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만에 중단된 '대한민국 출산지도'…가임 여성 수 지역별 순위 매겨 '황당'

지난해를 돌이켜보면 "국가는 과연 국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인가?"에 대한 끝없는 의문과 분노의 연속이었다. 그러한 의문과 분노는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까지 이어졌다. 12월 29일 행정자치부는 지자체의 출산 통계와 출산지원 서비스를 한눈에 볼 수 있는 '대한민국 출산지도' 서비스를 시작했다. 시작하자마자 하루 만에 서비스는 중단되었지만 대체 이런 일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의문스럽다.

마치 영업사원의 실적 그래프처럼 가임기 여성 수를 지역별로 구분하고 순위까지 매긴 것을 보면서 대체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해야 할까? '내가 가임기임에도 출산을 태만히 하여 우리 지역의 출산율을 낮추었구나' 반성해야 하는 것인가? '올해는 분발해서 우리 지역의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최대의 노력을 다해야겠다'는 다짐을 해야 하는 것인가?

행정자치부의 이 같은 서비스에 대해 많은 여성은 "여자가 애 낳는 기계냐", "가임 여성이 지역 특산물이냐", "아이 낳을 계획이 없는 나는 살처분이라도 당하게 되는 거냐"는 자조 섞인 비판을 쏟아냈다. "일베에서 나온 지도인 줄 알았다"는 한 네티즌의 글은 이 서비스를 보는 여성들의 황당함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국가가 국민을 모욕하는 방법도 참 다양하다.

출산지도에 가임기 여성의 수를 표기하는 것은 출산을 여성의 문제로 국한해서 보는 발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 '낳지 않음' 그 자체에 주목한 것이다. 출산은 여성들의 '선택'이 아니라, 그냥 해야 하는 '의무'로 인식한 것이다. 가임 여성들이 아이를 낳으면 저출산은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본 너무나 안이한 정부의 인식이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정책을 생산하게 된 것이다.

여성은 아이를 낳는 도구가 아니라 인격을 가진 사람이다. 임신과 출산, 육아에 대한 여성들의 생각은 개인을 둘러싼 사회·경제적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여성들 각자에게는 자신만의 성적 지향과 정체성이 있고 연애관과 결혼관, 삶의 가치와 지향이 다르다. 이를 완전히 무시한 채 생리를 시작했을 것으로 예상하는 시점부터 완경기 이전이라고 생각되는 15~49세의 연령을 가임여성으로 산정하고, 여성의 신체를 인구 증가를 위한 수단이자 도구로 간주하는 정부의 이 차별적이고 폭력적인 사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저출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이며, 이는 가임여성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책임의 영역이다. 저출산은 단순히 학력이 높아진 이기적인 여성들이 자기 혼자 잘살자고 아이를 안 낳는 문제가 아니다. 청년들의 불안한 고용과 실업은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게 하고 결혼을 했다 하더라도 엄청난 양육 부담과 교육비 부담, 여성의 경력단절, 성차별적 노동 환경은 출산을 어렵게 한다. 결국 출산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적 문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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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기준 우리나라의 출산율은 1.24로, 세계 최하위 수준이다. 출산율은 가임기 여성의 숫자를 보여준다고 올라가지 않는다. 프랑스와 스웨덴 등은 출산율과 여성의 취업률이 동시에 높은 국가이다. 국가가 육아휴직, 유연 근무, 공동육아, 남성의 육아 참여 등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일·가정 양립을 위한 기본적 제도를 마련하지 않는다면 출산율은 상승하기 어렵다.

아이를 낳고 기르기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정책을 시행하는 일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이다. 그것을 하지 않은 채 여성을 아이 낳는 도구와 수단으로 인식하는 사회에서 여성들은 아이를 낳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올해는 국가가 국민을 존중하고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를 다하는 모습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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