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항쟁 기념 추진위 발족식서 "껍데기 가려내야" 목청

'6월 민주항쟁 20주년 기념 경남추진위원회' 발족식에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민주노동당 국회의원을 비롯해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과 고영진 경남도교육감, 도의원과 시의원 등 정치인들도 여럿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6월항쟁 기념 경남추진위 발족식에 (오른쪽부터) 김두관 전 장관, 고영진 도교육감,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 권영길·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등이 앞자리에 앉아 있다.
주최측은 현직 국회의원들 중 정당별로 한 명씩 축사 기회를 줬는데, 이들의 발언 내용이 화제가 될 만 했다. 특히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껍데기론'을 시작으로 '격한' 연설을 했다. 그의 '껍데기론'은 해석하기에 따라 '6월항쟁 기념사업'과 추진 주체, 또는 당시의 순수한 정신을 잃은 일부 인사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 들릴만 했고, 앞서 '민중의례'를 문제삼은 한나라당 이주영 의원의 발언을 반박하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도 있었다.

사업추진주체 겨냥 · 이날 특정 참석자 비판 등 '해석 분분'

먼저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은 "나도 당시 해외에서 민추협 활동을 하면서 국내 민주화운동을 지원했던 생각이 난다"며 6월 항쟁에 자신도 일조했음을 상기시켰다. 이어 "6월 항쟁의 성과로 대통령 직선제 등을 쟁취했지만 아직도 우리 정치는 지역감정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면서 "지금은 임기 개헌도 있고 지자체 선거에서 정당공천제 폐지도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어 단상에 선 이주영 한나라당 의원도 "내가 16대 국회의원 시절 민주화운동 지원 법률을 심의하면서 '민주화운동'의 정의를 내릴 필요가 있었는데, 그 효시가 될 수 있는 게 '3.15마산의거'라고 했던 바 있다"면서 역시 자신의 역할을 부각시켰다.

그러면서 이날 행사의 첫 머리에서 국기에 대한 경례와 애국가 제창 대신 민주열사에 대한 묵념과 '님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것을 겨냥, 이렇게 쓴소리를 날렸다.

"이 자리도 나라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태극기를 갖다 놓고 보편적으로 하는 '국민의례'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민중의례'도 민중운동을 하면서 민주주의 발전에 기여한 분들에게는 맞을 수 있겠지만, 국민 모두가 함께 할 수 있는 의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같은 이주영 의원의 '충고'가 나오자 청중석에서 두 명 정도가 박수를 치며 동의를 표했으나 다른 대부분의 참석자들은 쓴웃음을 지으며 침묵을 지켰다.

다음은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의 축사 순서였다. 권 의원은 "참으로 복잡한 심정으로 이 자리에 섰다"며 결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축사 보다는 참회와 반성이 필요합니다. 신영복 선생이 쓴 '처음처럼'이라는 글귀가 지금은 소주 이름으로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필요한 게 바로 '처음처럼'이란 자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권 의원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6월항쟁까지 우리의 투쟁이 뭘 위한 것이었습니까? 바로 '껍데기'와의 투쟁이었지 않습니까? 해방 후 지금까지 누가 진정으로 민주화를 위해 싸웠는지, 누가 우리사회를 어둡게 만들어왔는지 그걸 구분하고 찾자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껍데기'를 가려내야 합니다. 그걸 제대로 하자는 게 6월까지의 투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발언이 점점 의미심장해졌다. 이날 행사 자리에 '껍데기'들이 많다는 건지, 그런 '껍데기'를 섞어넣어 '처음'의 순수한 정신이 훼손됐다는 건지, 6월항쟁 기념추진위와는 관계없이 아직도 가려내야 할 우리사회의 '껍데기'들이 많다는 것인지 꼭 집어 말하진 않았다.

'껍데기'에 대한 문제제기는 '원칙'에 대한 강조와 '참회와 반성'을 촉구하는 말로 이어졌다.

"민주와 통일, 정의, 평화, 평등은 이제 포기해야 합니까? 이를 위해 지금 우리는 뭘 해야 하는 겁니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건 '원칙'인 겁니다. 지금 민주화 세력이라는 게 어떻게 돼 있습니까? 참회와 반성, 그리고 거기에 뒤따르는 행동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20년 전 6월항쟁의 주체와 현재 기념사업의 의미에 대해서도 권 의원은 이렇게 정의했다.

"6.10항쟁은 몇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학생운동하던 몇 사람이 한 겁니까? 아닙니다. 바로 민중이 주체였습니다. 그 때 밥풀떼기 취급을 받았던 민중이 지금도 '우리는 어느 자리에 서야 하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6월항쟁의 주체였습니다. 20주년 기념사업? 바로 그들을 찾아서 섬기자는 것입니다."

그의 격한 연설은 "다시 출발하자. 그런 의미를 되새기면서 나도 참회하고 반성하고, 다시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위해 손잡자"는 말로 끝났다.

이날 행사에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도 참석했으나 따로 축사를 할 기회는 얻지 못했다. 강 의원과 다른 정치인들은 1부 발족식 행사가 끝난 후 대부분 자리를 떴다.

김두관 전 행정자치부 장관은 2부 창립총회가 마무리된 후 추진위 고문 자격으로 단상에 섰다.

김 전 장관은 "호헌 철폐, 민주쟁취를 외쳤던 게 벌써 20년이 되었다"며 "그동안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를 거치면서 제도적 민주주의는 이뤄졌다고 보지만 사회경제적 민주화는 아직 멀었다고 본다"고 말했다.

따라서 김 전 장관은 "다시 한번 민주개혁세력들이 진화하여 사회경제적 민주화까지 이뤘으면 좋겠다"며 "그것이 여기에 모인 우리의 과제가 아닌가 싶다"고 말을 맺었다.

한편 이날 행사팸플릿에는 김태호 경남도지사와 고영진 경남도교육감, 박판도 경남도의회 의장의 축사도 실려 있었으나, 고영진 교육감만 직접 참석해 축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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