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제천·밀양참사 '빨리빨리'가 원인
'작은정의'무시하다간 공멸재앙 만날지도

세월호 참사 기억이 생생한데 제천 목욕탕 화재와 밀양 병원 화재참사가 잇따랐다. 이 참사들의 공통된 원인은 아주 작고 하찮게 여기지만 커다란 것을 이루는 바탕이 되는 것을 예사롭게 여겨 마침내 끔찍한 재앙을 불렀다는 점이다. 작은 것을 하찮게 여기는 정신구조를 '빨리빨리증후군'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오히려 이것은 한국 현대사에서 생긴 적폐일 것이다. 이 적폐는 우리의 의식과 행위의 핵심이 작고 낮은 것을 깔보면서 크고 높은 것을 추앙하는 귀신으로 변한 '빨리빨리' 심리가 만들어낸 현실이다. 이 귀신의 구체적 모습은 이익과 편리함으로 변신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주의, 신자유주의, 좌파와 우파의 대립, 빈부의 격차, 지역주의, 성차별, 노인차별 등이다.

'빨리빨리'는 정신질환이다. 이 병이 생겨난 숙주는 '산업화'라는 문명의 현장이었다. 산업화는 기계·화학제품을 대량 생산하는 중공업을 중심으로 금융, 유통, 서비스업 등을 주축으로 하여 기존의 농어업, 임·광업 등의 변화를 가져와서 인간의 삶을 바꾸려는 것이었다. 산업화의 특징은 국가의 강제가 아닌 시민들의 무의식적 협동 형태로 사회구조를 개편하고 생산수단을 기계화 공업화하는 것이다. 산업화 발생지였던 유럽국가들이나 이를 받아들인 일본은 보통 100년에서 70여 년의 긴 시간에 걸쳐서 천천히 산업화 과정을 겪었다. 개인들의 사고방식과 생활관습, 전통과 새로운 관습과의 조화, 가족관계와 사회구조의 혁신, 경제구조와 개인의 경제관념 변화, 건축, 예술과 학문의 성찰 등 삶 전반에 걸쳐서 아주 체계적이고 천천히 진행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1960·70·80년이라는 30여 년 만에 산업화를 이루었다고 한다. 특징은 군사정부 주도의 강제적 방식으로 산업화의 목적, 범위, 구조, 이행방식까지 철저하게 밀어붙였다. 시민들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마지못해 움직였다. 공장 건설을 위한 민간이 토지의 강제 수용과 강제 철거, 기술·기계 도입 목적의 자본 마련을 위해 외국의 자본을 빌려오는 과정의 비밀성과 자본 배정에서 선택된 소수 기업가와 정권의 유착, 시민들의 참여를 끌어내기 위한 국가 주도의 관제 조직과 운영의 강제성 등으로 무늬만 산업화하였다. 거기에는 정치적 폐해와 사회적 재앙이 적폐를 쌓았지만 정치적 계획으로 철저히 은폐되었다. 인간적 성찰과 사회적 합의는 위험한 적대행위로 규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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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화라는 정치적 구호는 인간 개성과 사회적 정의를 철저하게 소외시켰다. 그래서 생겨난 기형아가 '빨리빨리'였다. 이 과정에서 철저히 무시되어 온 것이 '작은 것의 소중함'이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이 이루어진다는 자연을 무시하고 여전히 인위적으로 크고 작은 것을 의도적으로 규정한다. 작은 것의 대명사 쯤 되는 '메모리칩'이 대세를 이루고 있는데도 가난한 사람, 저학력자, 소득이 작은 사람, 작은 차를 모는 사람, 그리고 일상생활의 규범과 자잘한 규칙이 무시된다. 이러다가는 머잖아 모두 파멸하는 재앙을 만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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