춥다 덥다를 반복하더니 어느새 봄기운이 가득하다.

나이가 들면 계절에 더 민감해지나보다. 4월 초까지도 꽃샘 추위덕에 '혹시나' 싶어 정리하지 않았던 두꺼운 겨울 옷들을 뒤늦게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세탁소에 맡길 것과 집에서 세탁할 수 있는 것들을 정리하다 보니 몇년 동안 입지도 않았던 옷들이 이제야 눈에 띈다. '왜 우리나라는 계절이 네 번이나 바뀌냐' 툴툴거리면서도 계절별로 구색을 맞춰 장만했던 옷들이다. 이젠 옷장 속에서 묵은 먼지를 끼고 색깔별로 나란히 누워 있다.

사서 몇 번 입지 않은 옷도 제법 보인다. 사람들 앞에 서는 직업이라 깔끔해야 한다며 샀던 정장과 색깔을 맞춰 입기 위해 마련했던 수많은 민소매 티셔츠, 검정색이라 멀리서 보면 구분도 안 되는 비슷한 모양의 치마와 바지들….

지금은 유행도 지나고 사이즈도 달라져서 입지도 않을 옷이지만 막상 정리를 하자니 어쩐지 아깝다는 마음이 들어 자꾸 망설여진다.

거울 앞에 서서 옷을 이리저리 몸에 맞춰 보고는 다시 입지 않을 것 같은 옷들을 상자에 담기 시작했다. '그래, 깔끔하게 정리해서 입을 옷만 남겨두자'고 중얼거리면서도 몇 번이나 상자에 넣었다 꺼냈다를 반복했다.

그러고 보니 옷뿐만 아니라 집안 구석구석에 버리지 못해 갖고 있는 물건이 꽤 많았다. 어쩐지 나중에라도 다시 사용할 일이 있을 것만 같기도 하고, 멀쩡한 것을 버리는 것도 낭비처럼 느껴져서 기분이 개운하지 않고….

하지만 정작 그렇게 모아둔 것들을 알차게 사용한 적은 거의 없는 듯하다. 대부분은 잊힌 채 보관만 되어 있게 마련이다.

이사를 서너 번 다닐 동안 한 번도 풀지 않은 상자를 발견해서 열어보니, 지금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가 쓰던 기저귀였다는 어느 지인의 말처럼 지금 내게도 그 기저귀와 같은 것들이 있었던 것이다. 단지 상자에 담겨 있지만 않았을 뿐.

풍족하지 않았던 시절을 보낸 어머니 세대가 우리에게 남긴 '근검절약 교육'이 내게는 '모아두기' 습관으로만 남게 된 모양이다.

부족한 세대의 딸로 태어나 풍족한 세대의 딸을 키우는 나는, 내 아이에게 근검절약 교육보다 합리적인 소비 교육을 먼저 시켜야겠구나라는 우스개 생각을 하며 천천히 입지 않을 옷들을 정리했다.

   
 

두 개의 커다란 상자를 채운 뒤, 내게 소용없는 물건이 다른 이들에게 소용 있는 물건이 되길 바라며 기분 좋게 '아름다운 가게'에 전화를 했다.

창문을 여니 따뜻한 봄 햇살이 깔끔하게 비워진 옷장에 가득 담긴다.

'혹시나' 다시 추워지지 않겠지라는 생각을 하며 내 마음에도 따뜻한 봄 햇살을 채워본다.

/이정주(김해분성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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