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다면…교육 정치 종교 무슨 가치 있나

지사님, 저는 작은 산골 마을에서 농사지으며 살아가는 농부입니다. 가만히 뒤돌아보니 농부가 된 지 벌써 11년이나 지났습니다. 하지만 농부 나이로 겨우 열한 살이라 아직 배우고 깨달을 게 더 많습니다. 자연의 순리에 따라야 하는 농사일은 한평생 배우고 깨달아도 모자랄 만큼 놀랍고 신비스럽습니다. 사람은 스승의 스승인 자연 앞에 머리를 숙일 수밖에 없다는 걸 농부가 되고서야 깨달았습니다.

며칠 전에 산밭에 거름을 뿌리고 괭이질을 하는데 모기처럼 생긴 깔따구가 떼를 지어 나타나 얼굴과 목을 물어 퉁퉁 부었습니다. 지나가던 할머니가 제 꼴을 보고는 말씀하셨습니다.

"시상(세상)이 미처 날뛰니까 이른 봄부터 깔따구까지 미쳐 날뛰고 지랄이요. 언제부터 우리나라가 아이들 점심 한 끼도 못 맥이는 그리 불쌍한 나라가 되었소. 우리 집 옆에 귀농한 젊은 부부가 있는데 핵교 댕기는 아이가 셋이오. 아이들이 없어 문 닫아야 할 핵교들이 귀농한 젊은 부부들 덕에 문 안 닫고 있다고 하요. 얼매나 다행한 일이오. 핵교가 있어야 사람이 사는 거 같지요. 그렇게 귀한 젊은 부부들이 아이들 밥값이 부담스럽다고 다시 도시로 가야겠다고 야단이오, 남의 논밭 빌려 농사지어 먹고사는 것도 빠듯한데 밥값까지 우찌 내겠소. 산골 마을에 수십 년 만에 젊은 부부가 찾아와 애기 우는 소리도 들리고 해서 사람 살맛이 나는데, 유상급식이니 뭣이니 하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으니 우짜모 좋겠소."

지사님은 요즘 어찌 지내시는지요? 오늘 점심밥은 맛있게 드셨는지요? 사람은 밥 한 그릇에 기대어 사는 것이지요. 요즘 주위에서 어떤 말씀을 듣고 사시는지요? 아침에 컴퓨터를 열어 보니 아고라 뉴스 경제 토론방에 이런 글이 올라와 있더군요.

"진주의료원 폐쇄조치 하면서 늙고 병든 중병환자들 거리로 내쫓아서 수십 명 죽음에 이르게 만든 경남지사 홍준표! 수많은 국민들 그리고 복지확대를 위해서 진정성을 가지고 자라는 아이들 밥 한 끼만은 먹이겠다고 보편적 복지를 확대해 왔던 모든 국민들 등지고 전국 자치단체장 중에서 경상남도만 유일하게 자라는 아이들 밥 한 끼도 세금 아까워 못 먹이겠다는 천하에 매국노적인 경남지사 홍준표!"

이런 글 말고도 "미국 출장 중 접대골프 의혹 홍준표, 이번엔 금품 수수 의혹" "성완종 1억 수수 의혹 홍준표 지사, 고발당해"와 같은 글이 지사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무엇보다 이런 기사와 뉴스를 자라나는 우리 아이들이 읽고 들으면 어른들을 어찌 생각할까 싶어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조금이라도 덜 부끄럽게 살려고 귀농한 젊은 농부들은 대부분 사람과 자연을 괴롭히거나 죽이는 독한 농약과 화학비료와 비닐 들을 쓰지 않고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강과 바다를 살리기 위해 수세식 변기에 똥오줌조차 버리지 않고 '생태뒷간'을 지어 식구들이 눈 똥오줌을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흙으로 돌려주고 있습니다.

이 모두 자라나는 아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 앞에 서면 조금이라도 덜 부끄러워지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없으면 학교도, 교실도, 운동장도, 놀이터도, 교사도, 교육감도, 도지사도, 국회의원도, 장관도, 대통령도, 성직자와 수도자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더구나 아이들이 살아 있어도 아이들이 행복하지 않으면 교육이니 정치니 종교니 하는 것들이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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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지사님과 지사님 뜻을 따르는 분들에게 이 글을 씁니다. 간절히 바라건대 가난한 아이나 부유한 아이나 어느 누구도 기죽지 않고 함께 웃으며 밥 한 끼 먹을 수 있도록, 아이들의 밥상을 제자리로 돌려놓아주시기를…. 어른의 아버지고 스승인 아이들 앞에 서면 덜 부끄럽도록 말입니다. 슬기롭고 자랑스런 지사님의 맑은 얼굴을 언제쯤 다시 뵐 수 있을까요? 그날을 애써 기다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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