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은 이름 '갱팔 행님'

내 이름 가운데 '경' 자가 들어 있다. 친한 후배가 그 뒤에 '팔' 자를 붙여 이명(異名)을 만들어 줬는데, 남부 방언의 특징인 움라우트(umlaut·모음 역행동화) 탓인지 '갱팔'이라 부른다. 이름에 '팔' 자가 들어가면 촌스럽거나 상스럽게 들리지만 왠지 싫지 않다. 내 이미지와 반대인 이명, 그 이름을 들으면 혈액형이 A형에서 O형으로 바뀐다. 나를 세상으로 이끌어 내는 이름, 날 선 검처럼 서늘한 냉기가 돌아 감히 다가서지 못하던 후배들이 소주 한 잔 하고 나면 불러 주던 '갱팔 행님'이란 호칭이 좋다. 심지어 아내와 여자 후배들마저 '갱팔 오빠'라고 불러 대는데 그 성조가 아주 매력적이다.

어릴 때는 내 이름이 너무 가볍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쓸데없이 무게를 잡곤 했는데 목에 힘주는 버릇이 그 때부터 생긴 것 같다. 요즘 자동차 뒤에 남자와 여자의 이름 이니셜 사이에 하트표를 붙이고 다니는 것을 자주 볼 수 있다. 심지어 산에 가면 바위에 이런 짓을 해 놓은 인간들도 있다. 가운데 하트표를 해골 바가지로 바꿔놓고 싶다. 어쨌든 이름이란 살아 있을 때는 존재를, 죽어서는 업적을 찾아가는 열쇠와도 같은 것이다. 이름이 운명을 좌우한다고 믿던 시절, 이름값을 하기 위해 나는 늘 예의 바른 젊은이였고 선생이 내 숙명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늘그막에 이름대로 살고 있지만 중국에서는 '갱팔 행님'이라 불러 줄 가까운 이들이 없어 무척 서운하다. 호칭도 사람의 관계나 거리에 따라 달라지는데 여기선 '갱팔 형님'은커녕 내 이름 석 자 제대로 발음하는 사람도 드물다. 수년 전에 모 문예지에 '이름'이란 시를 발표한 적이 있는데 공자님 말씀까지 인용한 내 이름의 역사와 의미를 담은 시다.

내가 태어나던 해 할아버지 돌아가셨다/ 일면식一面識 인연 없었지만/ 평생 달고 살 이름 석 자 주고 가셨다/ 첫 글자는 아버지를 따라 가문에 매이고/ 마지막 글자는 형제를 따라 항렬行列에 묶이고/ 가운데 글자 하나 나를 위한 의미로 남았다/ 공자의 제자 자로子路가 군자君子에 대해 물었다/ 공자는 이를 '경敬으로 몸을 닦는 존재'라 답했다/ '경敬'이란, 마음을 다른데 뺏기지 않고/ 하나에 몰두해 깊이 침잠沈潛하는 것/ 늘 깨어있는 정신이다/ 듣기는 가벼운 글자/ 되새길수록 무거워지는 이름 때문에/ 깊이 생각하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백로白露에 선산先山 오른다/ 할아버지 무덤 상석床石에 핀 하얀 은하수/ 내 이름 가운데 글자로 흘러간다/ 그 이름 닦으며 천하의 사람 편하게 하는/ 군자의 길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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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갱팔 행님'으로 살고 싶다. 고고한 운명으로 덧씌워진 이름보다 막걸리 집 노가리 안주처럼 비틀어 놓은 이름이 더 좋다. 33년 동안 넥타이를 매고 살았다. 이름은 없고 늘 직함만 따라다녔다. 위선도 오래되면 진짜 이미지로 굳어지는 법. 내가 듣고 싶은 진짜 이름은 '갱팔'이다. 

/김경식(시인·중국 하북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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