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시리아에서 미국 적십자 의사로 의료 활동을 하고 있는 친구로부터 페이스북 편지가 왔다. 있는 곳이 전장이고 워낙 바쁘다 보니 우리는 클릭 몇 번이면 되는 페이스북 접속조차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한 번 답장에 열흘 이상 걸린다.

교포 2세, 미국 명문 의대 출신으로 편안히 잘 지낼 수 있었을 텐데 인간에 대한 연민이 그를 전장으로 이끌었나 보다. 외과 의사인 친구는 그곳에서 무려 900여 명의 죽음을 목도했다고 적었다. 어린아이들이 내일을 선물받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이 무엇보다 슬프며 영혼 깊은 비통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900명이라는 숫자를 인간 생명과 연관해 가늠하기도 힘들다. 내가 해 줄 수 있는 말은 그저 당신과 시리아 국민들에게 하나님의 도우심이 함께하기를 바란다는 것뿐이었다.

전쟁은 '선과 선의 대결'이라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왜 스스로 선이라 말하는 사람들끼리 이렇게 가슴 아픈 전쟁을 치러야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다. 한쪽은 알라의 이름으로, 다른 한쪽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어나는 전쟁은 신을 빙자한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비극이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전쟁 때마다 전쟁을 멈추게 해달라는 아이들의 간절한 호소가 있었다. 그들의 가엾음과 현실의 전쟁은 무관했다. 어떤 호소도, 어떤 고통도 전쟁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겐 한낱 공허한 메아리였다.

일본 히로시마의 평화공원에 갔을 때 공원 마당에 타오르는 횃불이 있었다. 관광 가이드는 그 불이 평화를 기원하는 횃불이며 지구상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날에 꺼지기로 약속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하루도 그 불이 꺼진 적이 없었다. 섬뜩한 공포와 심한 무력감이 느껴졌다.

원자폭탄의 피해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공원 여러 조형물이 생생히 증거하고 있었다. 직접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겐 이 또한 피상적인 구조물에 지나지 않겠지만.

전쟁 피해가 결코 남의 일이 아니며 당장 현실로 나타났을 때 어떤 비극과 공포가 올지 우리는 좀 더 실감해야 한다. 전장에서 단 한 사람만 죽는다 해도 그는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이요, 친구요, 연인이다. 그 죽음이 얼마나 안타깝고 비통한지 나의 일처럼 느끼는 공감이 반드시 필요한 것 같다.

친구 편지를 통해 지구 반대편 시리아의 전쟁이 남의 일이 아님을 기억한다. 친구 리키는 자신이 꼭 필요하지만 너무나 큰 위험이 존재하는 그 전장에서 무사하기를 기도해 달라고 말했다.

물론 나는 그럴 작정이다. 친구에겐 "지금 전쟁의 고통 속에서 사경을 헤매며 고통을 겪는 시리아 국민에게는 멀리 계신 신보다 가까이 있는 당신이 더욱더 신적인 존재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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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으로 이 야만의 전쟁이 얼른 끝나서 그가 전장의 고단한 삶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시리아 국민들이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바란다. 반드시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윤은주(수필가·독서교육개발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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