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무더워진 날씨만큼이나 수험생들이 유난히 지치고 힘들어하는 시기다. 몇 해 연속해서 3학년을 맡다 보니 데자뷔(기시감)처럼 유사한 시기에 유사한 상황을 겪는다. 나에겐 워낙 익숙한 분위기라 언제부턴가 '6월의 고비'를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나 보다.

교무실에서 무료하게 업무를 보고 있는 토요 자습일이었다. 옆자리에서 자기 반 학생과 이야기를 나누던 동료 교사가 열심히 하는 학생이라며 인사를 시키길래 무심히 '공부 잘 하고 있지?'라는 말을 던지고는 이내 아차 싶었다. 아니나 다를까, 목이 멘 채 말소리를 삼키는 그 학생의 두 눈에는 이미 눈물이 그렁그렁 차 오르고 있었다. 아이구나, 이거 아마추어도 아닌데 6월의 금기어 '공부', '잘', '하나' 세 단어를 착실히도 잘 읊조리다니. 금방 후회가 되었다.

얘들아, 지금이 얼마나 불안한 시기인지 말하지 않아도 너무도 잘 안다. 아니 안다고 생각했다는 표현이 정확하겠구나. 그래, 선생님이 좀 무디어졌나보다. 해마다 여고생을 만나고 그들의 비슷비슷한 이야기를 들어왔기 때문이라는 변명은 내가 생각해도 궁색하기 짝이 없구나. 어느 때부터인가 너희들의 고민이 나에게는 유형별로 분류 가능한 그리고 데이터화, 객관화할 수 있는 수많은 사례 중 하나가 되어 가고 있었나봐. 정작 당사자들에게는 분류하거나 일반화할 수 없는 절대적이며 유일한 고민이라는 것을 잠시나마 잊고 있었던 거지. 미안하다는 말조차 부끄럽구나.

그래, 지금 너희들은 그럴 거야. 마치 대입을 위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고, 그런 압박감에 비해 너무도 자신이 작고 부족하게 느껴질 거야. 심지어 자신이 무엇을 바라며 공부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 휩싸여 당혹스럽기도 할 거야. 때론 이유 없이 눈물이 흐르다가도 그런 자신에게 화가 치밀 테고, 그러면서 괜스레 무더운 날씨 탓도 해 보겠지. 하지만, 그건 날씨 탓도 아니고 더더구나 스스로를 자책할 일도 아니란다.

난생처음으로 겪을 선택의 기로에서 너희들의 불안과 스트레스는 너무도 당연한 거니까.

3월의 긴장감, 4월의 두려움과 기대감으로 치른 한 번의 내신 시험, 5월이 되어서야 겨우 익숙함으로 한숨 돌리기도 전에 이제 3년의 내신을 마무리할 기말고사를 앞둔 6월. 그 6월의 어느 날 무심히 던진 질문 한 마디로도 불안과 설움이 쏟아져 나와 버리는 너희를 바라보는 내 마음도 먹먹해져 온다. 나 역시 그 시기를 지나왔지만 정답은 없는 것 같다. 수도 없이 들어왔을 최선을 다하란 말보다는 오늘은 그저 '괜찮아'라고 토닥토닥해주고 싶구나.

조금 더 너그럽게 자신을 사랑해 주는 시간을 가져 보는 건 어떨까? 오늘따라 가끔 현대시 시간에 들려주곤 했던 '마야'의 '나를 외치다'라는 노랫말이 떠오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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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약해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뒤처지면 안 된다는 말 대신 지금 이 순간 끝이 아니라 너의 길을 가고 있다고 외치면 돼."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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