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사람] 영사 기사 이원희 씨

"(띠릭. 띠릭)영사님, 4관 온도 좀 낮추어 주세요."

다른 나라에 나가 자국민을 보호하는 외무 공무원, 영사가 아니다.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영동에 있는 영화관 메가박스 경남대점에서 근무하는 이원희(38·사진) 영사기사를 찾는 무전기 소리다.

그를 만나고자 찾은 곳은 극장 건물 8층, 비상계단을 통해 '관계자 외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은 문을 열고 들어가자 그를 볼 수 있었다.

"첫 영화가 시작하는 오전 8시 30분부터 마지막 회 종영 시간인 새벽 3시까지 이곳 영사실에 들어오면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식사도 여기서 해결하고, 안에 화장실도 갖추고 있죠."

그는 6개 스크린을 한 층에서 제어하는 멀티플렉스 영사실에서 근무 중이다. 영사실은 6개 영화관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한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

"영화관에 근무하면 영화를 자주 보겠다고 부러워하는데 영화를 상영하는 것은 보는 게 아니에요. 영화를 관찰하는 것이 제 임무입니다."

이 씨는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지만 졸업은 못했고, 애니메이션을 공부하기 위해 서울로 갔지만 동대문 티셔츠 공장에서 도안사로 일하다 2004년 고향 마산으로 돌아왔다.

2007년 창동 메가라인에서 영사업무에 첫 발을 디딘 그는 올해로 7년 차 영사기사.

'극장의 등대지기'라는 영사기사 일에 매진하기 위해 '영사산업기사' 자격증도 획득했다.

"단관에서 필름으로 상영하던 시절과는 영사 업무가 확연하게 다릅니다. 관객들이 영화를 제대로 볼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주 업무예요."

이 씨는 상영하는 영화의 스크린 크기, 조명과 사운드 체크는 물론 상영관 내 온·습도 조절까지 해야 한다.

"현재 저희 상영관에는 필름 영사기도 있지만 전부 디지털로 영사가 이루어지고 있죠. 컴퓨터를 통해 관리하는데요. 파일로 전송을 받아 각 영사기에 옮기고 상영시간을 입력하면 영화는 돌아가죠. 그러나 그전에 할 일도 많습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알아주지는 않지만 한 편의 영화를 제대로 전달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주로 목요일에 새로운 영화를 개봉하는데요. 개봉 전 업무도 많죠. 새 영화가 도착하면 저희 상영관 환경에 맞추려고 몇 번의 테스트를 거쳐요. 화면 색깔도 맞추고 음향 균형을 잡고 영사기 램프도 조정해서 최적의 빛을 쏘려고 준비합니다. 테스트 영화를 돌리고 상영관에 혼자 앉아 보면서도 영화를 보고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관찰하는 것이죠. 저도 영화 좋아하지만 저희 극장에서는 보지 않습니다."

이 씨는 다른 상영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도 업무 연장이라고 했다. 경쟁하는 극장 시스템을 알아야 관객들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

"2012년 개봉했던 <레미제라블(Les Miserables)>은 부산, 창원 등 다른 극장에서 5번 봤어요. 음향이 중요했던 영화라 신경이 많이 쓰였죠. 사실 영사기사들의 이런 업무는 관객 분들은 잘 모르실 거예요. 특히나 영사 환경이 디지털로 바뀌고 난 후에는 컴퓨터가 알아서 영화를 틀어주는 것으로 아시는 분들도 많아요. 아직도 <시네마 천국 (Cinema Paradiso)>의 소년 토토와 친했던 알프레도 아저씨의 일처럼 필름을 붙이고 자르는 것이 영사기사 업무로만 아는 분이 많아요. 그때가 언제인데 후후(웃음)."

모든 가능성을 계산해서 최적의 영화 상영을 준비하는 그에게도 도저히 막을 수 없는 두려운 존재가 있다. '정전'이다. 정전을 대비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그래도 순간의 정전이 일어나면 영화는 끊긴다.

"근무 중에 다른 사고는 거의 없죠. 가장 큰 것이 정전이죠. 이곳에 근무하면서 두 번 일어났죠. 2초 정도만 전원이 끊기면 다시 세팅을 해야 합니다. 우선 상영관 내부에 불을 켜고 영사기 램프를 켜고 영화가 멈추었던 부분을 찾고 보통 2분 안에 멈추었던 영화를 다시 시작해야 하죠. 정전상황은 예행연습을 할 수 없어서 머릿속으로 정전을 가상해 이미지 훈련을 많이 합니다."

이 씨와 인터뷰 중에 상영관 온도를 조절해 달라는 현장 스태프 무전은 연이어 전해왔고, 그는 20분 단위로 각 상영관 영사기를 살피고 돌아와서 대화를 이어갔다.

"영사기사 하면서 제일 힘든 고충은 공짜영화표를 구해 달라는 것이에요. 정말 주변에 아는 분들이 부탁을 많이 해서 난처합니다. 제발 공짜 말고 돈 내고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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