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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예쁘게 삽시다, 아름답게 삽시다

[피플파워] 도예가 우현 김기환

이서후 기자 thefinalee@gmail.com 입력 : 2011-12-04 09:29:40 일     노출 : 2011-12-04 09:29:40 일

명작을 만나다

42세 개띠 도예가. 명작도예 우현(又玄) 김기환. 여기서 명작(名作)은 명품을 만들겠다는 뜻이다. 우현(又玄)은 ‘또 모른다’는 뜻으로 정진하라는 말이다. 그는 항상 세상 공부는 무궁무진하다고 말한다. 나는 그를 명작 선생이라고 부른다.

그는 어느 여름날 내 일상 속을 마치 점령군처럼 쑥 밀고 들어왔다. 처음에는 이 사람 뭔가 싶었다. 우리는 3일을 이어 술을 마셨는데, 마지막 날 술자리가 끝나고 몸을 가누지 못한 나는 급기야 1.6m 난간에서 아래 콘크리트 바닥을 향해 발랑 뒤로 자빠졌다. 마침 아래 주차된 승용차가 없었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러고 나서 얼마 안 있어 그는 다시 특유의 그 방글방글한 얼굴을 하고 나를 찾아오는 것이었다. 아, 징그러운 사람!

   
 
  우현 김기환 선생./김구연 기자  

도예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묵묵히 가마 앞에 앉아 불을 보며 도를 터득하고, 물레를 돌리며 세상의 이치를 배우는 사람이랄까. 작품을 앞에 두고 묵묵히 앉아 있으면 작품 가격이 팍팍 오르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아닐까 했는데, 말술에 골초에, 그리고 이분 참 말씀이 많으시다. 그는 말한다.

“내가 한이 많아서 말을 못하면 응어리가 져서 안 돼! 그때그때 풀어 버리고 자유롭게 살고 싶어. 응어리져서 병나면 안 돼!”

한동안은 그의 말을 꼼꼼하게 들었다. 그런데 그 쩌렁쩌렁한 목소리를 30분이고 40분이고 듣고 계속 있으면 멀미가 난다. 그리하여 나는 터득했다. 그의 마을 들을 때는 이해하려고 애쓰지 말 것, 논리적으로 해석하지 말 것, 그냥 들을 것! 그렇다고 그가 횡설수설하는 것은 아니다. 그의 말 속에는 논리를 떠나 예술가 특유 통찰이 있다.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건 오로지 내가 모자라서다.

미친 듯 기술을 익히다

어느 날 저녁 그와 다시 술자리에서 마주 앉았다. 그는 고향이 거문도라고 했다. 전라남도 여수시 삼산면 거문리 거문도. 여수와 제주도의 중간에 있는, 느낌상으로는 제주도보다 멀다. 4형제 중 막내인 그는 초등학교 6학년 1학기에 부산으로 와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한다.

“아버지가 4살 때 돌아가셨어요. 큰형님이 부산에서 배를 타셨는데, 동생들까지 뱃사람을 만들면 안 되겠다 싶어서 공부를 시켰지. 중학교 때는 그림을 그렸어요. 곧잘 그려 상도 자주 받았고요. 그런데 그림 갖고는 먹고 살기 힘들 것 같더라고. 빨리 기술을 배우고 싶었지요. 그래서 부산공예고등학교(지금은 부산디자인고등학교다.)에 입학했지요. 거기서 도예를 시작했는데, 눈만 뜨면 미친 듯이 물레를 돌렸어요. 저는 따로 스승이 없어요. 혼자 열심히 많이 돌리는 수밖에 없었어, 그때는! 고3 때 교장 선생님이 저를 잘 봐서 교실 하나에다 방을 따로 만들어줬어요. 거기서 잠도 안 자고 연습했어. 그래서 고등학교 때 전국기능올림픽에서 도예부문 금상을 받았어요. 그때 제가 좀 유별났어요. 작업장이 깔끔하게 안 돼 있으면 후배들 운동장 집합시켜 몽둥이로 때렸어. 학부모한테 항의가 많이 들어왔어요. 그런데 교련선생이 와서 하지 말라고만 하지 다른 말은 안 했어요. 그 정도로 힘이 있었어요.”

지금도 힘은 세 보인다. 사실 힘이 세야 한다. 큰 도자기는 물레에 올리는 찰흙도 상당히 무겁다. 그리고 가마를 땔 적에는 쉼 없이 장작을 넣어야 한다. 이때는 눈코 뜰 새도 없다. 언제 한번 나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는데 바쁘다고 안 갔다가 그날 저녁 지청구를 제법 들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예공방이 많은 김해 진례에 도자기 기술자로 갔지요. 하루에 100개씩 만들고 그랬어요. 그게 너무 일찍 기술을 배워 놓으니까 어린 나이에 돈을 제법 벌었어요. 하루 세 군데 정도 돌면 봉투에 돈이 두둑해. 수중에 돈이 안 떨어지니까 만날 술집 가서 나쁜 짓 하는 거라. 오늘 돈 다 써도 내일 또 돈이 들어오니까. 나는 기술자니까. 그런데 군대를 제대하고 돌아왔는데 월급이 세니까 돈을 제때 못 주는 거야. 도자기 오늘 팔면 미리 조금씩 주고 그러는 거야. 그래서 적금 넣은 거 깨서 독립해버렸어요. 자방도예라고. 그때부터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24살 때야. 그 시절에는 저 안 부러워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왜나면 그때 나이 40, 50되는 사람들도 가스 가마에다 기계에 찍어서 만들었거든. 그런데 24살에 장작 가마 만들어서 물레에 도자기를 귀신처럼 잘 구워버리니까, 안 부러워하는 사람이 없었지요.”

도예, 기술이 아닌 마음

언젠가 그에 다실에 진열된 작품을 둘러봤다. 똑같은 크기의 앙증맞은 찻잔이 많았다. 이것들을 어떻게 손으로 빚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명작 선생은 손도 아주 크다!

   
 
  우현 김기환 선생./김구연 기자  

“조그만 잔을 만들든 큰 도자기를 만들든 다 손으로 만듭니다. 그러니까 손은 큰데, 그 조그만 거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예민하고 섬세하게 해야 해요. 도예가들이 경남에 한 100명이 있다면 80명은 기계로 찍어서 해요. 손으로 하는 데 몇 군데 없어요. 저는 도자기를 한다면 최소한 그릇은 빚을 줄 알아야 한다는 생각해요. 정말 빚을 줄 모르는 사람 많아요. 이거 일반인들은 잘 모르더라고요.”

하루는 명작 선생이 나더러 자기한테 도자기를 배워 보라 했다. 뭐, 좋긴 한데, 그때 나는 무언가를 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던 시절이어서 그냥 안 했다. 그런데 뜻밖에 많은 사람이 명작 선생에게 도자기를 배운다.

“제가 해 줄 수 있는 거는 그릇을 만드는 기술이 아니에요. 저는 수행하는 걸 가르쳐요. 물레를 배워도 욕심에 빨리 만들려는 분이 있어요. 그릇 하나 빚는 데도 정성, 마음에서 다 이뤄진다는 거예요. 만들 때 예쁜 마음으로 만들라거나 흙을 떠받들듯이 하라거나 그러죠. 사람들하고 관계도 그래요. 좋은 인연이 저 때문에 피해가 간다면, 피해를 주면 안 되잖아. 저는 제가 손해를 보는 게 차라리 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여기까지 이야기하고 나니 예의 그 멀미가 나기 시작한다. 내 몸은 직감적으로 위험하다, 더는 집중해서 들으면 안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날 이야기는 여기서 끝이다.

나는 싱글벙글 도예가

그리고 어느 날 작업장 옆 다실(茶室)에서 다시 그와 마주 앉았다. 손님이 와 있었다. 아니 그의 작업장에는 항상 손님이 와 있다.

“매일 하루에 두 팀 정도? 하루에 아침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어떤 때는 밤까지, 4~6팀이 와서 앉으면 각 팀당 2시간에서 4시간까지 있다 가죠. 차 한잔하며 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죠. 저는 그냥 제가 아는 원리를 이야기하는 거고. 그런데 어떤 분은 자신에게 갇혀 있는 대화를 해요. 그러면 내가 말을 안 해버려요. 백날 얘기해봤자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되는 거니까요. 그냥 그 사람에게 맞춰 주는 거지요.”

   
 
  우현 김기환 선생./김구연 기자  

그런데 이렇게 사람이 많이 찾아오면 귀찮지 않을까? 도자기 작업도 해야 하는데, 접대하느라 온통 시간을 뺏기고 나면 하루가 허무할 것 같다.

“사람들이 명작 선생이 바로 부처네 그래요. 그 많은 사람을 보고 인상 한번 한 구기고 맞이하는 걸 보면 대단하다. 옛날에 그 많은 빚이 있었어도 오는 사람마다 음식 대접하고 술도 먹으러 가고 인상 한 번 안 쓰니까. 저 사람이 빚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였지요.

저는 참 보시도 많이 하고, 아는 사람 다 접대하다 보니까, 쓰이는 돈이 장난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도 아닌 것 같지만, 하루에도 몇 건입니다. 전에는 비싼 밥도 많이 먹었어요. 지금은 돈 빌릴 데가 없지만, 옛날에 돈 잘 벌 때는 막 빌려주데요. 은행에서도 막 빌려주고 차도 신용으로 주고 그랬는데. 그때는 아는 식당에서도 한 500만 원씩을 빌려줬는데, 한순간에 모든 게 다 갔지.”

젊은 날의 방황, 그리고 성숙

그의 30대는 온통 아픔이었다. 고통이었다. 젊은 나이에 돈을 많이 버니 자연스레 여자가 꼬였다. 어느 날 여자가 와서 결혼을 하자고 했다. 어린 마음이었고 외로웠다. 생각 없이 결혼을 했다. 하지만, 그 여자는 명작 선생의 삶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는 망가졌고 이혼을 했고, 1년을 술독에 빠져 살았다. 정신을 차린 그는 창원 동읍으로 작업장을 옮겼다.

“이혼을 하니까 사람들 눈도 있고, 방황을 했으니까, 술만 먹고 살면서. 그동안 열심히 살아왔는데 한순간에 내 인생이 이렇게 망가졌구나, 이런 거 있잖아요. 그때 1년을 하루에 100만 원, 200만 원씩 술을 먹고 음주 운전으로 차도 세 대나 날렸어요. 그런 데서 빚이 생긴 거야. 지금은 그런 게 경험이라고 절대 술 먹고 운전 안 합니다.
제가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또 술을 먹고 사고가 나면 인생 종 친다 아입니까. 쎄가 빠지게 하면 뭐합니까. 하루아침에 구속될 수도 있는 거고, 차라도 부서지면 앉아서 몇천만 원이 한순간에, 소주 한 잔에 가버리는 거라. 그래서 항상 대처하는 마음을 갖지 지금은.”

   
 
  우현 김기환 선생./김구연 기자  

습관은 무섭다. 10년 된 습관을 고치는 데는 다시 10년이 걸린다. 습관을 순식간에 끊어내는 방법이 있다. 충격이다. 갑자기 큰 충격을 받으면 사람이 바뀐다. 이렇게 아파도 보고, 망가져도 보았으니 그의 마음은 이제 튼튼하게 다져졌다.

“저는 동읍에 오고부터 아무리 배가 고파도 후배들 양성한다고 기술자 노릇은 안 해줬어요. 이해 못 할걸요? 저는 돈이 여유가 있으면 후배를 양성하지 저 잘 먹고 살려고 안 합니다. 사실 생각해보세요. 100개를 만들면 후배들 두 시간 만들 것을 저는 한 시간 만에 만듭니다. 애들 100개 만들면 20개 불량인데, 나는 거의 안나요. 그런데 제 자존심이 그렇게 못 해요. 내가 다른 데서 돈 벌어 내 빚을 갚아도 후배들 밥벌이는 안 뺐습니다. 이번에 작품 좋은 것 나왔습니다 하고 공갈도 좀 치고 사달라고 해야 하는데, 그런 걸 못하는 거야!”

그래도 꾸준히 작품을 내면 나중에 나이 들어 작품 값이 많이 나갈지도 모른다. 혹시 아는가, <KBS 아침마당> 같은 프로그램에서 출연할지. 오늘은 명작도예 우현 김기현 선생을 모시고 말씀 나누겠습니다!

“저도 그걸 보고는 살고 있는데 현재가 중요하잖아요. 그게 문제인 거라. 또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도 모르고. 옛날에 못살던 시절이면 뭐 도자기 몇 개 만들어서 시장에 내다 팔고 막걸리 한 사발 먹고 그러면 되지만, 요즘에는 움직이면 다 돈입니다. 10만 원은 돈이 아니야! 아기 기저귀 몇 개 사면 10만 원은 나가버리고 없어요. 특히 올해는 일이 없어요. 작년에 그만큼 몸을 축내면서 일을 많이 해 놨기에 이렇게 사는 거지. 이제는 절대 돈 안 받고는 일을 안 하는데 그래도 한 번쯤은 찻잔 100개 정도야 뭐 한번 빚어보자 그러거든요. 그런데 냉정할 땐 냉정하게 받고 안 할 수가 없더라니까!

나이가 들고 50이 넘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으면 제가 내면 공부했던 거하고 도자기하고 접목해서 무언가 하려고 하고 있어요. 지금은 때가 아니라는 거지. 다 순리대로 때 있을 때 하는 거지요.”

이제 명작 선생에게는 현명하고 예쁜 아내가 있다. 올해 초 아들도 얻었다. 그는 항상 아들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며 막 키우는 듯하지만, 속내는 전혀 아니다. 아들과 아내를 바라보는 그의 눈엔 항상 흐뭇함이 베여 있다. 그는 지금 동읍에서 무척, 행복하다.

명작도예 찾아가는 길 동읍에서 진영 방향으로 가다 자여 사거리에서 좌회전한다. 바로 명작도예 간판을 단 장승이 보이는데 그 아랫길로 우회전해서 들어가면 된다. 그러면 명작선생이 싱글벙글한 얼굴로 반갑게 맞아 줄 것이다. 그리고 멀미가 날 때까지 그의 말을 열심히 들어보시라.

팬카페도 있으시다 흙과 불의 인연 그리고 명작(cafe.daum.net/bestsaba)인데, 회원이 200명이 넘는다. 그리고 인터넷에 ‘우현 김기환’을 검색하면 곳곳에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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