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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세상이 엄마로 다 잠길 텐데

대통령 '세월호 7시간'행적 은폐 1000일…파렴치 앞에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슬픔

김륭 시인 webmaster@idomin.com 2017년 01월 11일 수요일

세월호 참사로부터 1000일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세월호는 차디찬 바닷속에 그대로 있고, 가족들은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다. 무려 1000일 동안이다. 이 지구 땅에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나라가 또 있을까. 여기에다 박근혜 대통령의 세월호 7시간 의혹까지 떠올린다면 지나가는 개라도 한마디쯤은 하지 않을까. 이게 무슨 나라냐고 말이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했으니 대략 오후 3시쯤이 골든타임이 끝나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드러난 거의 유일한 박 대통령 행적은 오후 3시가 넘어서야, 3시 20분쯤 머리 손질을 했다는 것. 그 중요한 골든타임이 지나가는데 대면보고, 또는 박 대통령 주재 회의 없이 시간을 흘려보냈다는 얘기가 된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박 대통령 측은 세월호 참사로부터 1000일, 헌법재판소가 참사당일 7시간 행적을 구체적으로 밝히라고 요구한 지 19일 만인 10일에야 관련 자료를 제출한다. 고작 7시간의 행적을 밝히는 데 1000일이라니. 이쯤 되면 참사 당일의 이른바 밀회설, 굿판설, 미용 시술설 따위가 무슨 의미인가. 지금까지 매번 바뀌어온 그날의 행적(세 차례 발표한 대통령 행적)과 청와대의 은폐 의혹을 보여주는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업무 다이어리 하나면 진실은 족하질 않은가. 국민의 생명권 보호 의무를 위반했다는 탄핵사유를 입증할 증거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말이다.

벌써 1000일이 지났다. "그날 정상적으로 이 참사, 이 사건이 터졌다 하는 것을 보고 받으면서 계속 그것을 체크를 하고 있었다"고 말하는 박 대통령의 입으로부터 1000일, 그동안 예은(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단원고 2학년 3반 유예은 학생)이 가족들의 슬픔은 어떻게 변했을까. 아직 아들딸들의 시신을 세월호 선체 안에 둔 가족들의 슬픔은 또 어떻게 말할 수 있을까.

"예은아 거기서도 들리니? 아빠의 목소리가"/ "얘들아, 어서 벗자 이건 너희들이 입기엔 너무 사이즈가 큰 슬픔이다"(진은영, '천칭자리 위에서 스무 살이 된 예은에게' 중에서). 그렇다. 꽃다운 나이엔 '너무 사이즈가 큰 슬픔'이다. 그리하여 이 큰 슬픔 앞에선 "슬픔은 가장 사랑스런 보석일 거요"라고 셰익스피어가 <리어왕>을 통해 꺼낸 문장도 개소리에 불과할지 모른다. 제아무리 "모든 사람이 그리 아름답게 슬픔을 착용한다면"이란 문학적 은유가 전제로 붙어 있다한들 가족들 입장에서 보면 그럴 수밖에 없질 않겠는가. 세상이 무너지는 슬픔이란 이런 것이다.

"엄마들은 자식이 죽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 순간 한 순간에 세상이 무너질까 봐/ 그 자리에 곧바로 무너지듯 털썩 주저앉는다./ 지구가 땅속 깊은 곳에서부터 폭발해 터져나오려는/ 그 순간 그 자리를 틀어막듯 주저앉는다.// 단 한 걸음도 더 내딛지 못할 순간이 왔다./ 단 한 방울도 남김없이 온 힘이 빠져나간 순간이 왔다./ 이제 어떡하나, 엄마들 가슴 한가운데 난 구멍을./ 당장 막지 않으면 금세 금가고 갈라져 댐이 툭 터지듯/ 한 순간 무너져내릴 텐데, 세상이 엄마로 다 잠길 텐데./ 세상 모든 사람들 물살에 무릎이 부러지고/ 막지 못한 얼굴의 모든 구멍에서 온몸이 줄줄 다 흘러나올 텐데.// 이렇게 오랫동안 기적을 기다리며/ 매순간 무너지려는 길의 틈새를/ 매순간 무너지려는 공중의 틈새를/ 천지사방을 이 시간을 온몸으로 막으려/ 죽어서도 그들은 여기에 서 있다."(김중일, '매일 무너지려는 세상'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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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참사로부터 1000일이 지났다. 그러나 아직도 대통령과 청와대 책임은 없다고 입을 놀리는 파렴치한 인간들이 권력을 쥔, 이게 어떻게 나라인가. 해서, 두고두고 기억해야 할 슬픔이다. "예은아, 진실과 영혼은 너무 가볍구나/ 거짓됨에 비해,/ 진실과 영혼은 너무 가볍구나/ 모시옷처럼/ 등 뒤에 돋는 날개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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