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파워] 이서후의 컬러풀 아프리카 4편

여기는 나미비아. 사막의 땅. 삭막한 풍경이 몇 시간째 이어진다. 눈부신 사막 한가운데 차를 멈춘다. 뜨겁다. 눈이 부시다. 아득히 하늘과 땅이 맞닿은 곳까지 이어진 마른 땅. 다시 묻는다. 나는 여기 왜 온 거지? 모르겠다. 지금은 그저 저 지평선을 향해 쓰러질 때까지 걷고 싶을 뿐.

나미비아 국경

트럭 여행 3일째. 오렌지 리버 캠프장에 해가 뜬다. 시끄러운 새 소리에 잠이 깨고 텐트 밖으로 나왔다. 깔끔하고 상쾌한 아침이다. 어제 우리보다 일찍 도착한 트럭 여행팀이 보이지 않는다. 새벽에 트럭 시동 거는 소리가 들린 것 같더니 이미 떠난 모양이다.

캠프장과 강변을 둘러보고 나니 아침 시간. 시리얼과 식빵, 밀크티. 아직 익숙하지 않은 식사. 그래도 맛있다. 서양인이 빵 먹는 거나 우리가 밥 먹는 거나 같은 거 아닌가. 신기해하지 말자.

텐트를 걷고 짐을 정리한다. 텐트와 텐트 안에 깔았던 매트리스는 모두 한 곳에 모아 트럭에 싣는다. 식사를 준비하는 것도 짐을 챙기는 것도 모두 함께 해야 할 일이다. 각자 솔선수범한다면 더할 나위 없다. 다행히 우리 일행의 팀워크는 꽤 좋은 편이라 여행 내내 모든 게 순조로웠다.

짐을 챙기고 나서 잠시 쉰다. 아침 햇살이 좋다. 밤새 굳은 몸이 스스로 녹아내린다. 캐나다인 론과 엘리자베스 부부는 차분하게 일기장을 적고 있다. 론은 67세, 엘리자베스는 60세. 젊은이에게도 불편하고 힘든 트럭 여행을 누구보다 훌륭하게 해내는 분들이다. 이들은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으로 규칙적인 생활이 몸에 밴 성실한 부부다. 여행 내내 이분들에게 배운 게 많다.

나미비아 국경을 넘는다. 우선 남아공 국경 사무실. 갈색 벽돌, 철제 지붕으로 단정하게 지었다. 간단하게 출국 절차를 끝내고 일행과 나란히 앉아 해바라기를 한다. 한가하고 평화로운 국경 사무실이다. 자, 다음은 나미비아 쪽 사무실로 갈 차례. 오렌지 리버를 건너니 ‘WELCOME TO NAMIBIA’라고 적힌 간판이 보인다.

나미비아 쪽 국경 사무소. 이거, 참, 없어 보인다. 초라하다. 남아공 쪽과 차이가 많이 난다. 역시 간단하게 입국 절차를 마친다. 일행을 인솔하던 샤드웰이 갑자기 시간을 묻는다. 지금 몇 시죠? 11시 15분요. 자, 시간을 한 시간 늦춥시다. 모두 시계를 10시 15분으로 맞춘다. 나미비아는 남아공보다 한 시간 늦다. 따져보니 한국보다는 8시간 늦다. 한국은 지금 저녁이구나.

드디어 나미비아! 나미비아 공화국(Republic of Namibia). 1990년 3월 21일 남아프리카 공화국으로부터 독립했다. 몽골에 이어 세계 두 번째로 인구밀도가 적은 나라. 국토 대부분이 사막인 나라. 나미비아란 이름은 대서양을 따라 길게 이어진 나미브 사막에서 따온 것이다. 우리는 지금 바로 이 나미브 사막으로 가고 있다.

트럭 안에서 본 풍경./이서후 기자

사막, 사막, 사막

끝없이 이어지는 건조한 대지.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침식과 풍화를 견딘 바위산. 외로워 보이는 바위 봉우리들. 이런 곳에도 식물은 산다. 작은 돌멩이 하나. 키 작은 관목 하나라도 허투루 놓여 있지 않은 것 같은 풍경. 도로를 따라 세운 긴 울타리와 검은색 나무 전봇대가 유일한 인간의 영역 표시다.

사방으로 지평선이 보이는 곳에 차를 세우고 점심을 먹는다. 샌드위치에다 양배추와 감자샐러드, 소시지가 전부. 일행은 사막을 배경으로 간이 의자를 두고 둘러앉았다. 한쪽 편에 녹슨 자동차가 버려져 있다. 자세히 보면 차 문에 총알 구멍이 나있다. 사막 한가운데서 총격전이 벌어졌던가. 샌드위치와 사막과 총 맞은 자동차. 아, 참, 이 묘한 느낌은 뭐지?

사막에 버려진 총 맞은 자동차./이서후 기자

샤드웰이 일행을 데리고 사막 한가운데로 나선다. 그러더니 독특한 모양의 나무 앞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퀴바 나무(Quiver Tree)다. 아프리카 남부 지역에서 자라는 알로에과에 속하는 나무란다. 나무 표면은 단단하게 보이는데 만져보니 아주 부드럽다. 샤드웰이 ‘매끈한 여자 다리처럼’이라고 덧붙인다.

나무속은 스펀지처럼 돼 있는데 부시맨이 사냥할 때 화살 통으로 썼다고 한다. 가지 끝에 옹기종기 잎이 달렸는데 알로에와 모양과 성분이 거의 같다. 사실 처음 퀴바 나무를 보고 아, 이게 그 유명한 바오밥 나무다고 생각했다. 나중에야 알게 됐는데 바오밥 나무는 퀴바 나무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크다.

신발 밑창에 박힌 큰 가시./이서후 기자

사막의 더위는 그저 뜨거울 뿐 땀이 나지 않는다. 건조해서다. 정확히 말하면 땀이 나자마자 증발해 버린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습한 여름 날씨보다는 오히려 쾌적하다. 다만, 사막 식물의 가시는 조심해야 한다. 퀴바 나무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신발 밑창에 커다란 가시가 박혔다. 너무 단단하게 박혀 도저히 손으로는 빠지지가 않는다. 겨울 아프리카가 위험하다면 바로 이 바짝 마른 식물 탓이다. 물이 부족해선지 대부분 식물이 살아 있어도 뾰족한 가시 모양을 하고 있다. 맨발로 다니다간 심심찮게 가시에 찔린다.

드디어 오늘 밤을 머물 호바스(HOBAS) 캠프사이트에 도착.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 같은 곳이다. 커다란 나무 아래 옹기종기 텐트를 친다. 사막 먼지가 한가득 텐트 안으로 들어온다. 뭐, 상관없다. 앞으로 계속 이 먼지에 익숙해져야 한다.

잠시 쉰 우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협곡, 피쉬리버 캐니언(Fish River Canyon)으로 간다. 길이 160㎞. 너비 최대 27㎞, 깊이 최대 550m. 안타깝다. 너무 거대해서 한눈에 다 안 들어온다. 까마득히 달려 내려가는 능선과 계곡. 세월을 가늠할 수 없는 침식이 만들어낸 장관. 무서우면서도 내려다볼 수밖에 없는 아찔한 그 깊이. 이 풍경을 만드는 데 필요한 건 오직 그 한정 없는 시간뿐, 그 어떤 물리력이 아니다.

서쪽에서 시작한 노을은 온 하늘을 한 바퀴 돈다. 늘어난 내 그림자가 지평선에 닿을 것만 같다. 길고 긴 일몰이다.

정지된 풍경 속에서

4일째 아침, 아니 새벽 5시 30분. 어둠 속에서 주섬주섬 짐 정리를 한다. 아침을 먹고 있으니 조금씩 동이 튼다. 오전 6시 30분 출발. 안녕, 먼지투성이 호바스 캠프사이트.

어김없이 황량한 풍경이 이어진다. 삭막함 속에서도 드문드문 동물이 나타난다. 지평선 너머까지 이어지는 마른 초원. 사바나, 저 사바나. 아무리 생각해도 저 모습을 표현할 적당한 말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절대 풍경에서 눈을 떼지 않으려고 애쓸 뿐이다.

몇 시간을 달려도 도로에는 자동차 한 대 보이지 않는다. 앞자리 독일 여자애는 아까부터 지루해, 지루해 혼자 중얼거린다.

자세히 보면 풍경이 다 비슷하지도 않다. 드문드문 녹색과 마른 풀이 어우러진 점묘화. 그래, 이게 아프리카의 겨울이다.

잠시 베타니(Bethannie)란 곳을 들른다. 1814년에 만들어진 작은 마을. 맥주와 사과, 과자를 사고, 카페에 들어가 커피도 한잔 마신다.

거리에서 아프리카의 아이들과 처음으로 이야기한다. 사진기 함부로 들이대지 말라고 샤드웰이 주의를 줬지만, 무슨 상관인가. 사진 찍어도 되니? 아이들은 흔쾌히 동의한다. 이름이 뭐랬더라? 젠장, 금방 들었는데 잊어버렸다. 16살이라는데 8,9살 정도로 보이던 그 조그만 아이. 나에게 구걸을 하는데 되게 쑥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래서 오히려 돈을 주고 싶었다.

나미비아 작은 마을에서 만난 아이들./이서후 기자

다시 사막, 트럭에 놀란 짐승들이 달린다. 강은 바짝 말랐다. 물이 흐른 흔적이 뚜렷하다. 강가에서만 푸르고 큰 나무들을 볼 수 있다.

잠시 트럭을 멈추고 쉰다. 정지된 땅에 끊임없이 해가 쏟아진다. 바람 한 줄기 불지 않는다. 이런 곳에서 시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런데 나는 왜 열심히 날짜를 세고 있을까. 왜 시간을 확인하고 있을까.

새들도 아파트에서 산다. 오후 2시 30분. 거대한 초가집이 걸린 나무 앞에 선다. 새 둥지란다. 가만히 지켜보니 조그만 새들이 수시로 초가집 아래쪽을 드나든다. 베짜기새다. 이 둥지에서만 300마리 이상이 산다.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규모다. 어떤 둥지는 너무 무거워 굵은 나무줄기가 뚝 끊어졌다. 나중에 자료를 찾아보니 길이가 최대 3m, 무게는 1t이나 나가는 둥지도 있다고 한다.

베짜기새의 아파트형 둥지./이서후 기자

새 둥지를 출발하고 20분 우리 트럭 마빈이 두 번째로 고장이 났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남자들끼리 모여 낑낑댄다. 마침 지나는 차가 있어 도움을 받는다. 이때다 싶어 사바나를 향해 멀리 걸어 나가본다. 풀을 밟을 때마다 마른 잎이 부서지는 소리가 크게 난다. 이대로 저 지평선까지 걸어버리고 싶다.

고장 난 트럭을 몇 번이나 세우고서야 겨우 오늘 잘 곳에 도착한다. 역시 모래 가득한 바닥에 텐트를 친다. 아, 이런 세면장이 멀다. 가고 오는 길에 다시 모래투성이가 될 게 뻔하다. 뭐, 그러면 또 어때. 사막의 모래는 먼지가 아니다. 더러워서 피해야 할 그런 게 아니다!

고장 난 트럭을 수리 중인 사람들./이서후 기자

저녁. 우리의 요리사 케이티. 나흘째 먹고 있지만, 맛있다. 진짜 맛있다. 후덕한 남아공 아가씨인 케이티는 역시 우리처럼 트럭을 타고 다니면서 요리를 배웠다고 한다. 그래도 그 덕에 나흘 동안 밥이 먹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사막 한가운데 모닥불이 지펴지고 옹기종기 앉았다. 사막에서 밤이 되면 하늘이 보이지 않는다. 수많은 별에 가려 버리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하늘보다 별빛이 자치하는 면적이 더 넓다. 이런 곳에서 별자리는 어울리지 않는다. 별자리는 별이 잘 안 보이는 곳에서만 의미가 있을 뿐이다.

문득, 유성이 떨어진다. 잘 지내니? 잘 지냈으면 좋겠어. 굿나잇.

해질 무렵 사막./이서후 기자
피쉬 리버 캐니언./이서후 기자
퀴바나무./이서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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