키겠다. 괜찮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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