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몇 가지를 꼽자면, 여권·돈·카메라·휴대전화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중 하나라도 잃어버린다면 대공황을 맞게 될 것이다.

평소 물건을 잘 잃어버려 항상 가방을 몸에서 떼어 놓지 않았던 내가 그 중요한 물건 중 하나를 잃어버리고 말았다. 올해 1월 회사 워크숍을 위해 싱가포르로 출장을 갔는데 직장동료들과 술을 마시다 마지막에 들렀던 장소에 가방을 두고 오고만 것이다. 다행히 가방 안에 여권과 돈은 없었다. 하지만 내 여행을 가이드해 주고 카메라 역할까지 해 줄 스마트폰이 그 안에 있었다. 가히 절망적이었다. 평소 찍어두었던 사진들이며 앞으로 찍을 사진들을 생각해보니 눈 앞이 캄캄했다. 따로 저장해둔 것도 없는데 그간의 추억들이 다 날아가 버린 것만 같아 괜스레 슬퍼졌다. 내일 당장 발리로 떠날 예정인데 앞으로의 추억들은 어떻게 담을 것이며 여행 정보들도 스마트폰으로 찾아야 하는데 길 잃은 어린 양처럼 어떻게 해야할지 도무지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나라에서 잃어버렸다면 어떻게든 수소문해서 찾아봤겠지만 해외에 나와서 잃어버리니 내가 갔던 장소도 정확히 모르겠고 가게 이름은 당연히 유심히 봐두지 않아서 기억도 나지 않았다. 지난밤 늦게까지 함께했던 동료들을 찾아 알아보려 했지만 이 또한 되지 않았다. 그 누구도 우리가 갔던 가게 이름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실낱같은 희망은 있었다. 지난밤 우리를 인도한 싱가포르 영업팀장이었다. 하지만 지난밤 이후로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내 휴대전화에 시간이 날 때마다 전화를 걸어보았지만 신호만 갈 뿐 전화를 받는 사람은 없었다. 마음이 점점 불안초조해졌다. 휴대전화를 여러 번 잃어본 사람으로서 상상되는 시나리오는 두 가지이다. 누군가 습득해서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는다거나 사람들이 찾지 못하는 어딘가에 떨어져 있다거나. 둘다 좋은 시나리오는 아니지만 싱가포르 사람들은 정직할 거라고 믿고 누군가 발견했다면 어딘가에 고이 모셔뒀을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싱가포르 영업팀장도 보이지 않고 잃어버린 곳이 술집이니 저녁이 되기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 기다리던 하루가 얼마나 천천히 가던지 1분이 1시간 같았다. 마침내 하루 일정이 끝나고 저녁시간이 되자 저녁행사를 위해 삼삼오오 호텔 로비로 내려왔다. 그리고 그곳에는 내가 기다리던 나의 구세주 영업팀장이 있었다. 하지만 그가 아는 거라곤 건물 이름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인터넷의 도움을 빌려 구글맵으로 가게 이름을 찾아냈고 그 정보로 어제 갔던 가게를 찾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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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가게안으로 들어갔고 나는 그곳에서 애타게 찾던 나의 가방을 받을 수 있었다. 그들은 안전한 곳에 내 가방을 보관해 두었고 그 속에 나의 스마트폰도 그대로 있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세상을 다 가진 기분이 들었다. 나는 다시 찾은 스마트폰 덕분에 동료들의 축하를 받으며 마지막 싱가포르의 밤을 축제 분위기로 즐길 수 있었고 남은 발리 일정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초조했던 그 하루의 시간을 생각하면 끔찍하지만 끝이 좋으면 다 좋다고 두고두고 생각날 좋은 추억거리일 것 같다. 

/김신형(김해시 장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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