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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정당담]이젠 '조건'에서 해방된 스포츠를

병역 혜택에 짓눌린 한국 남자 선수들
최선 다하고 즐기는 스포츠 가치 찾길

김태훈 지역스토리텔링연구소장 webmaster@idomin.com 2018년 09월 03일 월요일

지난달 29일 아시안게임 축구경기 준결승에서 한국과 베트남이 맞붙었다. 베트남은 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4강에 진출했고, 우리는 베트남팀 감독이 박항서라 양국의 관심이 뜨거웠다. 경기가 열리기 전 경기장 바깥부터 응원전이 달아올랐다. 베트남 축구팬 한 명이 사진 팻말을 들고 돌아다녔다. 사진은 한류 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한 장면. 군복을 입은 송중기 모습인데 얼굴이 달랐다. 손흥민이었다. 사진 아래 영어로 "손흥민은 군대 간다(Son Heung min joins Korean army)"는 글귀를 새겨넣었다. 베트남이 이길 때 한국 선수들이 병역 혜택을 못 받는 상황을 비꼰 것이다.

하루 전 28일에는 남자 양궁 개인전 결승전이 열렸다. 세계랭킹 1위인 김우진과 2위 이우석이 맞붙었다. 국군체육부대 소속의 이우석이 금메달을 따면 병역 혜택을 받고 바로 전역할 기회였다. 경기는 끝까지 팽팽하다가 마지막 한 발 김우진이 10점, 이우석이 9점을 기록하며 승패가 갈렸다. 이우석의 병역 혜택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후배의 병역 혜택이 자기 때문에 사라졌다고 생각한 때문인지 김우진은 금메달을 따고도 기쁨을 표현하지 않았다. 정정당당한 승부 뒤에 그렇게 어색해하는 장면도 처음이었다.

야구 경기는 처음부터 머쓱했다. 첫 경기 상대 팀인 대만은 선수 대다수가 실업팀 출신이었고 프로는 극소수였다. 결승에 오른 일본팀은 전원 사회인야구 선수들이었다. 아시아에서 야구 좀 한다는 세 나라 중에서 두 나라가 아마추어 위주로 팀을 꾸린 반면 우리는 100% 프로로 채웠다. 조카들 경기에 삼촌이 끼어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선수 중 상당수는 병역을 앞두고 있었다. 야구팀의 키워드도 단연 '병역 혜택'이었다.

선수라면 누구나 경기장에서 최선을 다한다. 경기 규칙을 지키며 정정당당하게 승부를 겨루는 선수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그런데 경기장에서 땀 흘리는 한국의 남자 선수들은 과연 아름답게만 보일까 하는 의문이 든다. "승리하려고 최선을 다한다"와 "군대 안 가려고 최선을 다한다"는 엄연히 다른 느낌 아닌가. 스포츠 정신도 신성하고 병역 의무도 신성한데 이 두 신성함이 '조건'으로 연결될 때 왜 우리는 불편함을 느낄까?

아시안게임이 한창이던 지난달 22일 일본의 뉴스와 신문 1면을 차지한 스포츠 이벤트가 하나 있었다. 일명 '고시엔 대회'로 알려진 '전국고교야구선수권대회'의 결승전 소식이었다. 일본에서 고시엔 대회가 워낙 인기 있지만, 매번 톱뉴스를 차지하는 건 아니다. 올해는 그만큼의 화제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승에 오른 가나아시농고 야구부가 주인공이었다. 전교생 500여 명에 불과한 가난한 시골 공립학교 야구부가 전국의 수두룩한 야구 명문 사립학교를 다 격파하고 올라왔기 때문이다. 마치 골리앗들을 연파한 다윗을 보는 것처럼 일본 사회는 열광했다. 2007년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역시 공립학교였던 사가기타고 야구부가 우승까지 일궈냈다.

올해 우승한 선수들이 앞으로 진로를 선택할지는 모르겠지만 2007년 우승팀인 사가기타고 선수들은 졸업 후 단 한 명도 프로에 진출하지 않았다. 대학에 진학하든지(대학 야구부가 아니다) 회사에 입사하면서 각자 준비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물론 프로에 가지 않은 것이 칭찬받을 일은 아니다. 다만 그들이 특정 조건 때문에 열심히 한 건 아니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이런 순수성 때문에 고시엔의 인기가 100년 넘게 지속하는 것 아닐까?

"반에서 1등 하면 ○○를 사줄게" 식으로 '조건'을 거는 육아법은 부모나 자식 모두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순간의 짜릿한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공부하는 본질적인 즐거움을 없애 궁극적인 행복을 반감시키기 때문이다. 우리 스포츠도 이제 그런 '조건'에서 탈피해야 하지 않을까? 병역 혜택 같은 조건이 아니어도 스포츠에는 자기 최선을 다해도 아깝지 않을 멋진 가치가 존재한다. 이젠 스포츠를 조건에서 해방시킬 때가 됐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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