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말 나르기 대신 검증된 보도 필요

이석기 통합진보당(이하 진보당) 의원과 관련자들에 대한 '내란예비음모' 혐의 사건이 터진 후 언론들이 쏟아낸 보도 중 "총기를 준비하라"는 발언 대목이다. 언론들의 기사 출처는 대부분 국정원이었다. 이 의원 발언이 사실이라면, 내란죄 적용 여부를 떠나, 총기를 엄격히 금지한 우리나라 상황에서 중벌을 피할 수 없다.

그럼 이 의원은 정말 "총기를 준비하라"는 발언을 했을까? 이 의원은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30일 기자회견에서 "제가 총기 운운한 적 없다"고 말했다. 김홍렬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위원장은 30일 기자회견에서 "적기가를 부른 사실이 없으며 기간시설 파괴와 총기 마련 등을 모의한 적이 없다"며 이석기 의원이 총기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는 이석기 의원과 진보당만 아니라 <한국일보>가 30일 단독보도한 국가정보원이 내란음모 혐의로 수사 중인 지하혁명조직(Revolution Organization·RO)의 지난 5월 12일 회합 녹취록에서도 총기를 확보하라는 이 의원 발언은 없다. 물론 이 의원이 '총'이란 단어를 쓴 적은 있다.

우리가 총보다 꽃이라는 것을 지향하는 것은 분명하나, 때에 따라서는 꽃보다 총이라는 현실 문제 앞에 우리는 새롭게 또 새로운 관점에서 현재 조성된 한반도의 엄중한 **를 직시해야 하지 않는가?-30일 <한국일보> [녹취록 단독 입수] 이석기 "전쟁 준비하자… 군사적 체계 잘 갖춰라"

다른 참석자가 권역별 토론회에서 "저격용 총을 준비해야 한다"는 말을 했지, 역시 이석기 의원이 한 발언은 아니다. <한국일보>는 단독입수한 녹취록 62쪽 모든 분량을 보도한 것이 아니라 10쪽 정도로 요약 보도했다. 녹취록을 입수, 요약본을 공개한 한국일보의 한 중견기자는 30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에서 입수한 녹취록 전문을 공개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타이핑된 파일 형태로 받은 것이 아니라) 문서로 된 녹취록이어서 기사로 쓸 때 다 보면서 칠 상황이 안돼 중요한 부분만 요약해서 싣게 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분위기에 맞춰서 요약했을 뿐이다. (전문을 봐도) 이석기 의원 언급 가운데 '총기' 발언은 없었다. '총기'를 준비하라는 언급도 없다. 다 읽어보면, '이게 죄가 되나요'라는 판단도 가능하고, 그 반대의 판단도 가능하다"고 말했다고 <미디어오늘>은 전했다. 녹취록 입수해 단독 보도한 <한국일보> 기자도 이석기 의원이 "총기를 준비하라"는 발언을 하지 않았다고 확인한 것이다.

물론 녹취록 전문이 공개되면 이석기 의원이 "총기를 준비하라"는 발언을 했을 수 있고, 공개된 내용보다 더 심각한 발언을 했을 수도 있다. 한 마디로 '내란죄'를 피할 수 없는 발언을 했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렇지 않다. 녹취록 발췌본은 왜곡은 아니더라도 읽은 사람들로 하여금 잘못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한다.

지금까지 공개된 진보당 내란음모 녹취록 역시 전문이 아니라 발췌본이다. 공교롭게도 녹취록을 가지고 있는 곳이 국정원이다. 진보당은 29일 국정원이 완전날조했다고 전면 부정한 것에서 한발 물러섰지만, 여전히 녹취록이 왜곡됐다면서 전문과 동영상을 공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도 국정원 명예를 위해 공개했다. 모든 의혹을 씻기 위해서라도 녹취록을 조금씩 흘릴 것이 아니라 아예 공개하는 것도 괜찮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공개하기 힘들다. 이유는 수사 중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명확하게 확인되지 않은 내용은 섣부르게 보도하면 안 된다. 국정원발 큰따옴표 받아쓰기가 아니라 오직 확인된 사실만 보도해야 한다. 이런 사안일수록 언론은 더 엄중해야 한다. 지금은 가장 기본에 충실해야 할 때다. 30년 만에 부활한 '내란음모죄' 아닌가.

/탐독(인서체와 함께하는 블로그·http://blog.daum.net/saenoor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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