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틈 없이 분주한 우리네 일상, 잠시만이라도 다 놓고 떠나보길

조석으로 바람이 소슬하다. 유난히도 무더웠던 올여름 더위가 이제는 한풀 꺾인 것 같다. 마지막 늦더위의 기승이 없지는 않겠지만 숲속 사이로 매미 우는 소리는 탁해지고 간간이 밤늦도록 풀벌레 우는 소리가 제법 청아한 것이 영락없는 초가을 정경이다. 삼복(三伏)이 지나고 처서(處暑)가 지났으니 당연한 절기의 수순이다. 본디 삼복(三伏)의 뜻은 극양(極陽)의 기세에 극도로 움츠렸던 음기(陰氣)가 양(陽)의 세력에 저항하다가 힘에 부쳐 항복하기를 세 번을 한다고 해서 초복과 중복과 말복이 있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음기가 세 번을 항거하여 부딪친 결과 마침내 극양의 양기에 균열이 생겨서 그 틈으로 조금씩 음기운이 힘을 타면서 가을로 들어선다는 것이다. 천지자연이 참 용하다.

이제 초가을의 문턱에서 여름내 지쳤던 몸도 추스르고 잠시 풀어 놓았던 정신줄도 챙겨서 생기있는 일상으로의 복귀가 필요한 때다. 벌써 을미년 한 해의 절반을 훌쩍 지났다. 연초 꿈에 부풀어 계획했던 일들은 어떻게 되고 있는지도 돌아볼 때다. 우리가 매사를 목표 지향적으로만 분주하게 살아야 할 이유는 없다. 또 설정한 목표가 있다 하더라도 지금 처한 처지와 형편에 맞게 바꾸고 조절할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 내가 누리는 삶이 이유없이 지루하거나 어떤 존재감을 주지 못한다면 그것은 생각해 볼 문제다.

도대체 사람이 사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누구일까? 어떻게 살아야 괜찮은 삶이 될까? 시시때때로 삶이 공허하고 막막하게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감상일까? 다른 사람들은 다 행복할까? 그렇지 않다면 저들의 얼굴에 환한 웃음은 다 무엇일까? TV에 비친 나라 안팎의 소식들은 왜 우울한 일들이 이리 많을까? 일에 치여 사는 사람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이지만 여유가 있다면 시간을 내어 인근의 둘레길 산행이라도 권하고 싶다. 아니, 일이 바쁜 사람들도 생사가 걸릴 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일손을 잠시 접어놓고 절기의 변화를 느끼면서 잠시 휴식의 시간을 갖기를 권한다.

당신은 산과 들을 한가롭게 걸어본 적이 있는가? 마음 편하게 하늘을 바라본 지는 얼마 만인가? 무심하게 불어오는 바람결에 살아있음을 느껴 본 적이 있는가? 길가에 버려진 듯 피어난 이름없는 야생화에 가슴 설레 본 적이 있는가? 마음이란 참으로 신기해서 자기 일상의 복잡함으로부터 멀어지면 저 스스로 뿌듯하게 채워지는 영물(靈物)이다. 그래서 여행이 좋다. 잠시 일탈이라도 좋다. 벗어남의 해방감이나 여유로움이 좋다. 그 마음이 보배다.

누군가 당신은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할 수 있는가? 그게 어떤 답이든 그 대답은 정말 진실한 것인가? 내가 우리가 쉴 틈도 없이 분주하게 일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물질의 풍요가 잠시 내 마음을 위로할 수는 있어도 지속적으로 나를 채워줄 수는 없다. 주위의 인연들이 나를 뿌듯하게 할 수는 있어도 여전히 채워지지 않는 삶의 의문은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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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재 스스로가 삶의 이유가 되고 막힌 가슴을 뚫어주는 희열의 이유가 될 수는 없을까? 내 존재감은 밖이 아니라 문득 자신의 깊은 심연(深淵)으로부터 온다. 일상의 해방으로부터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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