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지사 막말에 공분보다 측은함 들어…사람 먼저 생각 않는 부·권력은 허구

이른 아침 산책길에 달맞이꽃을 보았다. 건축현장 폐자재와 돌덩이들이 수북이 쌓여 있는 빈터. 그곳에서도 노란 달맞이꽃들이 환하게 웃고 있었다. 밤새 어둠 밝히며 저렇게 피어있었구나. 참으로 곱고 환하다. 걸음 멈춰 서서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그래, 척박한 땅에 피는 저꽃이 바로 민중이지. 쓰레기더미에도 달맞이꽃은 피는구나! 그러니 함부로 '쓰레기' 운운하면 안 되지! 에구, 우리의 도지사님을 이 자리에 모셔서 같이 꽃구경하자고 할거나. 달을 보라고 했더니 가리키는 손가락만 본다더니, 혹시 도지사님이 바로 그런 분인가? 꽃을 보라고 했더니 쓰레기만 보는 도지사님이야말로 정말 쓰레기가 아닐까?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가 나누었다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어느 날 태조가 요즘 말로 야자타임을 하며 놀자고 제안하면서 대사에게 한 마디 건넨다. "대사는 아무리 보아도 꼭 돼지처럼 생겼구려!" 이에 대사가 맞받아 답한다. "그렇습니까. 소승이 보기에 대왕께서는 꼭 부처님처럼 생기셨습니다." 태조가 "아니 지금 농담하며 놀자는데 그렇게 좋은 말만 하면 재미없지요"하며 타박하니, 대사가 다시 받아 "송구하오나 돼지의 눈으로 보면 돼지만 보이고 부처의 눈으로 보면 부처만 보이는 것이 세상 이치입니다"고 말한다.

나는 "민중은 개돼지" 발언으로 파면당한 교육부의 고위관료나, "개가 짖어도 기차는 간다"고 비아냥거리는 경남도지사에게 공분을 느끼기보다는 오히려 측은하고 안쓰럽다는 마음이 먼저 든다. 그들도 한국사회가 낳은, 더 좁게 보면 경상남도 지역사회가 낳은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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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 12일 오후 경남도의회 앞에서 홍준표 경남도지사 사퇴촉구 농성을 하고 있던 여영국 경남도의회 의원이 본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도착하고 있는 홍준표 지사에게 "지사님 이제 결단하시죠" 라고 말하자 홍지사는 "2년간 단식해봐, 2년. 2년 후에는 나갈테니. 쓰레기가 단식한다"고 했다. / 경남도민일보DB

나도 저들과 함께 같은 땅 밟고, 같은 하늘 바라보면서 저들의 일그러진 욕망을 부추기며 살아오지 않았는지 성찰하게 된다. 오직 앞만 보고 성공 가도를 향해 달리다가 하루아침에 철퇴 맞은 '한 사람'의 젊은 관료를 생각하니 마음이 짠하다. 개천에서 용이 된 도지사의 권력을 향한 저 무한질주가 왠지 불안하기만 하다. 권불십년 화무십일홍(權不十年 花無十日紅)이라 했건만.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하다. 나도 그 '한 사람'이다. 누가 나더러 개돼지라고 무시하고, 쓰레기라고 폄하해도 나는 참으로 소중한 '한 사람'이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은 불완전한 존재다. 그것도 '완벽하게' 불완전한 존재다. 그래서 조금만 방심하면 실수도 하고, 한순간에 밑바닥 드러내며 망가질 수도 있다.

돌이켜보니 나도 내 신념과 가치, 옳다는 고정관념에 집착한 나머지 말로써 사람을 죽이는 실수도 많이 했다. 또 더러는 무지와 욕망과 허영에 들떠 부끄러운 속내 다 드러내 보인 처절한 순간도 있었다.

세상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다고 했던가. 나는 나를 먼저 바꾸고 싶었다. 그래서 3000배 수련이나 단식을 여러 번 하면서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만 했다. 땀과 눈물로써 온몸 적시며 새벽을 맞이하던 그 암자의 법고소리는 망가진 내 영혼과 자존감을 회복시켜주었다. 그즈음 나는 "한 사람이 영적으로 성장하면 온 세계가 성장한다"는 간디 선생의 말씀을 가슴 깊이 품었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늘 이렇게 호소한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정말 '소중한 사람'입니다. 세상의 그 어떤 가치와 철학보다도 '사람이 먼저'라는 가치를 가슴 깊이 새기십시오. 여러분은 앞으로 돈 많은 부자가 될 수도 있고 권력과 명예를 누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디 여러분은 그 돈과 권력과 명예로써 사람을 짓밟거나 무시하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사람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 그 어떤 부와 권력과 명예도 다 거짓이며 허구입니다. 사람을 무시하면서 부와 권력과 명예를 얻느니 차라리 '위대한 평민'으로 사는 게 백번 낫습니다. 여러분이 이 가치를 분명히 깨닫고 실천한다면, 그때 비로소 여러분들은 진정한 성공을 이룬 것이며, 진정한 행복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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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 나는 지천으로 피어 있는 달맞이꽃 한 아름 꺾어 지금 단식 중인 여영국 도의원에게 안겨드리고 싶다.

"고맙습니다. 당신은 우리들 잠자는 영혼을 깨우는 달맞이꽃입니다. 쉽고 편안하게 살지 못하는 당신이 곧 저 자신입니다. 당신을 많이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우리 함께 힘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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