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에게 가혹한 복장 기준 배경은
성희롱·성폭력 연결 부적절한 관점

시민단체의 장으로 있는 지인이 며칠 전 직원들의 복장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젊은 직원들이 직장에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와서 이것을 지적했더니 어떤 옷이 직장에 맞는 옷이냐고 물어보더란다. 그래서 '짧은 치마, 가슴이 보이는 옷, 찢어진 청바지, 어깨가 드러나는 민소매'는 입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 특히, 사람을 대하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복장은 상대를 불편하지 않게 하기 위한 일종의 에티켓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지인이 한 대답은 다소 의아했다. "복장에 대한 규제가 왜 필요하다고 생각하느냐? 그 기준이 지나치게 본인의 관점을 반영했다고 생각하지 않느냐?" 서로 살짝 마음이 상하는 말들을 주고받으면서 우리 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너무나 자연스러운 복장 규제에 대해 새삼 생각해보게 되었다.

여성 직장인에 대한 복장 규제는 사실 특별한 일이 아니라 늘 있었고 현재도 어디선가 이루어지고 있다. 2013년 아시아나항공이 여성 승무원들의 바지 착용을 금지하여 인권위로부터 시정 권고 조치를 받은 적이 있으며, 얼마 전에는 한 증권사가 사내 게시판에 직원들의 '정장 드레스코드'를 공지해 문제가 되었다. 이 증권사의 '여직원 정장 드레스코드'에는 정장 스타일·머리·치마·화장·매니큐어 등 10개 항목, 19개의 준수사항이 제시되어 있었다. 물론 증권사에서는 "2010년 유니폼에서 정장 착용으로 바뀔 당시 만든 복장 규정을 재공지한 것으로 권고사항일 뿐 강제성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그것을 재공지하는 것 자체가 압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평가를 받아야 하는 직원들은 그러한 공지에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런데 복장에 대한 규제는 왜 유독 여성에게만 가혹한 것일까? 유독 여성에게 가혹한 복장 규제에는 기본적인 성차별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사회에서 여성은 보이는 대상으로 인식되어 왔고 노동현장에서 역시 여성은 노동자로서 직무 능력이 아니라 외모나 복장 등으로 인식됐다. 이러한 뿌리깊은 성차별적 관행과 문화가 여성의 복장규제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다. 여성의 옷에 대한 규제는 남성의 시선을 전제하고 있다. 소위 말해 남자들이 볼 때 너무 야해 보이지 않는 옷차림, 소위 말하는 단정한 옷차림이 좋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여성의 적절하지 않은 복장(누구의 기준인지 알 수 없지만)이 남성의 노골적인 시선을 유도하고 성희롱과 성폭력의 대상이 되도록 한다는 우려도 포함되어 있다. 결국, 이러한 인식은 여성의 복장과 성희롱, 성폭력을 고스란히 연결시키는 매우 부적절한 관점의 반영인 것이다.

나아가 여성에 대한 복장규제는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합당하고 보편적인 기준이 아니라 복장을 규제하는 주체인 리더 또는 관리자 개인의 관점과 취향을 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문제가 있다. 어깨가 드러나는 민소매를 입지 못하게 하는 지인의 관점은 어깨를 드러내는 것이 야하다고 느끼는 그 사람의 관점이 반영된 것이다. 결국 리더 또는 관리자가 보기에 불편한 옷이 규제의 대상이 되는 이상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한 증권사의 정장 드레스 코드 역시 너무나 세세해 매우 객관적인 지침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기준 자체가 상당히 주관적이고 성차별적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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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노타이는 그들의 불편함을 배려하면서 바뀐 문화다. 왜 이런 문화가 여성에게는 유연하게 적용되지 못하는 것일까? 직장인들은 충분히 보편적 사고를 할 수 있는 성인이다. 복장은 직장 생활에 피해를 주지 않고 활동하기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유지되어야 하는 하나의 매너이다. 이것이 규제와 통제의 대상이 된다면 누군가에게 매너는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한 번쯤 생각해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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