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집중도 하락·공연 규모 초라
예산 투명성 놓고 군-진흥회 이견
군민도 나뉘어 '추진 주체' 시각차
범군민 협의기구 '혁신위' 발족

28년간 이어온 거창 연극제가 올해 둘로 쪼개져 개최됐다. 거창군이 설립한 문화재단과 기존 행사를 추진해오던 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 운영 갈등 탓이다.

문화재단이 명칭을 바꿔 진행한 거창한 여름연극제와 진흥회가 주최한 거창국제연극제가 열린 장소는 차량으로 10분 거리. 멀지 않은 곳에서 경쟁하듯 지난달 28일 동시에 막이 올랐다. 두 동강 난 연극제로 지역민과 관객 혼란은 물론 국내 대표 야외축제로서 명성에도 금이 갔다. 외지인들은 되레 성대하게 치러지는 같은 축제로 인지했다. 뒤늦게 각기 다른 행사라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땐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난 6일 거창국제연극제 폐막에 이어 13일 거창한 여름연극제가 일정을 마무리했다. 축제는 끝났지만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논란 속에 치러진 두 개의 연극제는 군민과 연극인들에게 생채기를 냈다.

지난달 28일 거창버스터미널 한쪽에 거창한 여름연극제와 거창국제연극제 홍보물이 뒤섞여 있다. /문정민 기자

이제는 갈라지지 않은 하나의 무대를 밝히기 위한 해결책 찾을 일만 남았다. 그러려면 우선 연극제 기간 드러난 문제점을 엄밀히 따지고, 현실을 정면으로 직시해야 할 것이다. 두 곳에서 치러진 행사를 전반적으로 돌아보고 양 주최 측 입장과 군민들 생각을 들여다봤다.

◇하나만도 못한 두 개의 연극제

지난달 28일 위천면 수승대에서 축제 시작을 알린 거창한 여름연극제. 지난 13일 폐막하기까지 17일간 유료관객은 예년과 비교해 절반 수준으로 뚝 떨어졌다.

긴 가뭄으로 계곡물이 말라 피서객이 급감한 점을 감안하더라도 지자체 예산 8억 원을 들인 축제가 내세울 만한 성적은 아니다.

28년간 열린 연극제를 통해 지역민과 관객의 작품 보는 눈과 수준은 갈수록 높아졌다. 작품이 좋거나 재미있는 요소가 있다면 자연스레 발길을 옮기게 마련이다. 관객이 무대를 외면했다는 것은 작품 선정에 있어서 대중 입맛과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다는 방증이다.

때문에 수승대 내 주요 무대인 축제극장, 달물빛극장, 구연극장 객석은 만석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도내 극단 고도 <오케이-컷!>과 극단 현장 <광대들> 또한 관객 동원에 있어서 명함을 내밀지 못했다. 그나마 지난 12일과 13일 700석 규모 축제극장 무대에 오른 폐막작 <넌센스2>가 이틀 연속 매진으로 체면을 차렸다.

거창국제연극제 개막작 <천하맹인, 눈을 뜨다> 공연 모습. /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

문화센터, 문화원 등 거창읍으로 분산된 공연장도 저조한 흥행에 한몫했다. 군 전체를 아우르기 위해 곳곳에서 진행한 공연은 오히려 행사 집중력을 떨어뜨렸다.

군 내부에서조차 길거리를 무대로 삼은 프린지 공연마저 분위기를 돋워야 할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말이 나왔다.

거창한 여름연극제와 같은 날 개막해 지난 6일 막을 내린 거창국제연극제 또한 평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거창연극제육성진흥회가 주최한 연극제는 거창연극학교 내 토성극장(700석)과 장미극장(150석 ) 주로 두 곳에서 유·무료 공연으로 진행됐다. 주최 측에 따르면 축제가 치러진 10일간 유료관객 8000여 명이 찾았다고 한다. 지자체 지원 없이 자부담과 기부금으로 내실을 기한 기념비적 축제로 자평했다.

스스로 연극제 자생력을 보여줬다고 하지만, 실상 28년을 이어온 '국제연극제'란 타이틀에 걸맞은 규모가 아니다. 행사를 치른 장소도 협소할뿐더러 참가팀도 4개국 10개 팀에 불과하다. 똑같이 민간 주도로 진행한 지난해 행사보다 참가 단체도 공연 횟수도 대폭 줄어들었다.

▲ 거창한 여름연극제 개막 때 다원국악관현악단 공연 모습. /거창군

◇축제 통합 공감은 하지만…

"하나로 통합해야 한다." 거창군도 진흥회도 공감한다. 하지만 방법을 놓고 여전히 엇갈린다.

거창군 관계자는 진흥회 투명성만 확보되면 하나의 행사로 개최할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다고 밝혔다. 지금껏 연극제가 끝난 후 경비정산을 두고 잡음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흥회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불투명한 예산 운용이 지적돼 상급기관 감사와 사법기관 조사를 받았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 지난 13일 만난 진흥회 관계자는 "군은 민간 예술활동 지원만 하고 개입해선 안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문화재단은 여전히 신뢰하지 못한다. 연극제가 둘로 나뉜 발단도 불투명한 예산 탓이라고 지적한다. 연극제 개최를 두고 마지막까지 합의점을 찾지 못한 지점도 이 부분이라고 말했다.

올해 폐단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거창군은 연극제가 폐막하기도 전인 지난 11일 복안을 냈다. 지역 시민사회단체, 언론인, 예술인 등을 아우르는 범군민 협의기구인 '혁신위원회'를 발족하기로 한 것. 연극제 발전방안, 존폐, 통합 등 모든 여지를 논의할 예정이다.

◇연극제처럼 쪼개진 군민 시각

폐막 당일 만난 군민 대다수는 하나로 합친 축제를 원했다. 문화재단과 진흥회 양측이 피해 없도록 원만하게 합의하기를 요구했다. 때론 '밥그릇 싸움'이라며 싸잡아 비난하기도 했다. 개중에 생각이 나뉜 군민도 있었다.

거창읍에서 온 50대 주민은 "국제연극제 덕분에 수승대도 알려지지 않았느냐. 문화활동은 행정적 지원이 바탕이 돼야 한다. 지원을 않는다는 건 다 같이 죽자는 거 아니냐"며 기존에 해오던 진흥회 측에서 하나의 연극제를 주최하기를 바랐다.

반면 80대 노모와 함께 관람 온 군민은 "진흥회에 대해 믿음이 무너졌다. 세금으로 치르는 행사는 투명성이 그만큼 중요하다. 어쨌든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말이 계속 나오지 않았겠느냐"며 군에서 행사를 주도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방향을 제안하는 군민도 있었다.

60대 후반 어르신은 "한 번 헝클어진 실타래는 풀기 힘들다. 군을 위한 발전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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