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세 감독의 7번째 영화가 드디어 선을 보였다. <개그맨>(1988),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1), <첫사랑>(1993), <남자는 괴로워>(1995), <지독한 사랑>(1996), 그리고 <인정사정 볼 것 없다>(1999) 등을 통해 나름의 스타일을 구축해 온 그가 <형사 Duelist>로 자신만의 농밀한 연출 스타일을 고집스레 뽑아냈다.

먼저 제목을 눈여겨보자. <형사 Duelist>는 사극임에도 영어제목을 병기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이 영화의 한국어 제목이 ‘형사’이고, 영어 제목이 ‘Duelist’가 아니라 ‘형사 Duelist’가 하나의 제목으로 불리길 원한다. 사극에 붙여진 영어 제목은 누군가가 최초로 만들었을, 김치에 버터 바른 요리처럼 낯설고 특이하다.

이런 현상을 작품 곳곳에서 맞닥뜨리게 되는데 포교들이 모여 범죄소탕회의를 할 때 인물들이 내뱉는 대사와 톤이 현대 형사물에서 봄직한 강력반 회의와 똑같아 오히려 이색적으로 비친다거나 영화 초반의 장터 신에서 엽전보퉁이를 점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몸싸움을 럭비 경기처럼 묘사한 점, 주인공 남순(하지원 분)과 슬픈눈(강동원 분)의 의상과 머리모양이 기존의 사극물에서 벗어나 개연성에 입각한 합리적인 상상력으로 재현된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것이 과거와 현재의 퓨전에 콘셉트를 맞춘 것이든지, 고정관념을 허무는 독특한 아이디어 창출에 기인한 것이든지 간에 감독에게는 하나의 스타일로 구축되어 작품 전체를 관통한다.

그의 스타일리시한 연출은 인물의 리듬감 있는 움직임을 화면에 담기 위해 리치가이 식의 카메라 워킹, 고속·저속 촬영, 스피디한 편집 등을 과감하게 사극에 접목시키기도 한다. 장터 신에서 펼쳐지는 몸싸움과 추격 장면, 돌담 신에서의 결투 장면, 병판 대감집에서 펼쳐지는 두 무리의 대치장면 등은 영화가 시각예술임을 다시 한번 일깨우는 화면들이다.

비주얼의 승부사가 벌이는 화려한 열전

미장센 차원에서 보면, 장애물을 화면 가까이 두고 주 피사체를 그 뒤에 두어 장애물로 가려 찍기(혹은 걸어 찍기)를 하는 경우를 종종 접하게 된다. 장터에서 펼쳐지는 시전 물품들에 의해 슬픈눈이 화면에서 종종 사라지거나 빨랫줄에 널어놓은 염색 천 뒤로 숨어다니는 화면을 통해 슬픈눈의 비밀스런 캐릭터를 효과적으로 드러내려 한 것 등이 그 예이다.

더욱이 ‘장애물로 가려 찍기’의 시각적 효과는 돌담 신에서 극대화된다. 돌담신의 결투 장면에서는 특이하게도 장애물 대신 명암을 이용한다. 달빛 교교한 밤, 돌담에서 번진 음영의 공간을 두 주인공 남녀가 넘나들며 칼부림을 펼친다. 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검과 칼은 달빛을 받아 날카롭게 빛나지만 둘의 몸놀림은 상대를 멸하기 위한 초식이라기보다 듀엣 춤을 추는 춤사위로 다가온다.

둘은 대결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지만 서로에 대한 연정이 싹텄고 그것을 상대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가슴 한 편에 묻어둔 것처럼, 그들은 칼부림 동작에 묻은 사랑의 감정을 간헐적으로 돌담의 음영에 파묻혀 수줍게 갈무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듯 TV드라마 <다모>와는 원작이 같을 뿐 색다른 영화가 나올 것이라는 감독의 장담이 지켜졌다고 말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있다. 스타일리시한 연출력, 특히 시각적 재능을 한껏 발휘한 점은 인정되나 스토리가 약해 관객의 감정이입을 머뭇거리게 해 ‘다모 폐인’이란 신조어가 만들어질 정도의 열렬한 호응은 다소 욕심이 아닐지.

/단편영화 감독 겸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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