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상 위 일력이 얄팍해졌다. 겨우 한 달 보름여 시간만 남은 올해 일력은 균형 잡고 서있기도 위태할 만큼 궁색해 보인다. 1년 치 365장을 품었던 당당함은 간 데 없다.

벌써 이른 송년회를 알리는 문자가 날아오고 가끔 바람이라도 몰아치면 나무들은 봄, 여름, 가을의 시간을 함께했던 잎들을 아낌없이 땅으로 떨구어낸다. 한 해의 가장 많은 잎이 진 어느 11월의 하루, 가만히 한 장 한 장 일력으로 떨어져 나간 시간을 헤아려보게 된다.

'영원히 살 것처럼 살다가 단 한순간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허무하게 죽는 것'이 신이 인간에게 가장 신기해하는 것 중 하나라는 시를 읽고 크게 공감했던 적이 있다. 나의 삶도 영원히 살 것 같이 옆도 뒤도 돌아보지 않은 분주함의 연속이었다.

시간에 쫓겨 총총히 걸음을 옮기고 내비게이션 도움으로 과속 운전을 하며 일력을 채웠다. 다문화도서관 운영실장이라는 직책을 맡아 도서관 재정 안정화에 힘쓰고, 매일 이어지는 강의와 마감 시간에 쫓겨 원고를 쓰는 일상 속에서 아들이 입대해 일병이 되었고 기억에 남는 여러 사람과 특별한 만남도 있었다.

내년에는 쉰 살이 된다. 어쩐지 한 살이 아니라 열 살을 먹는 듯 좀 억울한 마음도 든다.

마흔을 맞으며 결심한 것들이 떠오른다. 지금 생각하면 참 젊은 나이였는데 나는 어쩐지 늙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먼저 40대가 된 선배에게 어떤 느낌인지 물어보았더니 시속 40km로 뛰는 기분이라 했다. 그럼 마라톤 풀코스를 뛰면 놀라운 세계신기록을 작성하겠다고 농담을 했는데, 쉰을 앞둔 지금은 마라톤이 문제가 아니라 마치 로켓을 타고 달나라로 향하듯 시간이 빠르게 흘러간다. 한눈팔면 하루가 아니라 한두 달이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지나기 전엔 하루라는 소중한 시간이었던 일력이 지나고 나면 이면지로 사용하기도 불편한 작은 종이 조각이 된다. 돌이킬 수 있는 것과 절대 불가능한 것, 유용과 무용의 확연한 경계다.

다시 한 번 시간 앞에 무기력한 인간의 운명을 생각한다. 하지만 그 운명에 굴복해 버리기엔 삶은 의외성의 아름다움과 수많은 이야기로 찬란하고 눈물겹다. 태어났으니 살아가는 것이지만 의미 없이 살기엔 너무 아까운 것이 인생의 시간 아닌가. 내 나름대로 소심하게나마 운명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결국 지금 시간을 가치 있게 보내는 수밖에 없다는 뻔한 결론에 이른다.

지난 한 해, 혹은 살아온 전 생애 모든 시간이 의미 없는 것은 아니었지 않나. 순간순간 무엇인가 이루기 위해 노력했고 소소하고 작은 많은 행복을 얻었다. 죽을 듯 힘들던 일도 모두 나에게 힘과 용기와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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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 그리고 만나야 할 사람이 여전히 많고 미래에 대한 희망도 있으므로 나는 50대를 젊은이로 살 작정이다. 문제는 물리적 시간이 아니라 마음의 자세이므로 인생의 가장 젊은 시간을 보내고 행복을 택하기로 작정한다. 쉰 살, 이 축복을 더욱 축복되게 보내고 싶다.

/윤은주(수필가·한국독서교육개발원 전임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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